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중순 미·중 간 고위급 협상을 통해 중국산 수출품 500억달러에 대해 미국이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USTR) 및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 등 대중국 강경파가 나서 기존 합의를 뒤엎고, 25%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은 미리 준비했던 맞대응 조치를 했다.
정인교 인하대 대외부총장 국제통상학 |
얼마 전 열린 중·EU의 고위급 경제대화에서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와 일방주의에 중국과 EU가 공동대응하며 다자무역체제를 방어하기로 했다. 하지만 중국에 비하면 EU의 대응은 온건한 편이고, 가급적 확전을 피하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미국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무역전쟁을 하는 것으로 비치지만 자세히 보면 중국에 대한 대응수위가 높다. 미국은 340억달러 중국산 상품에 대해 25% 관세 부과 계획을 밝히면서 만약 중국이 맞대응하면 추가로 2000억달러 무역제재를 예고했다. 지금까지 추이로 보면 중국이 그냥 당하지 않고 동일한 수준으로 무역보복을 할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 확전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중국은 전략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여건을 갖고 있다. 국영기업의 넉넉한 자금력으로 전략산업에 대한 재정적 지원이 가능하다. 당정 단일체제로 인해 규제완화 등 제도 정비에 문제가 없으며, 이미 내수시장 규모가 미국 수준에 육박하고 있어 전략산업이 판매시장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중국제조 2025’ 정책은 이러한 사항을 날줄과 씨줄로 연결해 체계적인 산업 지원이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이면에는 미래 제조업 주도권 경쟁이 자리 잡고 있다. 더구나 중국의 시진핑 정부가 ‘중국제조 2025’ 정책을 통해 전략산업을 발전시켜 나감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기를 꺾기 위한 갖가지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미국의 최첨단 스텔스 전투기를 베껴 만드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로 인해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와 중국의 미국 기술기업 투자나 인수합병 규제를 하게 됐다. 심지어 국가비상사태에나 가능한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을 발동해 중국을 견제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발 보호무역주의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고, 미·중 간 무역전쟁이 확전으로 치닫고 있음에도 세계 7위 무역국가를 자처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앞으로 미국의 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미·중 통상마찰은 불가피하다. 중국은 EU, 브라질 등과 협력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해 나갈 것이다. 한·미 관계를 고려하면 중국 편을 들기 어렵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일방주의를 막고 다자무역체제를 복원하자는 주장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미국 내에서도 트럼프 정책을 우려하고 있어 국제적인 연대가 형성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도 생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미·중 무역전쟁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반도체 수출의 40%가 중국으로 향하고 있고, 석유화학, 자동차(부품), 액정디바이스, 화장품 등 많은 산업이 중국 시장에 의존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 발발 시 우리 업계의 피해액은 367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 통상당국이 미·중 무역전쟁에 대한 마땅한 대응수단을 찾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제 기업이 대중국 리스크 관리를 해야 한다. 시진핑 정부의 내수성장정책에 발맞춰 선진국들은 지난 몇 년 사이 중국에 대한 중간재 수출 비중을 15% 줄이는 대신 소비재 비중을 늘렸다. 하지만 우리 기업의 소비재 수출 비중은 10년 전과 거의 같은 수준인 3%에 머물고 있다. 그동안 정부에서 중국 리스크를 강조해 왔지만 우리 기업의 대응은 느리기만 하다. 지금이라도 리스크를 분산하고, 중국 내수시장 공략에 집중해야 한다.
정인교 인하대 대외부총장 국제통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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