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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정의 원더풀 남태평양] 망망대해 위 떠오른 붉은 태양… “라 오라나”

입력 : 2018-06-22 10:00:00 수정 : 2018-06-20 21:4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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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에테제도로의 항해/선상 룸서비스는 무료/테이블 넘치도록 주문/느긋한 아침 만찬 즐겨/데크선 문화 행사 한창/문신 새긴 원주민 남성/폴리네시아 사람들에
문신은 사회 지표이자/마력·아름다움의 표시/낯설었던 삶에 친숙함/여행하는 또 다른 매력
남태평양의 수호신 같던 쿡제도의 라로통가섬을 떠난 크루즈는 대양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다.
소시에테제도 보라보라섬으로 향하고 있는 크루즈는 온 만큼 꼬박 하루를 거쳐 되돌아가는 중이다.
라로통가섬에서 여정이 고되었는지 태양이 높이 솟은 뒤에야 잠에서 깨어났다.
창문을 통해 여과 없이 쏟아지는 햇살이 눈꺼풀을 간질인다. 지난 밤, 커튼 치는 것을 잊은 탓에 태양빛이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침대 위에서 뒤척이고 싶은 마음을 떨쳐내고 일어나 발코니로 나선다.
사방으로 높은 하늘과 푸른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뿐이다. 크루즈는 수평선을 따라 망망대해를 유유히 항해 중이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크루즈.
망망대해에 떠 있는 크루즈에서의 하루는 어떤 모습일까? 크루즈 소식지인 ‘라 오라나’(la orana)를 펼쳐보았다. ‘라 오라나’는 타히티 말로 ‘안녕’이라는 뜻이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유명한 고갱의 그림 ‘오라나 마리아’가 생각났다. ‘환영합니다. 마리아’라는 의미의 그림은 성모자상을 타히티섬 원주민들로 표현한 것으로, 원시적인 생동감과 순수함 속에서 서구의 전통적인 주제를 재해석하고자 시도했던 고갱의 의도가 잘 나타나 있다.

일정은 30분 단위로 이어져 있다. 첫 일정은 오전 8시부터 함께 승선한 소시에테제도의 원주민들과 아침 식사를 하며 소시에테제도의 문화를 이해하는 프로그램으로 시작된다. 일정 대부분이 폴리네시안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폴리네시안 문화와의 만남은 식사 이후로 미루기로 하고 객실에서 룸서비스로 아침을 주문했다. 일반적으로 호텔에서는 서비스료를 지불하지만 선상의 룸서비스는 무료로 제공된다. 욕심이 과한 탓에 테이블이 모자랄 정도로 너무 많은 음식을 주문하고 느긋하게 아침 식사를 즐겼다. 발코니 밖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혼자만의 아침 식사를 하는 것도 크루즈에서 즐길 수 있는 호사 중의 하나다.

여유롭게 일정을 체크하고 노트북을 꺼내 그동안 밀린 이메일과 한국 소식을 접해 본다. 남태평양 망망대해에서 인터넷이 잘될 리 없지만 아쉬운 대로 위성통신을 통해 더디게 소식을 접한다. 이메일을 확인하고 인터넷으로 뉴스를 접하려니 시간이 걸려 조급한 마음을 재촉하는 순간 남태평양 한가운데서조차 도시인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다. 접속을 끊고 객실을 나서기로 했다.

데크 위에는 폴리네시안 문화행사가 한창이다. 승객들이 코코넛 잎으로 모자, 가방, 바구니, 매트 등 다양한 공예품을 만들고 있다. 첫날 프로그램보다 어려운 격자무늬의 기술이 들어간 공예품이다. 전문가들의 솜씨로 착각할 만큼 간직하고 싶은 기념품들이 관광객의 손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전통복장인 파레오(pareo)를 입은 폴리네시안 스태프와 이리저리 헤매며 나뭇잎을 접고 있으니 그동안 친해진 전통복장의 원주민 남성이 인사를 건넨다. 피부에 새겨진 멋진 문신이 유난히 눈에 띈다. 선상에서의 하루는 폴리네시안 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단어들인 문신, 음악과 춤, 꽃, 공예품들을 알아가는 하루가 될 듯싶다.

