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세계포럼] 한 외교관을 위한 항변

관련이슈 세계포럼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17-08-16 23:33:24 수정 : 2017-08-16 23:33:23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미 하원 위안부결의안 공로자가 / CNK 사건으로 기소됐다가 / 5년 만에 무죄 판결받아 / 명예회복은커녕 사과도 없어 문무일 검찰총장은 취임 일성으로 “적법절차 준수와 인권보장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했다. 검찰의 무리한 기소로 인한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였다. 울분을 삭이는 피해자는 또 있다.

2007년 미 하원에서 위안부 청문회가 처음 열렸다. 이용수, 김군자 할머니에 이어 네덜란드계 얀 러프 오헤른 할머니가 일본군에 당한 참상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최악의 여성인권 침해로 규정됐다. 중국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분노했다.

위안부결의안의 대표발의자는 일본계 3세 마이클 혼다 하원의원이었다. 뉴욕한인유권자센터 등은 하원 의원실마다 몰려다니며 결의안에 서명을 받아냈다.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 홀로코스트 생존자 톰 랜토스 외교위원장, 에니 팔레오마베가 아시아태평양소위원장 등을 설득하고 끌어들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을 방문한 하원 의원들을 접견하고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결의안에 서명한 의원은 167명.

한용걸 논설위원
일본은 돈을 무기로 앞세웠다. 일본계 다니엘 이노에 상원의원이 반대 로비에 앞장섰다.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였던 로버트 마이클, 주일 미국대사 출신 토머스 폴리가 일본 측에 섰다. 아베 신조 총리는 보좌관들을 워싱턴에 보내 역로비를 지휘했다. 가토 료조 주미 일본대사는 “결의안이 근거없다”고 주장했다. 한국계 위안부들에게 충분히 보상했다는 보도자료와 편지사본이 의원실에 배달됐다. 미 의회전문지 롤콜과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이 결의안을 무산시키려는 일본의 역로비를 생생하게 보도했다.

이러한 역경을 뚫고 처음으로 위안부결의안이 하원 전체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어둠에 가려졌던 일본의 전쟁범죄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워싱턴 시민단체들은 흥분했다. 캐나다 필리핀 네덜란드 유럽연합 등 의회에서도 결의안이 채택됐다. 2010년 뉴저지주에 위안부 기림비가 세워졌고 ‘평화의 소녀상’으로 번졌다.

이를 막후에서 진두지휘한 숨은 주인공은 외교관이었다. 참사관 김은석이다. 비용을 조달하고, 시민단체를 움직이고, 의원들을 끌어들이는 일을 총괄했다. 정부로부터 포장도 받았다. 귀국 뒤 총리실에 파견됐다가 에너지자원대사로 승진했다.

그러나 영웅이 비리자로 몰린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가 간여했던 2010, 2011년 보도자료가 문제가 됐다. CNK가 개발권을 따낸 카메룬 다이아몬드 광산의 추정 매장량이 4억1600만캐럿에 달한다는 내용이었다. 보도자료가 나올 때마다 주가가 폭등했다. 3000원대였던 게 1만8500원까지 뛰었다. 그는 CNK 주식을 한 주도 갖고 있지 않았지만 엄청난 차익을 챙긴 것으로 매도됐다.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장관에게 감사를 받겠다고 요청했다.

권력 갈등의 수렁에 빠져들었다. 정두언·정태근 의원이 권력실세 박영준 총리실 국무차장을 다이아몬드게이트 의혹의 핵으로 공격하면서 감사원 감사를 요구했다. 김 대사의 동생이 CNK 주식을 갖고 있던 게 드러나자 감사원은 그의 해임을 요구했다.

검찰이 칼을 빼들었다. 외교부 창설 이래 처음으로 압수수색을 당했다. 검찰은 그가 허위 보도자료를 만들어 주가를 조작했다며 기소했다. 주식으로 이득을 챙긴 게 나오지 않자 승진 대가라고 몰아세웠다. 그는 충남대 교수논문과 유엔개발계획(UNDP)의 자료를 근거로 추정 매장량을 포함시켰다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아니요’라고 답한 것조차 ‘예’라고 조서를 꾸미려고 했다.

5년간에 걸친 재판 끝에 지난 6월 무죄 선고가 나왔다. 1·2심 재판부 모두 “허위를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고, 대법원도 검찰 상고를 기각했다. 직위해제 처분이 부당하다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도 나왔다. 1급에서 3급으로 강등된 게 회복되지 않고 있다.

퇴직을 수개월 앞둔 그는 명예회복을 고대한다. 30여년간 국가에 기여한 헌신이 “짜깁기 수사”로 먹칠해진 것을 복구해 달라고 하소연한다. 검찰이 천만 번 사과해도 풀리지 않을 게 있다. 처참할 정도로 궁핍해진 그의 생활과 고개를 들지 못했던 가족들의 정신적 피해이다.

한용걸 논설위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