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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아닌 범죄 '데이트폭력'] 유년기 가정폭력 트라우마…'데이트 폭력' 낳았다

입력 : 2017-09-18 19:15:36 수정 : 2017-09-18 21:4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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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피해자들 성장배경 살펴보면/아동학대·폭력 일상적인 경우가 많아/버림받을 수 있다는 불안에 이상 행동/공포와 불안에 압도돼 대응력 낮아져/폭력 거부감 크지만 되레 관대한 경향
A(22·여)씨는 어릴 적 부모의 폭언과 손찌검에 시달렸다. 무서운 아빠, 엄마였지만 한편으로 ‘부모님이 날 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격은 예민해지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친구들과 마찰을 일으키기도 했다. 성인이 돼서도 늘 외로움에 느꼈던 A씨에게 따뜻한 관심을 보이는 남자친구 B씨는 구원자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B씨는 A씨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이별을 두려워하는 A씨에게 ‘헤어지겠다’고 협박을 하거나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었다. 남자친구마저 자신을 버렸다는 절망에 휩싸인 A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

C(26)씨는 데이트폭력 ‘가해자’다. 그의 연애는 늘 순탄하지 않았다. 여자친구와 다투다 보면 늘 손이 먼저 나갔다. 뒤늦게 후회를 하고 용서를 구해도 그때뿐이었다. 상대가 사과를 받아주지 않으면 받아 줄 때까지 전화를 하거나 집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기도 했다. 최근에 만났던 여자친구에게도 같은 짓을 하다 고소를 당하기까지 했다. C씨 역시 가정폭력을 당했다. 언제든 버림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전전긍긍하는 그는 “나도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분노조절이 쉽지 않다”고 고백했다.

데이트폭력이 가정에서 사회로 이어지는 폭력의 연결고리 안에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어린 시절 학대의 기억은 폭행을 일삼는 걸 아무렇지 않게 여겨 가해행위를 하거나 폭행으로 인한 피해를 쉽게 용인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어린 시절 가정에서 소외됐던 경험과 기억은 성인이 된 뒤에도 쉽게 잊혀지지 않으며 ‘데이트폭력’의 한 부분으로 나타날 가능성도 크다”고 분석했다. 

◆데이트폭력의 단초가 되는 가정폭력

실제로 데이트폭력 피해자들은 피해 경험이 없는 이들에 비해 어린 시절 가정폭력에 더 많이 노출됐던 것으로 조사됐다.

18일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의 ‘데이트폭력 집단별 가정폭력 경험 비율(중복응답)’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30대 데이트폭력 피해여성 638명 중 14.6%가 ‘가정 내에서 신체적 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데이트폭력 피해 경험이 없는 이들(7%)에 비해 2배 이상 높다. 부모에게 언어적 폭력을 당한 경험도 데이트폭력 미피해자 집단은 16.4%였던 것과 달리 28.8%에 이르렀다. ‘주 양육자와의 강제 분리’ 경험도 데이트폭력 피해자가 3.2%로 미피해자의 1.6%보다 높았다.

데이트폭력 연구자들은 가정폭력이 데이트폭력 발생에 영향을 미친다는 데 대체로 동의한다.

2015년 한국청소년학회가 발표한 ‘청소년 데이트폭력에 대한 가정폭력과 사회적 지지의 영향력 분석’ 논문은 118명의 청소년 대상으로 성별, 이성교제 기간, 가정폭력 경험 등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가정폭력은 청소년 데이트폭력과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가진다”고 결론을 내렸다. 가정폭력이 개인의 사회적 역할과 심리적 안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데이트폭력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학회는 “데이트폭력 가해자와 피해자는 아동학대를 당했거나 폭력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가정에서 성장한 경우가 많았다”며 “부모의 직접적인 폭력, 부부싸움을 방지하면 청소년 데이트폭력을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복된 폭력, 무기력한 피해자들

폭력적인 상황에 일찍부터 노출된 상당수의 데이트폭력 피해자들은 폭력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만 오히려 ‘관대한’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강하다. 폭력에 대한 경험이 이미 존재하는 상태에서 또 한번의 강한 폭력에 노출되면 공포와 불안에 압도된 나머지 대응능력이 현저히 낮아지기 때문이다.

D(26·여)씨가 그렇다. 어머니가 늘 아버지에게 맞는 모습을 보며 자란 D씨는 아버지의 폭력이 언제 일어날지 몰라 늘 긴장상태로 살았다. 폭력적인 분위기에 대한 거부감도 그만큼 크다. 그러나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 이런 거부감을 확실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요구할 때도 ‘싫다’고 확실하게 표현하지 못했다. ‘연인 간 스킨십 거부가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닐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또 남자친구에게 심리적으로 많이 의존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이별에 대한 두려움도 컸다. 이런 일들이 쌓이면서 김씨는 한 건물 옥상에서 남자친구에게 강제추행을 당하기까지 했다. 

최근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가 진행한 ‘데이트폭력 수준에 대한 심각도와 허용도’에 관한 조사에서도 데이트폭력 피해자 219명 중 14.3%가 ‘연인 간 신체적 폭력이 있을 수 있다’고 답했다. 미피해자(211명)의 10%에 비해 높다. 폭력에 대한 허용적 태도는 성적 폭력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데이트폭력 미피해자 213명 중 7%만 ‘그럴 수 있다’고 답변한 것과 달리 데이트폭력 경험자 중 13.1%가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를 일종의 ‘스톡홀름증후군(자신을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한 가해자에게 공감하거나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현상)’과 유사하게 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김도연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장은 “아동학대, 성폭력 등 폭력을 경험한 집단에서 데이트폭력을 겪을 경우 폭력에 대한 허용도가 높아지고 이는 또다시 가정 내 폭력과 아동학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김민순 기자 so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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