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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스토리] 양면에 새겨진 ‘반 백년의 역사’ 알리고 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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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0-14 10:22:38 수정 : 2017-10-14 10: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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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北 기념주화 발행 준비 정보 입수 / 박정희 전 대통령 지시로 1971년 첫 제작 / 올림픽·엑스포·국제대회 등 행사 홍보 / 정부수립 등 중요한 기념일 의미 되새겨 / 최근 종묘·탈춤·국립공원·민속놀이 등 / 문화재 기념주화 잇따라 선보여 '눈길' / 정부 요청·한국은행 자체 기획으로 제조 / 통화 역할… 47년간 3347만5412개 발행
우리나라 기념주화의 역사는 197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대한민국 반만년역사 기념주화’가 제조됐다. 그 배경에 ‘북한’이 있었다. 1969년 해외 정보망을 통해 북한에서 최초의 기념주화 발행을 준비한다는 정보가 입수됐다. 박정희 대통령은 북한보다 먼저 기념주화를 만들고 싶어했다. 우리나라는 기념주화를 만들 기술도 없을 때였다. 독일 주화제조업체에 의뢰를 했고, 이탈리아 이탈캄비오사가 제조를 맡아 1971년 3월2일 한국은행이 발행한 최초의 기념주화가 세상에 나왔다. 이후 올림픽 등 체육행사, 대전엑스포 등 국가행사, 광복 등 국가기념일이 있을 때마다 기념주화가 발행됐다. 기념주화 발행 역사를 보면 40여년간 우리나라에서 어떤 행사들을 치러왔는지 되짚어볼 수 있다.

◆대한민국 역사와 함께한 기념 주화

중요한 국가기념일이나 한국에서 개최된 국제행사들도 기념주화를 남겼다.

1945년 광복을 기념한 주화는 거의 10년마다 발행된다. 1975년 광복 30주년 기념주화가 처음 발행됐다. 이 주화는 ‘대한민국 반만년역사 기념주화’에 이은 두번째 주화다. 하지만 국내 기술로 처음 제조한 것이어서 순수한 의미로 국내 최초의 기념주화로도 볼 수 있다. 독립문과 유관순 의사가 디자인돼 있다. 광복 40주년 기념주화는 발행되지 않았다. 당시 사회 혼란 때문으로 추정할 뿐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후 1995년 광복 50주년, 2005년 광복 60주년, 2015년 광복 70주년 기념주화가 차례로 선보였다. 광복 기념주화 가운데는 30주년 기념주화 발행량이 가장 많다. 100원화 1종만 500만개가 발행돼 널리 판매됐다. 광복 50주년은 2종 12만8100개, 광복 70주년 3종 12만4100개다. 광복 70주년 기념주화의 경우 3종의 주화를 나란히 배치하면 전체적인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는 도안 구도가 처음으로 적용됐다.

1948년 정부수립을 기념해서는 50주년(1998년)과 60주년(2008년) 두 번 나왔다. 50주년 기념주화의 경우 앞면에 태극문양이 새겨졌는데, 세계에서 처음으로 칠보기법을 적용해 빨간색과 파란색을 냈다.

주화로 기록한 굵직한 국제행사도 여러 차례다. 2000년엔 한국에서 아셈(ASEM·아시아유럽정상회의)을 치렀고, 2005년엔 에이펙(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2010년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 등이 대표적이다. 각국 정상들이 모인 국제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내 국가 위상을 높였다. 대전세계박람회(1993년)와 여수세계박람회(2012년)도 있었다. 대전세계박람회 기념주화 발행량이 98만개로 가장 많다. 정상회의 기념주화 발행량은 2만∼6만개 수준이다. 2015년에 제7차 세계물포럼이 경주에서 개최됐는데, 당시에도 기념주화를 발행했다. 발행량은 1만600개, 현재까지 가장 적게 발행된 기념주화 기록을 갖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은 자체적으로 한국의 문화재와 국립공원을 주제로 한 기념주화를 선보이고 있다. 탈춤 등 전통민속놀이, 종묘 등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 경주 역사유적지구 등 문화유산 등을 주제로 한 기념주화 시리즈가 잇따라 선보였다. 가장 최근에는 한국의 국립공원 시리즈를 시작했다. 지난 9월 지리산과 북한산을 시작으로, 앞으로 7년 동안 우리나라 22개 국립공원을 기념주화로 발행할 예정이다.
◆주요 국제 체육행사의 단골 홍보대사

우리나라는 8번의 대규모 국제 체육행사를 개최했다. 대회 때마다 조직위원회는 한국은행에 요청해 기념주화를 만든다. 판매 수익은 대회 개최를 위한 비용으로 쓰인다.

첫 대회는 1978년 제42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였다. 세계사격선수권대회가 주로 유럽, 서구 지역에서 열렸다는 아시아 지역 참가국들의 불만에 힘입어 멕시코와 경합하던 우리나라가 개최권을 따냈다. 당시 정부는 5000원화 1종, 500원화 1종의 주화를 총 109만7100개 발행해 기념했다.

1980년대에는 1986년 제10회 아시아경기대회와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 2개의 굵직한 국제 스포츠행사를 치러냈다. 기념주화도 발행됐다. 아시아경기대회 기념주화 발행량은 172만5800개다. 서울올림픽 기념주화는 발행량 면에서 최다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1982년 올림픽대회 유치 기념으로 1, 2차 총 352만8500개를 발행했고, 서울올림픽에 가까워서는 1987∼1988년 5차에 걸쳐 기념주화 796만1600개를 발행했다. 서울올림픽과 연관해 약 1150만개의 주화가 나온 것이다. 당시 인구가 4000만명 정도였으니 매우 흔하게 팔렸다는 이야기다. 서울올림픽 기념 5만원화(금화)는 당시 판매가로 70만원에 달했다.

2002 FIFA월드컵축구대회는 우리 국민에게 잊을 수 없는 축제다. 당시 45만개가량 발행된 기념주화에는 축구의 역사, 우승트로피와 마스코트, 한국·일본 지도, 서울·수원·대전·대구·제주 등에 각 지역 경기장 등이 담겨 있다. 이밖에 2002년 부산아시아경기대회,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대회,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2015년 경북문경 세계군인체육대회 등도 기념주화를 발행한 체육행사다.

◆기념화폐 발행 절차는

기념화폐 발행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 ‘지불 수단으로서 기능하는 화폐’이기 때문이다. 기념주화나 지폐를 들고 은행에 가면 액면가만큼 현금으로 바꿀 수 있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안이 있을 때 정부가 요청하기도 하고, 한국은행이 자체적으로 기획하는 경우도 있다. 올림픽 등 체육행사의 경우는 국회에서 특별법을 마련한 뒤 한국은행에 요청해 제조된다. 이번 기념지폐의 경우는 특별법 가운데 ‘조직위원회가 기념주화 발행을 한국은행에 요청할 수 있다’는 규정을 ‘기념화폐’로 개정하면서 탄생했다. 1971년 우리나라 기념주화 발행 이후 평창동계올림픽 기념주화·기념지폐 발행 예정분을 포함하면 총 발행횟수는 53회, 165종이다. 총 발행량은 평창 기념주화 2차가 미정이기에 확정할 수는 없지만 최대 발행량을 감안하면 47년간 3347만5412개가 된다.

이진경 기자 l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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