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아내를 짝사랑한 제자 브람스에 대해 슈만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죽기 직전 슈만이 남긴 말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는데요, 그건 바로 ‘난 알고 있어’입니다.”
박소현 바이올리니스트의 말이 끝나자마자 관객석 여기저기서 탄식어린 웃음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박소현 바이올리니스트가 클라라 슈만과 슈만, 브람스의 곡들을 연주했다. 격정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이 공연장을 꽉 채웠고 관객들은 박소현의 현란한 활 놀림에 주목했다. 15분간의 연주가 끝나자마자 박수갈채와 앵콜이 이어졌다.
지난 20일 서울 세종문회회관 체임버홀에서 흥미로운 연주회가 진행됐다. 바이올리니스트 겸 비올리니스트인 박소현이 ‘해설이 있는 연주회-알고나면 쓸데많은 신나는 클래식’을 연 것. 이날 체임버홀을 꽉 채운 200여명의 관객들에게 박소현은 바로크 시대부터 현대까지 클래식의 변천사를 설명했다. 박소현 바이올리니스트는 “클래식이 대중과 동떨어진 음악장르가 아니라 인간사와 함께 해 온 역사 그 자체라는 점을 알리고 싶어 이 공연을 계획했다”고 밝혔다. 다음은 공연 직후 박소현 바이올리니스트와의 일문일답.
- 공연 흥미롭게 잘 봤다. 곡 사이사이 해설이 있어 지루하지 않았다
좋게 봐줘 감사하다. 이번 ‘알고나면 쓸데많은 신나는 클래식’ 독주회는 사실 급하게 편성한 프로그램이었다. 사실 ‘천사와 악마’라는 콘셉트에 맞춰 선과 악을 이미지화할 수 있는 곡들로 독주회를 준비했었다. 그런데 그 콘셉트로 또 다른 연주가가 기획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돼 프로그램을 변경하게 됐다. 대관날짜에 맞춰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돼 정신없었지만 그래도 공연을 잘 풀어갈 수 있게 돼 다행이다.
평소 일반인들이 클래식을 쉽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늘 생각해왔던 게 이번 공연에서 많은 도움이 됐다. 기업이나 학교 등에서 클래식 전문 강연을 수년 째 해오고 있고 또 다음 칼럼 ‘브런치’와 잡지 등에 클래식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클래식이 지겹고 재미없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많은 노력 중이다.
- 그럼에도 요즘 가요나 팝과 대비하면 클래식은 좀 심심한 느낌인데?
얼핏 생각하면 그렇게 느낄 수도 있지만 알고 들으면 클래식도 정말 재미있다. 알고나면 더 보이고 더 좋아진다는 말도 있듯 클래식에 깃든 각종 사연과 이야기를 접한다면 곡에 대한 이해도 높아질 것이다. 이번 공연도 그런 취지도 마련된 것이다. 사실 흔히 슈만 하면 낭만주의 음악가라고만 생각하지 그가 작곡한 곡 안에 어떠한 이야기가 있는지 잘 모른다. 그런데 공연에서도 말했지만 슈만과 슈만의 부인, 또 그들의 제자인 브람스 간의 삼각관계는 그들의 작곡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왜 슈만과 브람스가 그렇게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선율로 곡을 지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듯 곡마다의 사연을 알고 작곡가의 성향, 나아가 그 시대 음악 흐름을 알고 클래식을 접한다면 클래식도 대중성을 갖추지 않을까 생각한다.
-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함께 연주해 시선을 끈다. 어떻게 두 악기를 연주하게 됐나?
부산예술고등학교 재학 중 오스트리아로 유학하게 돼 빈 국립음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이후 린츠 브루크너 음대에서 바이올린 전문연주자 학사과정과 교수법 학사과정을 복수 전공했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졸업했다. 이후 그라츠 국립음대에 진학하게 됐는데 이때 비올라 연주자 학사과정과 교수법 학사과정을 복수전공했다. 이후 린츠 라이먼 음악학교에서 바이올린과 비올라 교사로 재직하기도 했다. 바이올린과 비올라는 기본 연주법이 비슷해 비올라를 전공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그런데 공부를 하고 연주를 하면 할수록 비올라만의 독특한 저음과 음색의 무게감이 나를 매료시켰다. 바이올린은 화려하고 기교 넘치는 곡에 어울린다면 비올라는 차분한 곡에 잘 맞더라. 두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입장에서 이러한 차이점을 대중에게 더 알리고 싶어 연주회 마다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모두 무대에서 선보이고 있다.
- 최근 ‘미투(ME TOO)’를 통한 성폭력 문제가 가시화되고 있는데?
다행히 나에겐 그런 일이 발생한 적은 없지만 예술계의 병폐가 이번 미투 운동을 통해 치부를 드러낸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문제제기를 통해 잘못이 명명백백 밝혀져야 한다고 본다. 의지와 재능이 있는 예술인들이 성폭력 등 상위 권력에 의한 억압으로 커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이번 미투 운동을 통해 이러한 악습을 끊어내고 예술이 좀더 대중화되고 한 계단 더 성장할 수 있도록 대중의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 연주자로서 어떤 모습을 보이고 싶나?
