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혈 증상으로 지하철 역에 쓰러진 A씨가 부축을 받아 의자에 앉았다. 사진=네이트판 캡처 |
지하철 역에서 갑자기 쓰러진 여성을 지나가던 시민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는 소식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지난 14일 오후 4시40분쯤 20대 여성 A씨는 경복궁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철 승강장으로 내려가다 정신을 잃고 넘어졌다.
에스컬레이터는 계속 움직였고 A씨는 매우 위급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쓰러진 A씨의 옆을 무심코 지나치거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렸고 일부는 사진을 찍기도 했다.
지나가던 할머니 한 분만이 A씨를 부축해 승강장 내 의자에 앉혔고, 할머니는 A씨의 몸을 잡고 의자에 눕히려 애썼다.
혼자서 여성을 눕히는 게 힘에 부쳤던 할머니는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학생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남학생은 "나 남잔데 어떡해? 미투 당할까봐"라며 지켜보다 이내 자리를 떴다.
상황을 지켜보던 20대 여성 B씨도 마찬가지였다. B씨는 사고 현장에서 10걸음 떨어진 곳에서 A씨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B씨는 왜 도와주지 않았냐는 물음에 "도와줬다가 옷이 더러워졌다고 세탁비를 물어달라고 하거나, 소지품을 잃어버렸다고 도둑으로 몰리는 상황이 생길까봐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며 "괜히 생길지 모를 억울한 상황을 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를 지켜본 시민들 중 한명은 "'남자들이 미투를 당할까봐 여성이 길에서 위험에 처해도 도와주지 않겠다'고 말하거나 펜스룰 같은 단어는 인터넷에서만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며 "한국 사회가 많이 각박해진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시민 한명은 "(쓰러진 여성을) 도와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괜히 복잡한 일이 생길까봐 그냥 지나쳤다. 부끄럽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현상이 '미투(Me 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에 반해 생긴 '펜스룰(Pence Rule)'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펜스룰'이란 2002년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인터뷰에서 "아내 외의 여자와는 절대로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라는 발언에서 유래된 용어로 최근에는 성추행 사건을 사전에 차단한다는 의미로 쓰여지고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는 '펜스룰'이 아니라 '중국화' 현상이다.
지하철 역에서 쓰러진 A씨를 여성 시민들만 도와주고 남성 시민들은 가만히 있었다면 '펜스룰'로 인해 생긴 현상이라고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역에 있었던 남성, 여성 모두 A씨를 도와주지 않았다.
이는 과거 중국에서 있었던 유명한 사건을 연상시킨다. 지난 2006년 11월 난징(南京)에서 넘어졌던 한 할머니를 일용직 근로자였던 펑위(彭宇)라는 사람이 도와줬다.
하지만 할머니는 자신을 도와준 펑위를 상대로 13만원(한화 2100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걸게 됐고 중국 법원은 펑위에게 소송액의 40%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로 인해 중국에서는 사람이 쓰러져있어도 쉽게 도와주지 않게 됐다.
즉, 해당 사건은 남성-여성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닌 각박해진 세상에 대해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한편 A씨는 결국 역무원의 도움을 받고나서야 119에 신고를 했고, 강북삼성병원 응급실로 가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뉴스팀 ace2@segye.com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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