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북핵 방어수단 잃는 것
행여 트럼프가 ‘코리아 패싱’ 하며
북한 공격 하는 일 없도록 만전을
북한이 대륙간탄도탄(ICBM)급 미사일을 재차 발사하자마자 미·일 정상은 서둘러 전화 통화를 했다. 하지만 한·미 두 지도자는 통화를 서두르지 않는 눈치였다. 미국은 북한 정권의 돈줄을 죄기 위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2371호를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는 데 전력투구했고, 이에 김정은 정권은 미국 영토 괌을 포위사격 하겠다고 위협했다. 김정은의 허풍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예방공격 가능성을 제기하며 맞받아쳤다.
미·북 간 언쟁이 고조될수록 트럼프가 무력행사를 실제로 감행할 가능성이 생길 수 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한반도 위기 상황에서 강대국의 전략적 계산에 우리 목소리가 얼마나 반영되고 있는지 걱정이다. 강대국이 한국을 제외한 채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려는 ‘코리아 패싱’은 용납할 수 없다.
미국 정가에서는 대북 예방공격 목소리 외에도 북한과 불법거래를 하는 기업과 은행 등을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 해법이 제기된다. 하지만 가장 주목해야 할 발언은 국무장관을 지낸 원로 전략가 헨리 키신저가 언급한 내용 중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에 주한미군 철수를 공약해야 한다”는 대목이다.
한반도는 아시아에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며 미국의 국익을 추구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하지만 미국은 본토를 위협하기 시작한 북핵 해법에 대한 중국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미국이 급부상하는 중국과 ‘투키디데스 함정’(급부상하는 강대국과 기존 패권국이 경쟁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패권전쟁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반도를 미·중 간 전략적 완충지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국익 여하에 따라 주한미군 철수나 코리아 패싱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입장에서 주한미군 철수는 국익을 위한 전략적 선택일 따름이지만 우리에게는 북핵 위협으로부터 국가 생존을 보장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을 잃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선택이 한반도에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는 이미 뼈저리게 경험했다. 1950년 1월 미국이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남한을 아시아 방어선에 포함하지 않는 ‘애치슨 라인’을 확정한 직후 북한 정권은 남침을 감행해 6·25전쟁을 일으켰다.
미국 조야에는 미군 철수와 연계된 전략적 선택을 제기하는 전문가가 한두 명이 아니다. 시카고대학의 존 미어샤이머, 하버드대학의 스티븐 월트 교수는 ‘역외균형론’을 제시한다. 이 주장에 의하면 지역 문제는 지역 당사국이 스스로 해결하고 미군은 그 지역에서 대부분 철수해야 한다. 유럽에 주둔하는 미군을 감축하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가 주도하게 해야 한다.
특정 지역에 미군이 반드시 개입해야 할 경우 투입을 가능한 한 지연해서 미군 피해를 줄이려 한다.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아시아 지역이 더 중요해졌지만 주일미군으로 중국을 견제할 만하다. 키신저, 미어샤이머 등이 암시하는 바는 주한미군을 철수하더라도 아시아에서 국익을 추구할 대안이 있다는 것이다.
현 위기 상황이든 위기 해소 이후이든 코리아 패싱의 여지를 주어서는 안 된다. 주한미군이 절실할수록 한·미동맹을 잘 관리해서 향후 미군 철수 논의가 불거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북핵 해법의 핵심에 한·미동맹도 존재한다는 믿음이 동맹국 조야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늦게나마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와의 통화에서 지금은 대화의 국면이 아니라 제재와 압박의 시기라고 언급하고 북한 정권이 도발할 경우 한·미동맹이 강력하게 응징할 것임을 경고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행여나 트럼프 대통령이 코리아 패싱을 하며 예방공격을 감행하는 일이 없도록 만반의 조치를 취해야 할 때다.
김우상 연세대 교수 전 주 호주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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