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법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상대로 추가 구속영장을 발부하며 밝힌 사유는 이 짧은 한 문장이 전부다. 한마디로 증거인멸 우려가 박 전 대통령의 ‘운명’을 결정한 것인데 “전직 대통령인 피고인이 풀려나면 다른 증인과 참고인들을 ‘압박’해 기존 진술을 바꾸거나 증거를 감추도록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검찰 주장을 사실상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 전 대통령이 건강을 이유로 재판 출석을 회피한 것도 결과적으로 자승자박이 됐다.
초췌한 朴 前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2차 구속영장이 발부된 13일 안경을 쓴 박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재판에 출석한 뒤 구치소로 가기 위해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
앞서 검찰은 재판부에 낸 의견서에서 “박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으로서 중요 증인들을 지휘한 바 있고 각종 현안보고를 통해 개별 기업 정보를 보유하고 있었다”며 “석방될 경우 주요 증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진술을 번복시키거나 증거를 조작할 우려가 크다”고 주장했다.
재판부가 이번에 영장을 추가로 발부한 롯데·SK 뇌물사건에서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핵심 증인의 신문을 남겨두고 있다. 이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이 풀려나면 이들을 비롯한 여타 증인들이 심리적 압박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전직 대통령’이란 특수한 신분이 그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노영희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이 재판에 성실히 임하지 않은 모습을 보인 것이 추가 구속영장 발부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헌법재판소도 지난 3월10일 그에게 파면을 결정하며 “검찰과 특별검사의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청와대 압수수색도 거부했다”며 “대통령의 헌법수호 의지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고 질타한 바 있다.
석방 촉구하는 朴 지지자들 1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수감돼 있는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지지자들이 박 전 대통령을 즉각 석방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의왕=연합뉴스 |
검찰은 박 전 대통령 구속기간 연장 결정에 안도하면서도 ‘표정 관리’에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1차 구속기간이 만료하는 오는 17일 0시 이전에 추가 구속영장을 집행할 계획”이란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은 즉각 입장을 내놓진 않았다. 다만 박 전 대통령 측근이었던 최순실씨 변호인 이경재 변호사는 “인권보다는 재판 편의를 위해 구속한 것”이라며 “무죄추정의 원칙, 인권 옹호, 불구속 재판의 원칙이 이번 기회에 선언됐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다. 법원 결정이 온당한지는 평가돼야 할 것”이라고 날 선 반응을 보였다.
법조계는 대체로 ‘타당한 판단’이라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판사는 “재판부가 나름대로 고심해 내린 판단이므로 존중해야 한다”며 “오로지 법에 따라 판사가 구속영장 발부 사유를 검토해 내린 결정이므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도 “물론 무죄추정 원칙이 적용되겠지만 지금까지의 재판 진행 상황도 고려되는 것”이라며 “(박 전 대통령처럼) 죄질이 무겁고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있으면 구속 사유가 인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자꾸 정치적 고려를 얘기하는데 그런 것은 법원이 할 필요도 없다”며 “순전히 법률적 측면만 고려해도 혐의가 중하면 구속영장 추가 발부는 당연한 결과”라고 덧붙였다.
박진영·배민영 기자 jyp@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