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과학(SF) 작가이자 과학자이며 미래학자였던 아서 클라크. |
◆탄생 100주년 맞은 아서 클라크의 ‘우주 세계’
적도 상공 3만6000㎞에서 고정된 것처럼 보이는 위성을 정지궤도 위성이라고 부른다. 물론 인공위성이 정지해 있는 것은 아니다. 지구를 도는 공전주기가 지구의 자전주기와 같아 지구에서 볼 때 한자리에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정지궤도는 ‘클라크 궤도’(Clark Orbit)라고 칭하기도 한다. 이 개념을 제안한 아서 C. 클라크(Arthur C. Clarke·1917~2008)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리즈로 유명한 그는 국내에도 적지 않은 마니아를 보유하고 있는 공상과학(SF) 작가다. 그는 동시에 작가적 상상력을 통해 과학, 특히 우주 기술에 결정적인 영감을 제공한 과학자이자 미래학자였다.
우리나라의 정지궤도 복합위성 ‘천리안’ 1호. 아서 클라크는 1945년 정지궤도 통신 위성의 개념을 처음 이론적으로 제시했다. |
◆수학·물리학도에서 SF 소설가로
아서 클라크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과학적 상상력과 유산이 재조명되고 있다.
1917년 영국에서 태어난 아서 클라크는 런던 킹스 칼리지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한 과학도였다. 영국행성간학회(BIS)에 참여하며 수학과 물리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다. 이러한 과학적 지식을 더욱 쉽게 대중에 전파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은 바로 ‘문학(SF 소설)’이었다. BIS 회원으로 활동하던 20대 초부터 과학 잡지에 여러 편의 소설을 발표하면서 재능을 인정받았다. 이후 평생 100권 이상의 작품을 남기며 세계 3대 SF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놀라운 사실은 그가 소설에서 그린 미래 예측과 예언이 하나씩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1920~92)가 1940년대 제시한 ‘로봇 3원칙’이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실제 화두가 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와 필적해 아서 클라크가 제시한 ‘과학 3법칙’도 SF나 과학기술 마니아들이 일종의 ‘경구’처럼 새기고 있다. 이 법칙을 요약하면 과학기술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하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영역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이며, 과거에는 마법처럼 생각했던 기술이 실제로 구현된다는 것이다.
제1원칙: 로봇은 인간에 해를 끼쳐서는 안 되며, 위험에 처한 인간을 방관해서도 안 된다.
제2원칙: 1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반드시 복종해야 한다.
제3원칙: 1, 2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한 로봇은 자기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아서 C. 클라크의 ‘과학 3법칙’
제1법칙: 어떤 뛰어난, 나이 든 과학자가 무언가가 가능하다고 말했다면 그는 틀림없이 옳다. 그러나 그가 무언가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면 그는 거의 틀렸다.
제2법칙: 어떤 일이 가능한지 알아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불가능의 영역에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다.
제3법칙: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
그의 삶도 이러한 법칙에 충실했다. 문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당시에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우주 기술을 제시하고, 과학적 상상력을 가미해 이것을 이론으로 정립하는 일에 주력했다.
◆70년 전 정지궤도·통신위성 예측
아서 클라크의 예측 가운데 실현된 대표적인 우주기술이 바로 정지궤도 위성이다. 지금은 일반화된 통신위성의 개념을 70년이나 전에 정립한 것이다.
그는 1945년 무선통신 잡지 ‘와이러리스 월드’(Wireless World)에 게재한 ‘지구 밖의 통신 중계’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대륙 간 통신을 위해) 인공위성을 이용하는 것은 어떨까? 만약 로켓을 초속 5마일(약 8km)로 쏘아 올릴 수 있다면 지상으로 추락하지 않고 지구 주위를 도는 제2의 달이 될 것이다. 인공위성의 고도가 2만2000마일(약 3만5000km) 상공이라면 가장 효과적인 궤도가 될 수 있다. 이 높이에서는 인공위성이 지구를 한바퀴 도는데 정확히 하루가 걸린다. 따라서 이 위성을 적도 상공에 쏘아 올리면 그 자리에 가만히 정지한 것처럼 보이게 된다.”
그의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정지궤도에 우주정거장을 건설할 수도 있다. 여기에 무선 송·수신기를 설치하면 장거리 무선통신의 중계국 역할을 할 수 있다. 위성 하나로는 부족하지만 3개라면 지구 전역이 통신의 범위에 들어간다.”
