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회 경희대 교수·문학평론가 |
허균이 쓴 ‘홍길동전’은 한국인 모두가 알고 있는 ‘국민고전’이다. 서자차별의 가족제도 문제에서 탐관오리를 징치하는 사회개혁 문제로, 다시 해외에 새 나라를 세우는 국경확장 문제로 그 담론의 영역을 넓힌 전대미문의 소설이다. 한 외로운 선각자의 혁명적 이상주의는 당대 현실의 철벽 앞에서 허망하게 스러지고 그 자신도 처참한 형벌로 생애를 마감했지만 그가 주창했던 ‘혁신’의 꿈은 4세기를 경과한 오늘에도 여전히 빛나는 모범이다. 기실 허균이 형상화한 인물 ‘홍길동’은 도술에 의지해 가족·사회·해외에서의 모든 성취를 이루었다. 이는 그 단계적인 일들이 당대에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했다는 방증과 다르지 않다.
심지어 그 문제의식에서도 허점이 쉽게 보인다. 홍길동이 처첩제도와 서자차별에 이의를 제기하기로 했다면, 그가 율도국에 세운 새 나라의 왕이 돼서는 일부일처제를 고수해야 했다. 그러나 홍길동 왕은 백룡의 딸과 조철의 딸을 모두 왕비로 맞아들인다. 조선이라는 국가체제에 반기를 들기로 했으면 율도국은 그와는 무엇인가 다른 모형을 유지해야 했으나, 양자 간에 차이가 없고 율도국은 마침내 조선에 조공을 바치기로 한다. 이렇게 초월적인 힘을 동원하고서도 조선의 제도와 체제를 씻어내지 못한 것은, 오늘의 시각으로 바라볼 때 불합리해 보이지만 그 당대로서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모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고전문학에 나타난 이러한 ‘불합리성’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이를테면 완판본 ‘춘향전’에서 3월의 답청놀이를 나간 이몽룡이 5월의 단오에 그네 뛰는 춘향을 만나 그날로 사랑에 빠진다. 당대 민초들의 소망을 여러 창작자의 손길에 담다 보니 발생한 사실성의 균열이지만, 어느 누구도 이를 결정적인 흠결로 여기지 않는다. ‘홍길동전’의 불합리가 유독 드러나 보이는 것은, 허균이라는 구체적 작자의 창작으로 확인돼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그가 축조한 이 이상국의 유토피아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의 표현인 셈이다. 이 선각자의 고독한 운명을 두고 한 평론가는 ‘비쩍 마른 유토피아’란 호명을 부여했으나, 그것이 일방적 비난일 리 없다.
허균으로부터 한 세기가 경과한 다음에 나온 작품으로, 유토피아 의식에서 ‘홍길동전’에 비견할 만한 것이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이다. ‘홍길동전’은 국문이지만 ‘허생전’은 한문으로 돼있다. 그런데 ‘허생전’에는 어느 한 구석에도 소위 도술과 같은 초월적인 힘의 개입이 없고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의 연속으로 돼 있다. 서두에서 허생이 행한 매점매석이나 말미에 북벌의 허구성을 통렬히 비판한 ‘세 가지 어려운 일’에 대한 일화가 모두 당대에 실현 가능한 담론이었다. 허균은 그 사상이 혼자의 것이었으나 박지원은 당시에 하나의 시대적 사조였던 실학사상을 반영하면서 경세치용·이용후생·실사구시를 추구하던 실학파의 일원이었기에 그와 같은 변화가 가능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는 새삼 허균이 가졌던 그 위태롭고 혁명적이었던 문제의식에 최상의 수식어를 달아 경의를 표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의 ‘홍길동전’으로부터 40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공동체적 세상의 설득력 있는 유토피아 지향의 소설이 나왔으니, 그것이 곧 황석영의 ‘장길산’이다. 엄중하게 말하면 홍길동 없이 장길산이 있기 어렵다는 뜻이다. 허균이 지녔던, 그리고 사회 변혁의 방식으로 창안했던 진취적 사상은 4세기가 경과한 오늘에도 여전히 우리를 목마르게 한다. 그의 400주기를 먼 역사의 건너편에서 옷깃을 여미며 되돌아보는 이유다.
김종회 경희대 교수·문학평론가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