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한·미 FTA 재협상을 통해 얻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평가부터 제대로 내려져야 한다. 재협상 개시부터 타결까지 상대방의 의도를 예측하지 못하고 주도권을 내주고 끌려다니다 상대방이 던진 조건을 수용하고 타결해버린 협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한·미관계의 이익 균형 원칙이 트럼프 개인기에 의해 철저히 무너져버린 협상이기도 하다. 정부발표에 따르면, 미국 자동차 안전기준을 준수한 경우 한국 안전기준을 준수한 것으로 간주해주는 제도를 미국자동차 제작사별로 연간 5만대(현행 2만5000대)까지 인정해줬다. 연비와 온실가스 관련 미국차에 대한 면제제도를 2020년까지 연장적용해주는 것에서도 모자라 그 이후 기준 설정 시에도 면제해주는 것으로 합의했다. 배출가스 관련 시험절차 및 방식을 미국 규정과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2021년이면 철폐될 예정이었던 미측의 화물자동차에 대한 25% 관세가 추가로 20년 철폐 연장돼 앞으로 24년 동안 화물자동차를 미국에 수출할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졌다. 글로벌 신약에 대한 약가제도도 미측 요구를 그대로 수용해 정부가 국내제약사가 개발한 신약에 대해 부여하는 약가 우대정책은 종언을 고해야 한다. 한마디로 미측의 최대 목표인 자동차 비관세장벽, 픽업트럭 관세, 신약 약가 부문을 모두 내준 셈이다. 그 대가로 정부는 “미측이 막바지까지 얻으려 한 농산물 부문을 지켜 레드라인을 설정한 게 최대 성과”라고 자평했다. 작년 10월 개최된 제2차 특별공동위 협상에서부터 미측이 우리 농산물부문 추가개방에는 관심이 없음을 공공연히 내비쳤는데도 말이다. 미측은 농업담당자를 협상팀에 포함시키지도 않았다. 우리가 농산물 부문을 지킨 게 아니라 상대방이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의도도 정확히 파악 못해 농산물 부문을 내주지 않겠다는 것을 우리 협상 최대 목표로 설정해 농산물 부문의 협상가치만 높인 것이 우리 협상팀이다. ‘투자자-정부소송제도’(ISD)와 무역구제 부문도 절차적 투명성 정도를 언급하는 데 그치고, 실체적 이슈나 기준을 수립하는 데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애초 정부가 내세운 ‘불리한 가용정보’(AFA) 기준의 수정에는 한 발치도 다가가지 못한 셈이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학 |
이렇게 문제점투성이인 협상을 미측의 11월 중간선거 일정에 맞춰 신속하게 타결해준 원인이 무엇인가. 근본적 이유는 대미 통상의 철학과 전략이 실종되고 전문성과 예측력이 부족한 데 기인한다. 안보이슈에 파묻혀 통상분야 실리외교가 등한시된 결과이기도 하다. 북한 핵문제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어떻게 전개될지도 모르는 남·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이끌어내기 위해 국가의 실리를 미리 지나치게 양보해버려도 되는가 묻고 싶다. 우리가 미리 양보한 실리가 트럼프 정부의 대북한 강경노선을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면 참으로 순진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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