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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나무·오동나무·회화나무… 조선시대 선비들이 사랑한 나무

입력 : 2017-07-06 20:41:21 수정 : 2017-07-06 20:4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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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품은 선비’서 지식인 삶 조명
조선 중기의 학자인 조식(曺植)은 자신의 성리학 정신을 드러내기 위해 매실나무를 심었다. 중국의 화가 엄릉처럼 유유자적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자 했던 조덕린(趙德?)은 엄릉의 삶을 상징하는 오동나무를 소재로 시를 지었다. 조선 후기 문인인 조성한(趙晟漢)은 파직당한 뒤 ‘진정한 선비로 살아가겠다’는 의미로 회화나무 두 그루를 심고, 집 이름도 쌍괴당(雙槐堂)이라 지었다.

이처럼 조선시대 선비들은 나무를 통해 인간의 선한 본성을 가꾸고 드러내려 노력했다. 이들은 늘 자신이 사는 공간에 나무를 심어놓고, 손수 관찰하며 공부했다. 그가 어떠한 삶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가까이 두는 나무가 달랐다.

나무연구와 인문학을 접목해온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가 ‘나무를 품은 선비(사진)’를 펴냈다. 앞서 ‘조선을 구한 신목, 소나무’에서 소나무의 역사를 살펴본 그가 이번 책에서는 나무에 담긴 조선 지식인의 삶을 조명한다.

조선 선비들이 유독 아끼고 좋아한 것은 매화였다. 매화꽃을 피우는 매실나무에서 자신들이 추구하는 선비정신을 배울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저자는 “선비정신은 자신을 위하는 일이 곧 천하를 위한 일임을 깨닫고 실천하는 자세”라고 말한다. 선비정신과 연관된 나무 중에는 차나무도 있다. 손관(孫寬)은 안동에서 외가인 밀양으로 이주할 때 차나무를 옮겨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저자는 “손관이 굳이 차나무를 가져온 것은 이 나무의 특성과 자신의 생각을 맞추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차나무는 옮겨심는 것을 꺼리는데, 딸을 출가시키는 부모가 차씨를 주는 것은 시댁에서 변함없이 잘 살기를 바라는 뜻도 담고 있다.

나무를 통해 단지 자기수양만을 배운 것은 아니다. 나무는 부모를 향한 효심과 나라에 변치 않는 단심, 백성을 위한 애민정신을 심어줬다. 조선을 대표하는 문장가인 신흠(申欽)은 자신의 공간에 박태기나무를 심어 형제간의 우애를 다졌다. 지식인의 표상으로 평가받는 김종직(金宗直)은 차나무로 차밭을 만들어 백성들의 세금문제를 해결해 다도(茶道)정신을 실천했다.

저자는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나무에 대한 관심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한 그루의 나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며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나무를 공부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나무의 삶이 곧 자신의 삶이기 때문이었다”고 강조한다.

권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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