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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사람] “北에 고려불화·사경 꾸준히 소개… 문화 교류 이어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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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1-06 21:02:23 수정 : 2017-11-06 21: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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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현대불교’ 김형근 발행인 / 사찰탐방단 끌고 네차례 평양 다녀와 / 北, 고려 불교문화 지식·자료 태부족 / 김경호 사경 작품 등 깊은 관심 보여 / 고려불화, 섬세하면서도 화려함 뽐내 / 불교 교리 전파 핵심 역할했던 사경 / 한국 인쇄술 발달 이끌어 가치 높아 / 美·日과도 교류… 평화 불씨 지필 것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하지만 남북문제는 어떻게든지 대화와 교류를 하면서 평화적으로 풀어야 한다. 그래서 늘 이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네번이나 북한사찰탐방단을 이끌고 평양을 방문한 미주현대불교 발행인 김형근씨를 최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남북불교교류 어떻게 풀어야 하나’를 주제로 열린 포럼 발제를 위해 서울에 왔다. 그동안 북한에 한국작가들의 고려불화와 사경(寫經)을 꾸준히 소개해 온 인물이기도 하다.

“사찰순례단은 유명 사찰을 중심으로 유적지 답사와 명승지 관광도 함께 했다. 평양의 중앙력사박물관, 평양미술박물관, 개성의 고려박물관 등이 주요 방문지이다. 북한에는 이 분야에 원본도 적고, 자료와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15년 3차 방문에서 돌아온 후에는 방북하는 사람들을 통해 사경에 대한 자료를 보내주었고, 2016년 사찰 방문 시에는 직접 고려불화 도록과 사경에 관한 많은 자료들을 직접 가지고 가서 조선불교도연맹에 전달했다. 이들은 고려사경과 고려불화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김경호 사경 ‘반양심경’
요즘엔 북한에서도 사찰 복원 작업을 위해 박물관 등에서 영인본을 제작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평양에 고려불화연구소가 있다고는 하지만 실체에 대해 알려진 것은 없다.

“고려불화는 광물질 안료인 석채(石彩)가 뿜어내는 고상한 색상과 금니(금가루)의 화려함이 하나 되어 신비한 느낌을 줘서 현대 서구인들에게도 매력적인 대상이다. 치밀한 형태묘사와 활달한 필선, 짜임새 있는 구성 등은 현대작가들에게도 살아있는 교과서가 되고 있다.”

그는 그동안 한국의 조이락 고려불화 작가 등을 지속적으로 미국에 소개하는 데 앞장서 왔다.

“고려불화는 비단 바탕에 붉은색, 녹색, 청색을 중심으로 흰색, 황색이 주로 사용된다. 원색을 사용하지만 석채의 귀한 안료 덕에 우아한 빛을 발산한다. 게다가 화면 뒤에서 칠하는 복채법(伏彩法)과 원색 사이사이에 중간색을 효과적으로 삽입해 이런 분위기를 배가시키고 있다.”

그는 특히 고려불화의 복채법과 윤곽선에 금을 많이 사용한 기법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복채법은 주로 신체나 옷 등의 묘사에 쓴다. 뒤에서 백색 안료를 칠한 뒤 앞면에서 다시 붉은색이나 황토색 계열 안료를 엷게 칠하여 부드러운 살색을 연출하고, 붉은색을 화면 뒤에서만 칠하면 은은한 파스텔톤이 구현된다.”

그는 복채법과 금니 사용이 고려불화에 입체감을 부여하는 포인트라고 했다.

“게다가 먹선으로 형태의 윤곽을 잡은 후, 가느다란 붉은 선을 사용해 신체 등의 테두리선을 그린 후 주변은 붉은색으로 엷게 선염 처리하여 입체감을 더 부각시키고 있다.”

조이락 ‘수월관음도’
섬세하고 화려한 고려불화는 그렇게 탄생된 것이다. ‘수월관음도’를 보면 관음보살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감싸며 흐르는 투명한 베일(사라)이 금방이라도 바람이 불면 살랑거릴 것만 같다. 베일 사이로 비치는 붉은 치마는 섬세한 넝쿨무늬로 가득하다. 금가루로 빈틈없이 그린 무늬들은 화려하면서도 관음보살을 더욱 돋보이게 해 준다. 고려 지배층들은 불화를 절에 바치며 죽은 뒤에 극락에서 다시 태어나기를 소원했다고 한다.

김 발행인은 고려불화와 더불어 고려사경에도 관심이 많아 김경호 고려사경 작가의 작품을 미국은 물론 북한에도 소개해 왔다.

“사경은 일반적으로 불교 경전 베껴 쓰기쯤으로 알고 있는데,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불교 교리의 전파와 교육의 핵심이었다.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그런 기능은 점차 약해지면서 사경은 공덕을 쌓는 신앙 행위이자 수행의 방편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그는 고려사경이 있었기에 한국이 세계 인쇄문화의 종주국이 될 수 있었다고 강조한다. 현존 최고의 금속활자인쇄물(직지심체요절)의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인쇄술이 사경을 더 편리하게 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개발됐으니 세계 문명문화사 속 한국 사경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것은 당연하다. 고려시대에는 중국에 전문인력을 역수출한 유일한 분야였다.”

그는 모두 여섯 차례 북한을 다녀오면서 북한 불교의 변화도 감지했다.

“북한은 6·25전쟁 이전에는 600여개의 사찰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대략 60개 사찰이 있다. 북한은 6·25전쟁 직후인 1955년부터 북한사찰 복원을 시작했다. 칠보산 개심사, 구월산 월정사, 금강산 표훈사 등 많은 사찰들의 건물과 탱화 등에 보수가 시급한 실정이다. 스님들의 숫자는 아직 파악을 못하고 있다. 스님들은 철학이나 역사를 전공하였거나 거의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었다.”

문화교류 역량이 평화의 터전이 된다고 강조하는 미주현대불교 김형근 발행인. 그가 미국과 북한에 고려불화 등을 꾸준히 소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이념을 떠나 배급사회에선 시주나 보시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여러 이유에서 북한 스님들은 ‘종교 공무원’쯤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라고 했다.

“1995년부터 북한 사찰을 방문했으니 벌써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금 북한 불교계는 눈에 보이는 변화가 몇 가지 있다. 세대교체와 더불어 스님들의 외모 변화다. 북한의 스님들은 1991년 미국 방문할 때도 삭발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1차 순례를 할 때인 2005년에는 오직 묘향산 보현사에서만 두명의 삭발 스님을 볼 수 있었지만 요즘에는 삭발한 스님들이 아주 많다.”

그는 지난해 명적사와 석왕사를 방문했다. 명적사는 많은 부도와 비가 있었고 법당은 있었지만 불상이 없었다. 안변 석왕사 바로 아래 지역은 북한 휴양지다. 석왕사는 시멘트로 법당을 건립하고 있었다.

“북한에서 복원한 사찰들을 보면 시멘트로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릉사도 시멘트로 하였고, 석왕사도 매한가지다. 목재 부족과 더불어 대목장의 대가 끊어진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됐다.”

요즘 그는 세계평화유불선연합회(회장 석일징)와 함께 일본에 조이락 고려불화와 김경호 고려사경을 소개하는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일본 불교협회 측과 공동으로 마련하는 행사다.

“미국, 일본 등과의 교류 역량을 모아 남북평화의 불씨를 지피겠다는 마음으로 두 손 모으고 있습니다.” 불교신자인 김형근 발행인은 미국에서 회계학을 전공하고 한때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뉴욕에서 미주현대불교를 발행하면서 회사는 접었다. 그의 부인은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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