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댓글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장편소설 ‘댓글부대’(2015)를 출간한 소설가 장강명(43)씨는 27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온라인 세계는 힘이 커졌고 앞으로 더 커질 텐데 그 세상을 움직이는 질서를 누구도 고민하거나 상의한 적이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장씨는 최근 우리 사회를 뒤흔든 ‘드루킹 사건’이 한 포털사이트의 댓글 정책을 바꾸거나 현 정권을 얼마나 흔들었느냐 정도의 공방으로 끝나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면서 “정치권 공방으로 끝난다고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선거 때마다 제2, 제3의 드루킹 사건이 나올 것”이라며 “이걸 해결하려면 연구하는 데서부터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장씨와의 인터뷰는 지난 25일 서울 광화문 세계일보 사옥에서 이뤄졌다. 장씨는 공채 문화와 문학공모전의 기원과 공과 등을 다룬 논픽션과 10대의 눈으로 북한 고난의 행군을 다룬 논픽션 등을 조만간 출간할 예정이다. 다음은 장씨와의 일문일답.
◆“상상으로 쓴 소설…실제로 일어나 깜짝”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을 모티브로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2012년 말 대선 중에 국정원 댓글 조작사건이 나왔을 당시 산업부 기자였다. 직접 취재하진 않고 옆에서 기사만 보고 있었다. 대선 전 경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댓글 조작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대선이 끝나고 검찰이 다시 댓글 조작이 맞다고 발표해 큰 충격을 받았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었다. 이걸로 언젠가 소설을 써야지 그때 생각했다.”
―아무리 허구라고 하지만 상당 부분 현실을 반영한 것 같은데.
“그런 평가를 많이 받고 감사하긴 한데, 사실 그렇게까지 취재한 건 아니었다. 상상해서 쓴 게 많았다. 소설에 나오는 일이 나중에 묘하게 실제로 벌어지기도 하고 ‘댓글부대’에서도 매크로 프로그램이 나오는데 드루킹 사건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소설에 등장하는 온라인 카페나 커뮤니티들도 굉장히 현실감 넘친다.
“소설을 쓸 당시 어느 순간부터 인터넷 세상이 마을처럼 몇몇 커뮤니티 위주로 분할되는 것 같았다. 대부분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정보를 찾아다니기보다는 본인이 자주 가는 카페나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정보를 많이 봤다. 그런 현상이 나에게는 신기했고, 카페마다 성향들이 생기고 지역감정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대형 커뮤니티들 사이에 서로 전쟁을 벌이는 것 같은 일을 보면서 재밌었다. 이것도 온라인 여론을 조작하는 사람들은 관심 있게 볼 것이고, 그것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할 거라 생각하고 썼다. 그때는 이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는 줄 몰랐다. 상상해 쓴 일이 실제로 일어나 놀랐다.”
◆“드루킹 사건, 단순 댓글문제 아냐...온라인 새 질서 만들어야“
―드루킹 사건을 보면서 든 생각은.
“‘댓글부대’를 쓸 때부터 갖고 있던 지론인데 댓글문화를 크게 수술해야 할 시점이라는 생각이 더 커졌다. 여태까지는 댓글 문화를 수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표현의 자유’ 등의 이슈로 지지를 받지 못했다면, 이걸 기점으로 공감대가 퍼지는 것 아닌가 싶다.”
―한국 온라인 문화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인터넷 여론, 온라인 문화라는 것이 오프라인에 부속돼 있는 정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제 세계와 거의 같은 정도의 영향력이 있고 어떤 이슈에 있어선 실제로 사람들이 만나서 논의하는 공론의 장에 거의 필적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가 무법지대다. ‘어떤 질서를 만들자’ ‘이야기를 논의하는 규칙을 세우자’고 하는 말들이 표현의 자유를 막는다는 규제 담론으로 흘러간다. 그래서 쉽게 손보기가 힘들다. 그러다 보니 정말 무법지대가 됐다.”
―드루킹은 온라인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브로커라 불러도 좋고 정치 자영업자라고 불러도 좋은데, 드루킹 같은 사람이 온라인 세상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한국 여론이, 민주주의가, 정치가 흔들흔들한다. 포털 사이트, SNS 등에서 정보를 사람들에게 그런 식으로 전달하라고 누가 권한을 줬나. 법을 하나 만들 때도 수많은 사람이 참여해 여러 심사 과정을 거치고 부작용을 살펴보고 만드는데, 그냥 자신들의 플랫폼에 이용자를 많이 유치하고 싶은 돈 욕심 있는 사람들이 누구의 이야기도 고민해 들어보지 않고 만든 작위적인 질서에 우리가 휘둘리고 있다.”