학생들을 가르치고 클래식 대중화에 매진하다보니 신기하게도 오히려 깊이 있는 연주에 대한 열망이 더 커졌다. 지난해만도 공연을 40여회 했더라. 거의 매달 3~4번씩은 연주회를 열었던 거다. 이렇게 많은 공연을 열다보니 이제는 뭔가 아카데믹한 연주회를 열고 내 개인적 기량을 높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주변 어느 선생님은 드뷔시 시리즈로만 연주회를 열었는데 나도 40대부터는 특정 작곡가의 시리즈를 연주하며 보다 깊이 있는 연주가로 활동하고 싶다. 40대부터 인생을 바라보는 깊이도 달라지고 곡에 대한 이해도 지금보다 더 높아질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몇 년 남았으니(웃음) 아직은 대중에게 다가가는 클래식 전문가, 연주자로 활약하고자 한다. 그때까지 클래식 관련한 재미있는 책도 내고 음반도 내어 많은 사람들에게 박소현을 알리고 클래식 대중화에 나서고자 한다.
- 82년생 개띠로 들었다. 개띠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곡이 있다면?
음, 먼저 1958년 이제 막 은퇴를 하게 된 분들에게 피아노 독주를 위한 녹턴 20번을 권한다. 이 곡은 영화 ‘피아니스트’에 나온 곡인데 주인공이 독일장교를 만났을 때 실제로 연주한 곡이다. 죽을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주인공이 삶의 희망을 안고 절실하게 이 곡을 쳤다. 58년 개띠 분들에게 아직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드리고 싶어 이 곡을 추천한다.
또 이제 막 사회에 뛰어든 94년 개띠 분들에게 ‘생상의 죽음의 무도’를 추천한다. 피겨스타 김연아 선수가 공연에서 썼던 곡이다. 지금 94년생 분들에게 김연아 선수가 활약하던 때 10대였을 것이다. 당시 10대의 환희와 열정을 잊지말고 가졌으면 해 추천한다.
끝으로 82년생 우리 개띠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곡이 있다. 바로 슈베르트의 ‘리타나이’라는 곡이다. 몇 년전 귀국독주회 때 연주한 곡인데 한마디로 ‘위로의 기도문’이다. 세상이 녹록치 않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알고 있을 30대 중반의 우리에게 이 곡이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올해 계획은?
워낙 하고 싶은 게 많다보니 바로 생각이 나지 않는데 일단 올 하반기 로타트리오의 정기연주회를 개최하고 싶다. 클래식한 작품들로 보다 깊이 있는 연주로 대중에게 다가가고 싶다. 또 현재 서울 성동장애인종합복지관 산화 ‘어울림 합주단’에서 지휘와 학생 교육을 하고 있는데 우리 아이들과 함께 공연을 열고 싶다. 장애를 딛고 연주하는 우리 아이들의 그 순수한 열정을 많은 이들이 함께 느꼈으면 좋겠다. 또 전문 연주자로 클래식이 필요한 곳 어디든 달려가 곡을 연주하고 음악으로 공감하고 싶다. 많은 성원과 관심 부탁한다.
김수진 기자 neunga@segye.com
박소현 프로필
- 부산 예술 고등학교 재학 중 오스트리아 유학, 비엔나 국립 음악대학교 수학
- 린츠 주립 음악 대학교 바이올린 전문 연주자 학사, 교수법 학사 졸업, 동 대학원 석사 졸업
- 그라츠 국립 음악 대학교 비올라 전문 연주자 및 교수법 학사 과정 수학
- 오스트리아 린츠 Reiman 음악학교 바이올린 및 비올라 교사
- 오사카 국제 콩쿨 Avenir 특별상, IBLA 이태리 국제 콩쿨 Grand Prize 입상
- American Protégé Competition 우승 및 뉴욕 카네기홀 입상자 연주회 파이널 연주
- 국민 일보, 영산 아트홀 주최 앙상블 콩쿨 3위 입상 등
- 오스트리아 비엔나 슈베르트 탄생 생가, Jaerger Saal (Linz), Bruckner Uni Kleiner Saal 독주회, 영산아트홀 귀국 독주회, 금호아트홀 독주회.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필하모닉, 한오 오케스트라 서울 필하모닉, 필하모니안즈 서울 등 다수 오케스트라 협연. European Master Orchestra Croatia, 한국-오스트리아 연합 오케스트라 1바이올린 수석 등
- 부산마루국제음악제 2015년 부산 음악인 선정 및 연주
- 음악저널, 뉴스N, 삼성전자 임직원 사이트, 클래식 칼럼 연재
- 한국 성서 대학교, 부산 예고, 예중 출강, 성동장애인종합복지관 산하 “어울림 합주단” 바이올린, 비올라 지도 교사 및 합주단 지휘자
- 음악예술학회원, T.G.Y.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 로타트리오 단원, 느루콰르텟 단원, 뮤직클레프 솔리스트 앙상블 단원
- 클래식 전문 강연자 활동 및 클래식전문비평지 '에듀클래식-리뷰', 다음 '브런치'에 클래식 칼럼 연재 중
<로컬세계>로컬세계>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