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지역위원회(MOWCAP) 의장으로 선출된 김귀배 유네스코한국위원회 과학문화본부장을 지난 20일 서울 중구 명동 유네스코회관에서 만났다. 김 본부장은 1994년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 입사한 이래 주로 국제문화협력 분야에서 일해왔다. 그는 MOWCAP 의장으로서 아태 지역 46개국의 세계기록유산 보호와 등재 목록 심사 관련 총회를 주재하고 관련 회의에 참석하게 된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지역위(MOWCAP) 신임 의장으로 선출된 김귀배 유네스코한국위원회 과학문화본부장이 지난 20일 서울 중구 명동 유네스코회관에서 가진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인류는 기록을 통해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게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제원 기자 |
기록유산 보존 관련 사업을 위해 아시아태평양 여러 나라를 다녔던 김 본부장은 “우리로 치면 조선왕조실록 같은 그 나라의 귀중한 보물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는 가슴 아픈 일들이 많다”고 말했다.
“몇백년 된 기록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해 종이가 서로 들러붙고 떨어지지 않는 거예요. 떨어지는 순간 훼손되는 거죠. 몇 해 더 지나면 내용을 전혀 알아볼 수도 없어요.” 김 본부장은 “도로를 깔아주고 건물을 세워주는 것보다 더 절실한 도움”이라며 이들 나라에 기록유산 보존 기법을 전수하는 ODA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북 대화가 재개되면서 기록 유산 분야에서 남북 협력 가능성도 열려 있다. 김 본부장은 “우리 쪽 조선왕조실록은 등재가 돼 있지만 북한에 남아있는 것은 등재가 되지 않은 상태니 공동등재 등 협력할 부분이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는 4·19혁명, 동학농민운동 관련 기록물을 세계유산에 등재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지만, 현재 국가 간 갈등 심화로 기록유산 신청제도가 일시 중단된 상태다. 일본의 반대로 등재가 보류된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이 대표적 예다.
유네스코 국제자문위는 신청 재개에 관련국 간의 대화를 조건으로 걸었다. 김 본부장은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역사적 사실을 심판하는 것은 아니다”며 “기록유산 자체의 순수성을 기준으로 심사하는데 최근에 정치적으로 이를 악용하는 국가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 본부장은 “기록유산은 원어로 ‘메모리 오브 더 월드(memory of the world)’”라며 기록을 통해 인류가 후세에 기억을 보존하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고 강조했다. 한국전쟁의 상흔을 담은 KBS 이산가족 상봉 기록이나 ‘안네의 일기’, 캄보디아 킬링필드 학살 관련 기록물 등이 그런 경우다.
그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정치적, 역사적으로 갈등이 많고 인종이나 종교적으로도 굉장히 갈라져 있는 지역”이라며 “이러한 갈등을 피할 수 있도록 하는 분야가 문화분야 협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임기 중 아태 국가에 세계기록유산 국가위원회가 설립되지 않은 나라들을 독려해 모두 설립할 수 있도록 하려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기록유산 보존은 유네스코가 지향하는 문화다양성 실현을 위한 수단 중 하나다. 김 본부장은 “인류 역사는 다양한 문화가 접촉하고 교류하면서 더 풍요로워졌다”며 “소수의 문화라도 지키고 살리는 게 전체 인류에게 큰 자산”이라고 힘줘 말했다.
홍주형 기자 jhh@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