약 20년 후 그의 예언은 현실화된다. 1964년 최초의 정지궤도 위성 ‘신컴’(Syncom) 3호가 발사되고, 그해 열린 1964년 일본 도쿄올림픽의 중계 영상이 이를 통해 세계 최초로 전파된다. 국제위성통신기구인 인텔샛(INTELSAT)이 조직된 것도 바로 그 해다.
◆SF 소설과 영화의 고전 ‘스페이스 오디세이’
아서 클라크의 예언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도 뛰어난 미래 통찰력을 선보였다. 1968년 미국의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영화로도 만든 이 작품은 외계 존재에 의해 지적 발전을 이룬 인류가 외계 존재의 메시지를 따라 토성으로 날아가면서(여기서 등장하는 우주왕복선 이름이 ‘디스커버리호’) 겪는 불가사의한 일을 그리고 있다.
작품의 소재와 배경은 다분히 공상과학적이지만, 과학기술의 미래를 정확히 예측해 SF 최고의 고전이자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우주선 모양이나 내부의 풍경뿐 아니라 ‘할(HAL) 9000’으로 불리는 인공위성(AI) 컴퓨터가 등장하기도 한다. ‘아폴로’ 13호선의 지휘선과 2001년 미국항공우주국(NASA)가 쏘아 올린 무인 우주 탐사선의 이름이 ‘오디세이’였다는 점은 이 작품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68년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한 장면. |
또 유럽위성통신기구인 유텔샛(EUTELSAT)은 통신위성의 이름을 아예 ‘아서 클라크’로 명명했다. 우주의 한 소행성(4923 클라크)에도 그의 이름이 붙여졌다. 미국위성방송통신협회(SBCA)에서는 지난 1987년부터 ‘아서 클라크 상’을 제정해 방송통신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이를 상대로 시상을 하고 있다.
이 소설과 영화가 나온 지 1년 후 토성은 아니지만, 드디어 인류는 달에 첫발을 내딛게 된다. 아서 C. 클라크는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할 미국 방송사 CBS의 중계에 참여하기도 했다. 또 달에 첫발을 디딘 역사적 순간의 주인공이었던 닐 암스트롱은 아서 C. 클라크에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이밖에도 1979년 작품인 ‘낙원의 샘’에서는 우주 엘리베이터가 등장한다. 정지궤도에 우주정거장을 만든 뒤 여기서 지상까지 케이블을 늘어뜨려 엘리베이터를 건설한다는 개념이다. 1895년 러시아의 한 천문학자가 최초로 아이디어를 내놨지만, 이를 대중적으로 알린 주인공 역시 아서 C. 클라크였다. 당시로써는 ‘허황된’ 개념이었지만, 최근 우주 엘리베이터와 관련된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2014년 일본의 한 기업은 2050년까지 9만6000㎞ 상공의 우주 엘리베이터를 건설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상상력과 도전 정신으로 이룬 우주개발 역사
1902년 최초의 장편 SF 영화인 조르주 멜리아스의 ‘달세계 여행’에서는 인류의 달 착륙을 상상력으로 표현했다. 사람을 실은 포탄을 달까지 쏘아 올린다는 엉뚱한 상상이었다. 영화에서는 포탄을 맞은 달의 찡그린 표정이 등장한다. 이 영화가 개봉됐을 당시 대중이 이를 보고 얼마나 웃었을지 짐작이 간다.
최초의 장편 공상과학(SF) 영화 ’달세계 여행’의 한 장면. 이 영화는 인류의 달 착륙을 상상해 표현했다. 출처=위키백과 |
이런 허황되고 엉뚱한 생각과 상상이 모여 과학의 진보를 이루었다. 인류가 미지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우주를 개척하려면 더 많은 상상력과 모험, 도전이 필요했다. 아서 클라크의 과학 3법칙 가운데 제2법칙을 다시 떠올려 보자.
‘어떤 일이 가능한지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불가능의 영역에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 상상력과 도전 정신이 지금의 우주기술을 탄생시켰다. 아서 클라크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인류가 걸어온 그 위대한 도전과 앞으로의 여정을 다시 한번 그려본다.
그의 3법칙은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이다.
어떤 마법 같은 미래가 펼쳐질지 궁금하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홍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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