문신(Tattoos)은 폴리네시아인들에게는 특별하다. 타타우(tattow)라는 단어는 타히티섬에서 유래하였고, 그 상징적인 의미들은 타히티인의 개별적인 역사를 나타낸다. 몸에 그려진 각각의 문양은 현재와 미래의 마력과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마력(Mana)이란 신화적이고 본질적인 개념, 근본적인 진리로 신비롭고 난해하다. 힘, 영향력, 지배력, 위대함, 주권, 천재, 권위, 우월성, 고귀함, 지위, 존재, 우아함, 아름다움 등으로 표현될 수 있으며, 이 모든 단어가 특정 상황에서의 마력을 정의한다. 때로는 존재 그 이상의 모든 요소를 초월한 삶과 죽음의 이중적 근원, 존재론적이고 문화적이며 정신적 가치들, 폴리네시안 우주라고 할 수 있는 보편적인 힘의 본질 등이 그 속에 녹아있다.

순수함과 지혜를 넘어서,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경험적이고 기술적인 지식, 인간과 그의 환경 사이에 이루어지는 보편적인 약속, 신에 대한 믿음을 표현한 것이 문신이다. 모든 바다의 물고기들을 색과 무늬로 그려 낸 타타우신, 토후의 존재는 각각의 타타우에게 의미와 삶의 정수를 준다. 하늘과 땅의 연결을 의미하는 문신은 폴리네시아에서 아름다움의 표시이자 인간 성장의 이야기를 담아낸 것이다.

유럽 이전의 폴리네시아 사회에서 문신은 귀중한 사회 지표를 의미했다. 한 사람의 영토, 부족, 가족에서의 정확한 위치와 사회적 위치를 나타낸다. 어린 시절부터 사춘기, 결혼 등 중요한 사회적 의식의 성취를 나타내거나, 자신의 삶에서 주목할 만한 사건들을 나타내기도 한다. 전쟁에서의 용맹한 행위, 사냥꾼이나 어부로서의 기량 등도 문신으로 나타낸다. 폴리네시아에서 문신은 매우 광범위하게 표현되며 소통의 일부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학자 앤 라벤스는 “타히티인에게 문신을 하는 것이 의무적이지는 않았지만, 문신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문신은 역사적으로 서양에서 ‘문명화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어 왔고, 지난 100년간 주로 선원, 노동자, 범죄자들과 연관돼 있었다. 하지만 20세기 말에서야, 폴리네시아 문신은 전통적인 뿌리와 매우 세련된 민족 미학 때문에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크루즈에서의 저녁 메뉴. 여행에서의 좋은 음식은 즐거움을 더한다.

선상에서 들려오는 음악은 타히티의 전통음악이다. 음악소리에 맞추어 춤을 배우는 사람들이 어울려 웃고 떠든다. 폴리네시아를 상징하는 타히티의 음악과 춤은 강렬하고, 생명력 있고, 관능적인 소리와 움직임을 나타낸다. 선교사들이 타히티에 왔을 때, 춤과 리듬을 억제하려 했다고 한다. 타히티인은 그들의 마력을 목소리에 부여하고 매혹적인 주문으로 영혼을 다룬다고 한다. 춤과 음악은 폴리네시아인의 신성한 삶을 표현한다.

고대 춤은 삶의 모든 측면과 연관돼 방문객을 환영하거나 기도하거나 적에게 도전할 때 사용되었다. 물론 자신의 짝을 유혹하기 위해서도 춤을 추었다. 오늘날 춤은 여전히 강력한 상징으로 남아 있는데, 특히 타히티인의 조화로운 목소리, 전통적인 드럼의 천둥소리, 그리고 슬픈 소라의 노래와 함께한다. 
식당에서 폴리네시아를 상징하는 타히티의 음악과 춤 공연이 열린다. 춤과 음악은 폴리네시아인의 신성한 삶을 표현한다. 강렬하고, 생명력 있고, 관능적인 소리와 움직임을 담고 있다.

선상 곳곳에서 만들거나 나눠주는 화관은 또 다른 폴리네시아를 상징하는 단어다. 열대의 꽃들은 섬 어디에나 있고 특히 왼쪽 귀 뒤에 꽂은 티아레꽃은 여행객 또는 돌아온 가족들에게 환영의 의미라 한다.

크루즈 곳곳에서 체험할 수 있는 폴리네시아 문화를 접하고 강당에서 열리는 문화 강의를 들으며 새로운 지식을 쌓고 있다. 일상에서 접하지 못한 또 다른 문화들이 조금은 낯설지 않게 다가오는 기회, 이것이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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