―드루킹은 진정한 여론은 온라인에 있고, 그중에서도 댓글, 베스트 댓글에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2018년 4월 시점에서 베스트 댓글이라는 것이 꽤 영향력이 있겠지만, 진정한 여론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고 조작하기 너무 쉬운 구조다. 그걸 어떻게 진정한 여론이라고 할 수 있겠나. 말하자면 그 사람은 허술한 제도, 질서를 노린 해커인 셈이다. 대단한 기술을 사용한 해커도 아니고, 새치기인 셈이다.”
―온라인 문화 개선을 위해 어떤 논의가 이뤄져야 할까.
“물론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다. 헌법적 가치이며 훼손되면 안 된다. 예를 들어 보자. 헌법에서는 거주 이전의 자유를 보장한다. 그런데 거주 이전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해 내가 고속도로 한가운데를 횡단해도 된다는 건 아니다. 보행자도, 운전자도 안전하고 자동차도 만들어진 목적대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마련된 도로교통법이 거주 이전의 자유를 훼손한다고 보는 것은 무리다. 지금 온라인 세상에 자동차라는 게 생긴 건데 차도도, 보도도 없고 차가 사람을 막 치고 다니는 그런 상황인 것 같다. 여기에서 차도를 만들자, 차는 이 밖으로 나오지 말자고 하는 것을 거주 이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하면 무리인 거다. 논의의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 온라인 여론 규제라기보다는 질서를 만들고, 그 질서가 공동선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설계하자는 이야기를 이제 해야 한다. 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 자체를 표현의 자유를 훼손한다고 말하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
―드루킹 사건은 어떻게 마무리될 것 같나.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가 미래를 만드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사실은 그렇게 될 가능성이 낮지만. 어떻게 될 것인가를 예상하기보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냐를 얘기해야 할 것 같다. 지금 이 문제를 논하는 사람들이 사실 한국 온라인 문화를 바꾸는 것에 큰 관심이 없다. 한쪽에서는 권력을 지키려 하고 있고, 한쪽에서는 그 현실 정치 권력을 흔들어보려고 하고 있다. 결과가 현 정권을 얼마나 흔들었는지, 흔들지 못했는지 정도로 끝날 공산이 큰데, 그렇게 넘기면 안 된다. 네이버 댓글 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문제를 떠나서 성숙한 시민의식의 힘으로 온라인 문화에 어떻게 접근하고 질서를 세울지에 대한 얘기로 에너지를 모아야 한다. 말은 이렇게 하고 있지만 이렇게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 얘기를 해보자는 심정이다.”
◆ “온라인 여론 바로잡기 위한 연구 선행돼야”
―온라인 여론이 진정한 여론일까.
“온라인 여론의 영향력이 있는 건 맞지만 실제로 댓글을 안 남기는 사람도, SNS를 안 하는 사람도, 애초에 인터넷이나 모바일기기에 익숙하지 않아서 사용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진정한 여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온라인 댓글에 관심이 많고 모바일 기기와 문화에 익숙한 일부 사람들의 의견이 과대 표상되고 있다. 이것을 진짜 여론이라고 착각하니까 문제가 된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규칙들도 수백년 동안 갈고 닦아서 만들어졌다. 우리가 살고 싶은 사회가 있으면, 그 사회를 지배하는 질서를 우리가 공들여서 만들어야 된다는 것이다. 온라인 세계는 힘이 커졌고 앞으로 더 커질 텐데 그 세상을 움직이는 질서를 누구도 고민하거나 상의한 적이 없다. 이 주체 저 주체들이 만들고 그 틈에는 그걸 악용하는 자영업자와 브로커 같은 사람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공론의 장이 되고 있는 포털, SNS, 커뮤니티의 본질적 문제점과 개선방안은.
