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피란민 사유지 강제 수용 법령예고 논란 확산 / 1100만 난민들, 정권 암묵적 반대 / 경제적 토대 없애려는 의도 깔려 / 1년내 미신고땐 소유권 불인정 등 / 각종 제약으로 집·토지 뺏길 위기 / 100만 체류 레바논, 강제송환 거론 / 내전 마무리에도 안전 담보 안돼 / 안전 정착 가능한 환경조성 시급
시리아 정부가 내전을 피해 외국 등으로 떠난 피란민의 사유지를 사실상 강제 수용하는 내용의 법령을 예고해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정권을 암묵적으로 반대하는 1100만여명에 달하는 피란민의 경제적 토대를 없애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시리아 내전이 마무리 국면을 맞고 있는 가운데 난민들이 시리아에 안전하게 정착할 수 있는 환경이 먼저 조성돼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16일(현지시간) 영국에 본부를 둔 알바 언론 아슈라끄 알아우사트 등에 따르면 시리아 정부는 최근 내전 후 재건 사업을 앞두고 ‘행정명령 10호’ 시행을 예고했다. 이 법령은 개발·재건 예정 지역에 있는 사유지의 수용 및 보상에 관한 것으로, 개발 예정 부지 내 부동산 소유자는 1년 안에 권리를 주장해야 신축 주택 등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하지만 토지의 권리를 주장하는 데 있어 각종 제약이 붙어 있어 사실상 알아사드 정권이 피란민들의 집과 토지를 뺏을 수 있게 하는 악법이란 주장이 나오고 있다. 우선 국외에 체류하고 있는 대부분의 난민이나 반군 점령 지역에 거주하는 시민들의 경우 이런 법적 절차에서 제외된다. 만약 가족이 시리아에 남아 있다면 위임 절차를 밟을 수 있지만 여기에도 조건이 붙는다. 부동산 소유권을 인정받으려면 정부의 신원조회를 거쳐 안보에 위협이 없다는 점이 증명돼야 한다.
이에 대해 인권단체 측은 국외·국내 피란민 다수가 2011년 알아사드 정권의 독재에 반대한 시민들이거나 반군을 지지하는 주민인 점을 고려하면 소유권이 인정될지 미지수라고 우려했다. 시리아 인권변호사 안와르 알분니는 “자신을 테러분자로 보는 시리아 당국에 반군 점령지역 출신 주민이 어떻게 부동산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시리아 알레포에서 빵집을 운영했던 후삼 이드리스는 “그 빵집은 내가 자란 곳인데, 그곳을 잃는다는 걸 상상도 못하겠다”고 했다. 익명의 한 독일 고위 관리는 “행정명령 10호는 사실상 난민의 부동산을 수용하려는 의도로 제정됐다”고 설명했다.
시리아 정부가 노골적으로 피란민들을 경계하는 태도를 보이는 가운데 100만여명의 시리아 난민이 거주하고 있는 레바논에서 이들을 강제 송환하는 방안이 거론되는 등 시리아 피란민들이 사면초가에 몰리고 있다. 레바논 외무장관 지브란 바실은 지난 14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필리포 그란디 유엔난민기구(UNHCR) 대표를 만나 레바논에 거주하고 있는 UNHCR 직원들의 체류 허가증을 더 이상 갱신해 주지 않겠다고 위협했다. 시리아 난민들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유엔이 이를 막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레바논에는 인구의 4분의 1에 맞먹는 규모인 100만여명의 시리아 난민이 거주하고 있다.
레바논의 미셸 아운 대통령은 이날 각국 대사들에게 “시간이 소요되는 시리아 정치적 혼란을 이유로 이들의 송환이 미뤄져선 안 된다”며 “7년 동안 지속된 난민 사태로 레바논은 97억6000만달러(약 10조7000억여원)의 비용을 지출했고 이를 더는 견딜 수 없다”고 말했다.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는 “내전이 마무리됐으니 시리아 난민들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국제사회에서 일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이들의 입장”이라며 “난민들은 여전히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시리아 환경을 우려하고 있고, 특히 여성들은 시리아 내 다양한 무장그룹이 교전을 중단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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