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준의 일본은 지금] 여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시간 24년 364일 23시 59분

일본 20대 여성의 약 70%가 한결같이 고민하는 게 있다.
바로 ‘여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나이’라는 고민이다.

‘여성에겐 기간이 정해져 있다’는 암묵적이고도 강압적인 인식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일본 사회에 뿌리내려 여성들을 초조하게 하고, 불안을 가중하며, 슬프게 한다.

법으로 정해지지도 않았고 학교에서 가르치지도 않았지만 이러한 고정관념은 차별받는 여성들 사이에서도 만연해 스스로를 옥죄는 안타까운 모습이다.

여자 아기 팔에 기간이 적혀있다. 연출된 영상이지만, 일본 20대 여성의 약 70%는 '여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나이'를 고민하고 있다.

■ “마흔 넘은 여성의 사랑은 불륜밖에 없다”
지난달 25일 일본 TBS 생방송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한 탤런트 니시가와 아야코(46)의 발언이 큰 파장을 불렀다.

불륜을 주제로 한 이날 방송에서 니시가와는 불륜에 매우 부정적인 생각과 의견을 전하면서도 “40대 여성이 누군가 사랑하기 위해서는 큰 행운이 따라 우연히 어제 헤어진 남성을 만나거나 불륜밖에 없다”고 눈물지으며 말했다.

이 말은 자칫 혼기를 놓쳐 독신으로 남게 된 여성을 비하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그만큼 사회 특히 남성들이 여성을 바라보는 눈이 엄격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여성들은 이 말에 공감하며 서운한 마음을 드러냈다.

되레 남성들이 ‘남성이 여성을 나이로 차별한다는 주장으로 들린다'고 문제시했다.

한편 한 여배우의 개인적인 생각이 공감대를 형성한 다른 이유는 그 역시 좋아했던 남성으로부터 단 일주일 만에 이별을 통보받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미모의 여배우조차 나이라는 장벽에 좌절한 모습에 여성들은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을 직시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 ‘여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시간 24년 364일 23시 59분 59초’
취업과 결혼 그리고 출산은 일본 여성들에게 ‘적령기’라는 마지노선을 정해 그 선을 넘으면 마치 큰일이라도 발생하는 듯 문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유교 사상이 전해진 한국, 중국, 일본 등에서 공통되게 나타나지만 그중 일본이 가장 심한 모습을 보인다.

일본 여성들은 성인이 된 후 나이에 얽매여 사회의 압박과 심리적 갈등으로 고민하게 되는데, 실제 화장품 대기업이 18세 이상 성인여성을 대상으로 ‘여성의 나이와 삶에 관한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 2만여 명이 ‘나이가 드는 것에 막연한 불안을 느낀다’고 답했으며, 20대 여성은 무려 71.3%가 그렇다고 답했다.

한창 일하고 공부하며 연애할 나이인 이들 20대 젊은 여성들은 ‘25세를 기점으로 사회가 정해 놓은 ‘해야 할 일’들과 이를 완수해 나가는 것에 큰 압박감을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사회가 24세 여성을 압박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여성을 크리스마스 케이크에 비유하는 것이다.
이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기 위해 24일에는 케이크가 불티나게 팔리지만 당일인 25일에는 케이크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데서 비롯된다.

또 29세에 이르면 ‘서른 되기 전 시집가야 한다’는 압력이 사회는 물론 가정에서도 매우 심해 31살이 되어서도 결혼 못 한 여성을 두고 ‘마케이누’라고 등 뒤에서 험담한다.
직역하면 ’싸움에 진 개’라는 이 말은 경쟁에서 패한 이들을 가리키는 속어로, 결혼 시장에서 다른 여성에게 밀려 결혼에 실패하여 노처녀로 남았다는 비아냥거림이다.

그래서 일본 여성들은 ‘여자로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은 24년 364일 23시 59분 59초’라고 한숨 섞어 말한다.

한편 이러한 편견을 없애고자 일본 기업이 주도한 캠페인이 전 세계 여성들로부터 큰 지지를 받고 있다. 내용은 앞서 사회의 불필요한 시선과 억압에서 벗어나 ‘누군가 결정짓는 기간은 없다‘, ‘나답게 살자’고 호소한다.

캠페인이 1억회 이상 재생되며 공감을 얻기란 매우 힘든 거로 알려졌는데 그만큼 나이로 억압받고 차별받는 여성이 이 세상에 많다는 얘기가 된다.

일본 여성은 30세까지 결혼 못 하면 다른 여성과의 경쟁에 밀렸다는 지적을 받는다.

일본에서는 '여성이 30세가 넘으면 가치가 떨어진다'는 시대착오적인 생각이 아직 만연하다.

■ ‘새하얀 원피스 사건’
이러한 가운데 여성들조차 편견에 휩싸인 모습이 전해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사연은 40대 여성이 연하의 남성과 처음 만난 자리서 발생했다.

올해 40세가 된 여성은 이날 남성과 처음 만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공세를 퍼붓고 있었다.
시시한 이야기에도 웃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놓칠세라 경청했다. 또 공감하며 리액션했다.
하지만 젊어 보이기 위해 입은 새하얀 원피스가 그의 발목을 잡은 한편, 여성들로부터 맹비난 받게 된다.

‘젊음과 순결을 뜻하는 하얀 원피스를 40대가 입었다’는 이유에서다.

여성들은 연하남을 만나 젊게 보이고 싶은 마음은 이해되지만 ‘하얀 원피스는 10대 또는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 중에서도 ’여성성(청순하고 젊게 보이는 등)‘이 강한 여자들의 특권’이라며 원피스의 문제가 아닌 색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팅 장소에서 당당한 모습은 칭찬할 수 있지만 결국 그 원피스가 일을 망친 것이라며 파란색이나 하늘색이 좋았다고 덧붙였다. 이에 고민과 푸념을 털어놓은 여성은 “주제넘은 기합이었다”고 실수를 인정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나이로 차별받는 건 분명 괴롭고 부당한 일이다.
일부에서는 차별을 멈추라고 호소하는 가운데 스스로 나이에 엄격한 모습은 아쉬운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