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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사회로 가는 길] 쩍벌남·개똥녀·맘충 … 실종된 시민의식 신조어로 표출

관련이슈 행복사회로 가는 길

입력 : 2018-02-20 19:42:23 수정 : 2018-02-20 20: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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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만연하는 이기주의 / 논란 일으킨 표현 대명사처럼 고착화… 사회 갈등 대부분 시민의식과 맞닿아 / 공공 갈등 원인 ‘배려의식 부족’ 꼽아… 전문가 “관심 끌려 자극적 용어 사용”
#1. 서울에 사는 직장인 이모(29)씨는 지난 주말 집 근처 코인 빨래방에 갔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생으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비좁은 공간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이씨의 빨래 더미를 넘어뜨린 것이다. 방금 빤 빨래들이 바닥에 쏟아져 버렸지만 아이와 그 부모는 대수롭지 않은 듯 반응했다. 이씨가 거세게 항의하자 부모는 그제서야 “미안하다”면서도 “애들이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되레 쏘아 붙였다.

#2. 홍모(33)씨 커플도 최근 찾은 음식점에서 불쾌한 경험을 했다. 40∼50대 남성 셋이 들어와 큰 목소리로 떠들기 시작하더니 일하는 아주머니에게 대놓고 욕설 섞인 반말을 했기 때문이다. “남자 몸에 좋은 걸로 갖다달라” 식의 성희롱성 발언은 물론이고 “5인분 같은 3인분을 달라” 등 꼴불견 행태가 이어졌다. 홍씨는 “어머니뻘이신 분을 막대하는 모습에 내심 욕지기가 치밀었지만 괜한 시비가 생길까봐 가만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백만명이 운집한 촛불집회에서도 우리 시민들은 사건사고 하나없이 시민의식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런 주요 이벤트 때 보여주는 시민의식은 그 때 잠시 뿐. 일상에서는 그런 시민의식은 여지없이 실종되고 말아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전문가들은 개인과 집단 사이 벌어진 도덕의 간극이 좁아져야한다고 강조했다.

◆시민의식 비꼬는 자학적 신조어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시민의식의 필요성을 실감하고 있다. 20일 서울시가 지난 1월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7 서울시 공공갈등 인식’에 따르면 공공 관련 갈등이 발생하는 원인을 묻는 말에는 가장 많은 응답자가 ‘서로 배려하는 성숙한 민주적 시민의식 부족’(39.1%)을 꼽았다. ‘정부불신 등 사회신뢰 부족’(37.8%), ‘법과 제도, 절치의 미비’(21.7%)보다 높았다. 현대사회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갈등이 시민들의 의식 문제와 맞닿아 있다는 걸 시민들 스스로가 이미 알고 있는 셈이다.

시민의식에 대한 대중의 갈증은 꾸준히 등장하는 신조어들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지난 2004년 언론에 처음 등장한 ‘쩍벌남’, 이듬해 등장한 ‘개똥녀’는 무개념 인물을 지칭하는 대표적인 표현이다. ‘김여사’, ‘막말녀’ 등을 비롯해 2012년 이후 벌레라는 뜻의 ‘충(蟲)’이란 단어가 대중적으로 알려지면서 ‘맘충’, ‘길빵충’, ‘낙서충’ 등 신조어들이 잇따랐다. 지난해엔 영화관 등에서 몰지각한 행위로 관람을 방해하는 이른바 ‘관크족’(관객+크리티컬)이란 단어가 주목받은 바 있다.

부적절 논란을 일으킨 표현이 ‘대명사’처럼 고착화된 경우도 있다. 2014년 정몽준 당시 서울시장 후보의 고등학생 아들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미개하다’란 표현이 한바탕 논란이 됐다. 이후 네티즌들은 몰지각한 시민들의 행태가 언론을 통해 드러날 때마다 ‘정몽주니어(정몽준의 아들) 1승’, ‘정몽주니어 연전연승’ 등 표현을 쓰곤 했다. 2016년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국민은 개돼지” 발언 이후엔 ‘개돼지’란 표현이 무개념 행태를 비꼴 때 단골처럼 등장한다.

노진철 경북대 교수(사회학)는 “온라인의 발달과 맞물려 자조적이고 모욕적인 단어들이 계속해 재생산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언론이 자극적인 단어로 헤드라인을 다는 것처럼 네티즌들도 낮은 시민의식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자극적인 용어를 쓰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개인의 도덕과 집단의 도덕 괴리 커”

일각에서는 이처럼 시민의식을 비꼬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피해받고 싶지 않아하는’ 개인의 욕구가 커졌기 때문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즉 과거처럼 공동체 등 거시적인 가치를 강조하기보다는 개인 간의 충돌을 피하려는 데 논의의 초점이 맞춰져 있단 얘기다.

대중문화평론가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우리나라의 시민의식은 집단을 강조하는 공화주의적인 시민의식과 개인을 강조하는 자유주의적인 시민의식 두 개의 섹터가 충돌하고 있다. 최근엔 자유주의적인 시민의식이 전반적으로 강화된 것”이라며 “쩍벌남이라든지 맘충, 길빵충 등이 모두 개인의 침해와 자유와 관련돼 있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분석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개인으로서의 도덕과 집단으로서의 도덕이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일상 속 버스정류장이나 피서철 해수욕장엔 꽁초나 일회용 쓰레기가 산처럼 쌓이기 일쑤지만 국가대항전 거리응원이나 팬클럽 모임 등 집단적 이벤트에선 그런 몰지각한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촛불집회가 대표적이다. 지난 2016년 10월29일 광화문에서 개최된 첫 촛불집회 이후 인파는 더욱 몰렸지만 쓰레기 배출량은 외려 줄어들었다. 당시 서울시의 집계 결과 첫 집회(주최측 추산 5만명)에서 1인당 180g의 쓰레기가 발생했던 것이 3차(〃100만명) 160g, 4차(〃60만명) 140g 등으로 계속해 줄었고, 역대 최다 규모의 170만명이 모인 6차 집회에선 불과 60g만을 기록했다. 일반 집회에서 1인당 평균 3200g의 쓰레기가 나오는 것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차이였다.

김지호 경북대 교수(심리학)는 “집단과 개인의 도덕에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내 행동이 소속 집단을 대표한다’는 의식 때문”이라며 “아무 소속 없는 개인은 일상 행동에서 스스로를 잘 통제하지 않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 시민들의 공중도덕, 시민의식은 그 자체로서의 내재적 의미보다는 타인에게 비치는 이미지로서의 의미가 크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말과 행동, 개인과 집단 사이의 간극들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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