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교는 선각자이며 독립지사인 홍암 나철(羅喆·1863~1916) 대종사가 1910년 창시했다. 애초 나철은 고종 때 조정에 출사했던 유학자였으나, 백두산에서 깨달음을 얻어 대종교(단군교)를 창시했다. 그에 따르면 한민족은 단군 왕검이 하느님을 숭배하였고,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등의 제천의식을 거행했다. 나철은 72일간의 금식수행 끝에, 단군교를 일으키고 우리 고유의 선맥을 부활시켰다. 일제강점기라 국내에 들어갈 수 없었던 그는 만주일대로 살길을 찾아 온 조선인들을 통해 전통 선맥을 이었다.
대종교는 인간의 성품은 하늘에서 이어받았다고 설명한다.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교리는 모든 인류를 차별 없이 이롭게 한다는 것. 천도교의 인내천 사상과도 맥이 통한다. 나철의 사상은 민족 정체성 함양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 동안 대종교에는 많은 지식인들이 몰렸고, 대종교는 한국 전통 종교와 문화 계승을 이루는 마당이 되었다. 이를테면 ‘한’의 기원은 하느님이었으며, 한글학자 주시경은 우리글을 ‘한글’로 이름지었다. 주시경 역시 대종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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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대종교 환국 제71주기 기념 학술회의’에서 대종교 홍수철 총전교(가운데)와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종교 제공 |
환국 직후에도 대종교는 번성했다. 50년대 후반 교도 수가 60만 명을 넘어섰고, 삼일신고, 천부경, 참전계경 등 경전과 규원사화, 환단고기 등 역사서를 보급시켰다. 환국 이후 대종교는 민족 종교의 적통으로 인정받아 초대 정부의 제1 교단으로 등록되었다. 당시 대종교의 지식인들이 정부의 고위관리로 입각해 활동했다. 안호상 초대 문교부 장관 등이 중심이 되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교육이념에 홍익인간이 채택되었고 단군 연호, 개천절, 한글 전용 등이 시행되었다. 올해가 단기로는 4474년이다.
민간에서는 대종교 중심으로 민족 행사들이 개최되었다. 1946년 광복 1주년 당시엔 대종교 총본사에서 채화된 성화가 남산 꼭대기에 점화되었다. 그해 개천절 행사에선 성화가 총본사에서 채화되어 마니산 참성단까지 봉송, 점화되었다. 홍익대, 단국대, 경희대 등은 대종교가 설립한 대학이다. 대종교 역사 자체가 독립운동사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소련과 미국 중심으로 남북한 체제가 정착되면서 대종교 교세도 위축된다.
이번 학술회의 주제는 ‘광복이후 대종교 환국과 한국 현대사’다. 주요 테마로는 ‘대종교와 한국 근현대사’ (정영훈 교수), ‘환국 직전의 대종교?임오교변을 중심으로’(이숙화 강사), ‘해방 후 대종교의 환국과 교단 재건’(고병철 연구원), ‘환국 대종교 인물들의 활동’(박용규 교수), ‘대종교 환국의 종교적 의의’(최윤수 삼일원장) 등이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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