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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그후] 10년 전 숭례문 방화범, 복역 마치고 곧 만기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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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2-09 11:08:16 수정 : 2018-02-09 11: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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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10일 시너·라이터로 방화… 나흘 만에 경찰에 구속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상고심 주심 맡아 징역 10년 중형 확정
2008년 2월10일 밤 대한민국 국보 1호 숭례문이 방화로 불에 타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꼭 10년 전인 2008년 2월10일 대한민국 국보 1호 숭례문이 불길에 휩싸였다. 방화로 인한 화재였다. 소방차 32대, 소방관 128명이 즉각 현장에 출동해 진화작업을 했으나 화재 발생 5시간 만에 1·2층 목조 누각 대부분이 시커먼 재가 되고 말았다. 가슴을 졸이며 현장을 지킨 시민들한테 커다란 슬픔과 안타까움을 안긴 채 숭례문은 무너져 내렸다.

9일 법조계와 문화계 등에 따르면 올해는 숭례문 방화사건 10주년이 되는 해다. 2008년 2월10일 국보 1호가 시민의 방화로 잿더미가 된 참담한 현실 앞에 온국민이 가슴을 치며 원통해했다. 문화재청은 이 사건을 교훈 삼아 2011년부터 매년 2월10일을 ‘문화재 방재의 날’로 정해 문화재 재난대응 훈련을 하고 있다. 올해도 전날 서울 중구 덕수궁 중화전에서 서울소방재난본부와 중부소방서 주관으로 화재진압 훈련을 실시했다.

숭례문 방화범 채종기는 2008년 2월14일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구속돼 대법원에서 징역 10년이 확정됐다. 조만간 만기출소할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숭례문 방화범 채종기(80)는 도대체 왜 그런 범행을 저지른 걸까. 채종기는 경기 고양시에 땅을 조금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땅이 도로 건설을 위한 부지로 수용됐다. 채종기는 토지 수용에 따른 보상금이 기대에 못 미친 점에 불만을 품고 언론사에 제보했으나 퇴짜를 맞았다. 이어 청와대과 국민고충처리위원회(현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을 냈으나 그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사회적 이목을 끌 목적으로 국보 1호라는 상징성이 큰 숭례문에 불을 지르기로 마음먹었다.

채종기는 숭례문 방화 전에도 문화재 훼손을 시도한 이력이 있었다. 창경궁 문정전을 방화하려 한 혐의로 2006년 7월 법원에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이다. 그가 숭례문 방화를 저지른 것은 집행유예 기간 도중이었다.

범행은 치밀했다. 채종기는 가연성이 강한 시너를 방화 도구로 준비했다. 사전에 여러 차례 숭례문 일대를 답사하며 침입 방법을 궁리한 끝에 사다리까지 마련했다. 기어이 2008년 2월10일이 밝았다. 그날 오후 8시40분 주변이 캄캄해지자 채종기는 사다리를 타고 숭례문 누각 위로 올라가 시너를 부은 다음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5시간 만인 이튿날 새벽 1시54분 숭례문 문루의 90% 이상이 소실되고 말았다.

채종기는 범행 하루 뒤인 2008년 2월11일 인천 강화군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 나이는 70세. 경찰이 채종기의 집을 압수수색했을 때 사다리와 시너 1병이 발견됐다. 2008년 2월14일 경찰에 구속된 그는 곧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4부(당시 부장판사 이경춘)는 사건 발생 2개월 여 만인 2008년 4월25일 채종기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채종기는 재판 내내 반성하는 기미는 조금도 없이 “토지 수용 보상금이 너무 적다. 국가에 의해 심히 부당한 처분을 받았다”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이에 재판부는 “국가의 소송제도 등 각종 적법절차에 의한 처리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폭력적 불법행동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려 한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반사회적 범죄행위”라고 질타했다.

이어 “숭례문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적 문화재로 해외에까지 널리 알려져 있고 국보 1호로 지정돼 우리 국민은 높은 민족적 자긍심을 간직해왔다”며 “국민들은 상상할 수 없는 사건으로 인한 충격과 수치심으로 고통을 감내하기 어려운 큰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중형 선고가 불가피함을 밝혔다.

숭례문은 무려 5년이 넘는 복원공사 끝에 박근혜정부 시절인 2013년 5월 일반에 다시 공개됐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1심 판결 3개월 뒤인 2008년 7월31일 서울고법 형사9부(당시 부장판사 고의영)는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은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개인적으로 어려운 사정이 있다고 할지라도 나라 문화재에 방화해 훼손했다는 사실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며 “소실된 숭례문은 복원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은 2008년 10월9일 대법원 2부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당시 주심 대법관으로서 상고심 심리를 담당했다.

채종기는 올해로 10년 복역을 마쳤다. 그 사이 숭례문은 무려 5년이 넘는 복원공사를 거쳐 2013년 5월 일반에 다시 공개됐다.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으로 온나라가 축제 분위기인 가운데 법조계와 문화계에선 ‘다시는 숭례문 방화와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어선 안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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