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함인희의세상보기] 저출산의 진짜 이유

관련이슈 함인희의 세상보기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18-06-05 00:20:34 수정 : 2019-03-22 18:16:01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보육 예산 쏟아도 출산율 감감 / 근본 원인 결혼율부터 올려야 / 인구절벽 먼저 겪은 日 본보기 / 저출산사회 인정 해법 연구를

출산율 1.05명. 통계청의 발표다. 이쯤 되면 국가적 차원의 위기임이 분명하다. 드디어 지난달 31일에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장인 대통령까지 나섰다. 대통령은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골든타임이 5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절박한 문제의식의 공유 하에, 특단의 획기적 대책을 적극 모색하자고 역설했다.

 

한데, 저출산 문제는 새로운 이슈가 아니다. 한국에서는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다. 1985년 출산율이 1.67로 떨어지면서 붉은 경고등이 켜젔건만 우리의 인구정책 표어는 여전히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를 고수했다. 이후 출산율이 1.5 이하를 기록하기에 이르른 위급한 상황에서도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다’ ‘하나만 낳아도 삼천리는 만원’이라며 저출산을 권장했던 것이 정부의 입장이었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오래전 시작된 저출산의 현실을 외면했던 정부가 지금은 저출산의 진짜 원인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고개를 든다. 지난해 정부출연연구기관인 보건사회연구원은 한국사회 저출산의 주요 원인은 결혼율 감소라고 발표했다. 10여 년간 100조원 가까운 규모의 예산을 쏟아부었음에도, 출산율은 오히려 꾸준히 하강곡선을 그린 이유를 분석한 자리에서 말이다. 한마디로 출산율 하락의 주범은 기혼 부부가 일 가정 양립의 고통으로 인해 출산을 포기했기 때문이 아니라, 결혼율 자체가 하락했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이 결과를 놓고 결혼율을 높여야 출산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함은 상식적 추론일 것이요,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해야 실현가능성을 갖춘 해결방안이 나올 수 있음도 합리적 논리일 것이다. 하지만 당시 보건사회연구원의 저출산 대책은 격렬한 비판을 받으며 풍자와 희화화의 대상으로 추락하는 해프닝을 연출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믿거나 말거나, 결혼율 제고 방안으로 스펙이 훌륭한 여성의 취업기회를 제한하자, 여성들 눈이 높아 결혼율이 낮아지는 것이니 여성들 눈높이를 현실화할 수 있는 결혼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하자는 안이 공식적 대책으로 발표됐다.

 

‘2018 인구절벽이 온다’의 저자인 인구학자 해리 덴트가 국내 언론과 인터뷰한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저출산 이슈에 관한 한 한국은 일본을 “눈이 빠져라 관찰하라”는 것이 그의 충고였다. 저출산 해결 모델로는 유럽식, 미국식, 일본식이 있을 텐데, 일단 한국은 혼외출산을 광범위하게 인정해주는 유럽식의 결혼과 출산 분리 정책을 채택할 확률은 제로다. 그렇다고 미국식 이민정책도 사회적 위험 부담이 큰 만큼 이 또한 쉽게 수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처럼 저출산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후 저출산이 가져올 사회 각 분야의 충격을 미리 재단해 충격 완화 내지 방지 정책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한국이 일본이 갔던 길을 그대로 따라갈 것이라 생각지는 않지만, 일본이 걸어온 길을 세밀히 관찰한다면 적어도 다가올 재앙을 미리 예측해 예방 내지 대처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덴트 주장의 함의였다.

 

일본에서 결혼율 감소에 기여한 현상으로는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않은 채 싱글 라이프를 즐기는 ‘패러사이트(parasite) 싱글’이 지목된 바 있다. 이에 일본에서는 저출산의 주범인 결혼율 감소를 해소하기 위해 혼활(婚活)의 중요성이 사회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혼인활동을 의미하는 혼활은, 취직을 위해 취직활동이 필요하듯 결혼을 위해서도 운명적 상대가 나타나기만을 소극적으로 기다리기보다 적극 활동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한다. 물론 정부 차원의 다각적인 혼활 노력에도 불구 결혼율은 눈에 띄게 증가하지 않았고, 그 결과는 저출산 유지로 연결되면서 오늘날 일본은 ‘가족 파산(破産)’ 내지 ‘가족 난민(難民)’으로 표상되는 가족 차원의 부양 위기를 심각하게 앓고 있다.

 

우리네 저출산 대책이 주로 기혼부부의 일 가정 양립 지원과 보육 지원 등에 모아지면서 천문학적 규모의 예산에도 출산율 제고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음에도 여전히 구태의연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은 유감이다. 물론 일 가정 양립 지원 및 보육 정책은 여성의 경력단절을 예방하고 일과 생활의 균형을 도모함에 그 자체로 충분한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이를 저출산 해결과 연동하면서 저출산 해법에 착시를 야기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저출산의 진짜 원인이 결혼율 감소에 있을진대는 결혼율을 높이는 방법을 찾아나서는 것이 필수일 것이다. 하지만 결혼의 매력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결혼율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은 쉽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이미 시행착오를 거쳐 실패를 경험해본 일본의 사례가 우리에게 타산지석이 돼줄 것이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길은 저출산이 가져오게 될 엄혹한 미래를 직시하고 준비하는 일일 것이다. 인구 감소 사회도 고령사회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그런 만큼 그 어느 때보다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해 가족에서부터 교육·노동을 거쳐, 의료· 연금 등의 제반 영역에 걸쳐 저출산 친화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소중한 국민의 세금을 투자해야 하리란 생각이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츄 '깜찍한 브이'
  • 츄 '깜찍한 브이'
  • 장원영 '오늘도 예쁨'
  • 한소희 '최강 미모'
  • 수현 '여전한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