“온라인 공간이라는 게 오프라인이랑 굉장히 달라서 이상한 특징들이 있다. 그 특징을 잘 파악하지도 못한다. 예를 들어 사적 얘기 공적 얘기가 잘 구별이 안 되는 공간이다. 온라인 공간이 없었을 때는 서너명이서 정치나 명예훼손 등 상당히 수위 높은 이야기를 해도 그 당사자에게 이야기가 들어가는 데 시간이 걸리거나 대부분 안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의 대화, 표현의 자유 이런 개념들이 그런 공간을 가정하고 만들어져 있다. 또 선거법 적용도 일률적으로 하지 않고 개인의 정치적 의사 표명과 남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바꾸려고 여론을 조작하려고 하는 것은 분명히 구분한다. 온라인 공간에 가면 그게 되게 애매해진다. 여론을 조작하려고 그렇게 댓글을 단 것인지, 개인적 의사표명인지 애매해진다. 이걸 어떻게 바꿔야 한다는 얘기를 하기 전에 그 특징 자체를 연구해야 한다. 포털에 대해서는 현재법상으로는 언론이 아니지만 사실상 언론이라는 데까지는 공감대가 모였다. 포털을 언론의 범주에 넣고 어떤 책임을 부여하는 것은 할 것 같다. 하지만 커뮤니티를 언론의 범주에 넣고 언론에 요구하는 책임감을 법적으로 부여하는 것은 엄두도 나지 않고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내가 체감하기에는 커뮤니티에서 나오는 영향력이 꽤 큰데 실제로 어떤 식으로 커지는지를 연구해야 한다. SNS는 더 애매하다. 커뮤니티만 해도 한데 모여서 글을 올리고 있는데, SNS는 온라인 안에서도 무형의 네트워크다. 군소 언론보다 몇몇 샐러브리티가 언론으로서의 영향력은 더 크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굉장히 막막한 과제다. 하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은 한국의 인터넷 문화가 빨라서 이런 일이 먼저 일어났을 뿐,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전 세계에서 조만간 선거 브로커, 댓글 브로커 등 똑같은 문제들이 일어날 거다. 전 세계에서 뉴미디어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공동연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먼저 좋은 연구 성과, 좋은 질서를 만들면 다른 나라에서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더 크게, 더 멀리 봐야 하는 문제인 것 같다.
“정치권 공방으로 끝난다고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선거 때마다 제2, 제3의 드루킹 사건이 나올 것이다. 계속 마주할 수밖에 없는 모순이고 문제다. 이걸 해결하려면 연구하는 데서부터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 “10년 안에 2~3권의 대작을 쓰는 게 꿈”
―요즘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 있나.
“공채 문화와 문학공모전의 기원과 공과를 다룬 논픽션 <당선, 합격, 계급>과 10대의 눈으로 관찰한 북한 고난의 행군을 다룬 논픽션 <팔과 다리의 가격>이라는 신간이 5월에 나온다. 기대하고 있다.”
―10년 후의 장강명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꿈이 있다면.
“대작을 쓰는 게 나의 꿈이다. 10년 후면 2028년인데, 그때쯤이면 누구한테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대작을 쓰고 싶다. 대하장편소설까진 아니더라도 두툼하면서 메시지도 있고, 강력하고 울림도 있고, 사람들을 움직이는 그런 책을 앞으로 10년 사이에 2~3권 정도는 내고 싶다.”
―등산으로 본다면, 작가로서 장강명은 어느 정도에 오른 것인가.
“한국에서 소설가로 산다는 게, 소설가가 되는 과정이 제일 어려운 것 같다. 등단까지가 제일 어렵고, 그 다음은 어느 정도 독자가 찾는, 독자가 기억하는 성공적인 중견 작가가 되기까지가 어렵다. 비유하자면 배가 항구에서 막 출발했는데 근처에 암초가 많은 거다. 수많은 신인 작가들이 여기서 좌초해 글을 그만 쓴다. 나는 암초가 있는 곳을 얼추 벗어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운이 좋았다. 이제부터 진짜 항해가 시작된다.”
인터뷰 끝자락 쯤, 장씨는 “소설가 장강명의 항해를 기대하겠다”는 기자의 말에 “고맙다”고 경쾌하게 답했다. 하늘은 맑아서 그날 바다는 더 멀리 보였을 것이다.
김지연 기자 delays@segye.com
소설가 장강명 프로필
△서울 출생(1975) △연세대 도시공학과 졸업(2001) △동아일보 기자(2002-2013)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장편소설 <표백>으로 등단(2011) △수림문학상(2014)·제주4.3평화문학상 (2015)·오늘의작가상(2016) 등 수상 △책으로 <댓글부대> <알바생 자르기>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한국이 싫어서> 등이 있음
△서울 출생(1975) △연세대 도시공학과 졸업(2001) △동아일보 기자(2002-2013)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장편소설 <표백>으로 등단(2011) △수림문학상(2014)·제주4.3평화문학상 (2015)·오늘의작가상(2016) 등 수상 △책으로 <댓글부대> <알바생 자르기>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한국이 싫어서>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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