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군번에 저런 나부랭이한테~" 과연 박지원 군번은…朴 병장 VS 余 상병

지난 11일 자유한국당 소속 여상규 법사위원장과 '당신' 발언을 놓고 설전을 주고 받은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오른쪽에서 두번째)에게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맨 오른쪽)이 다가가 '저 때문에 이런~'이라고 고개 숙여 사과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박 의원은 "이 군번에 저런 나부랭이 한테~"라며 분을 삭히지 못했다. 사진=JTBC 캡처

정치판에서 산전수전을 다겪은 백전 노장인박지원(76) 민주평화당 의원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자유한국당 소속 여상규(70) 의원이 설전을 주고 받은 뒤 그에 따른 뒷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당신'이라는 말을 놓고 감정싸움을 펼쳤던 두 사람은 각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국민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

이런 가운데 이번엔 박 의원의 법사위 정회 뒤 "내가 지금 이 군번에 저런 나부랭이한테···"라며 분을 삭히지 못한 장면이 공개돼 또 다른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있다. 과연 박 의원 군번은 여 위원장보다 얼마나 높을까.

▲남자들은 군번으로 아래 위 따지기도

대한민국은 선·후배 관계가 비교적 엄격한 나라로 나이 문제로 시비가 붙으면 흔히 "민증(주민등록증) 까자"는 말을 한다. 주민등록상 생년월일을 보자는 것이다.

남자들은 이따금 "군번이 어떻게 되는데"라고도 말한다. 군번을 보면 대충 나이대를 짐작할 수 있고 선임, 후임(예전 용의로 고참 쫄병)을 가릴 수 있다.

군번 논란은 지난 11일 국회 법사위 이은애 헌법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도 벌어졌다.

당시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양승태 사법부 재판 거래 의혹과 관련해 법원의 영장청구 기각 비율이 지나치게 높은 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지적하자 판사 출신인 여 위원장이 "옳지 않은 표현"이라며 제지했다.

문제의 설전. 지난 1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이은애 헌번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여상규(오른쪽) 위원장이 사법농단과 관련해 영장기각률이 높다는 지적에 대해 '사법권 침해 우려'를 이유로 의원 질의를 막자 민주평화당 박지원(왼쪽) 의원이 "당신이 무슨 판사냐"며 따진 뒤 아슬아슬한 설전이 이어졌다. 사진=JTBC 캡처

이에 박 의원이 참지 못하고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거다"라며 "위원장이 사회만 보면 되지, 당신이 무슨 판사냐"고 소리쳤다.

발끈한 여 위원장은 "당신이라니! 진짜 보자 보자 하니까~"고 받아쳤고 박 의원은 "당신이지, 그럼 우리 형님이야"고 되돌려줬다.

여 위원장이 정회를 선언한 뒤 초선의 조 의원은 대선배 박 의원을 찾아 "저 때문에 죄송하다"고 고개 숙였다.

박 의원은 조 의원에게 "따지려면 야무지게 따지지. 초선이 빌빌거려"라며 책망한 뒤 "내가 지금 이 군번에 저런 나부랭이한테···"라며 씩씩거렸다.

▲76세 박지원 1967년 9월 병장 만기제대 VS 70세 여상규 1969년 11월 상병 만기제대

민증을 까면 박지원 의원이 당연히 압승이다. 박 의원은 1942년 6월5일생, 여 의원은 1948년 9월15일생이다.

그럼 군번은?, 개인정보 영역이어서 찾을 순 없지만 자신들이 신고한 병역관계를 보면 유추가 가능하다. 역시 박 의원의 승(勝).

박 의원은 1965년 4월15일 입대해 67년 9월 3일 병장으로 만기제대(29개월 9일 복무)했다.

여 의원은 69년 11월20일 상병으로 만기제대했다. 


▲병장 대 상병, 1962~82년엔 병장 자리가 비어야 진급···상병 만기전역 수두룩

여기서 의문이 든다. 박 의원은 병장 제대여서 현역이 분명하다. 그럼 여 의원의 상병 만기제대는 어떻게 된 일일까. 혹시 단기사병(방위병) 아닐까 하지만 단기사병제도는 1969년 4월 탄생했기에 여 의원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지난 5월 국방부는 "1962~82년은 병장 공석이 있어야 상병에서 병장으로 진급할 수 있었다"며 "이에 따라 월남전 참전자를 포함해 약 71만명이 30개월 이상 군 복무를 하고도 상병으로 전역했다"고 밝힌 바 있다. 

국방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병장 특별진급'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병무청 자료를 보면 30개월 이상 복무자 중 상병으로 만기 전역한 장병은 육군 69만2000여명, 해군 1만5000여명, 공군 3000여명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1968년 3월 육군으로 입대해 34개월 동안 복무했지만 베트남 참전 병사들이 무더기로 병장을 다는 바람에 TO(정원)가 없어 상병으로 만기전역했다. 

여 의원도 이런 사례였다. 

▲학력 스펙···박 의원, 명예박사 2개 VS 여 의원, 서울대 법대 수석 졸업

박 의원은 광주교대, 단국대를 거쳤다. 목포대에서 법학 명예박사, 조선대에서 경제학 명예박사 학위를 각각 받았다. 경륜과 세상을 보는 눈 등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을 만 하다는 것이 주변 평가다.

여 의원은 명문 경남고를 거쳐 서울대 법대를 수석 졸업했다. 시험 성적으로 따지면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스펙인 셈이다.

지난 1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이은애 헌번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개회 직전 민평당 법사위원인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왼쪽)이 '잘해 보자'며 여상규 법사위원장에게 악수를 청하자 여 위원장은 고개를 숙여 선배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세상 이력···4선의원 박지원, 장관· 청와대 비서실장· 당 대표 VS 3선의원 여상규, 판사· 변호사· 사시 출제 위원

세상 경력은 박 의원이 단연 화려하다. 72년 미국으로 건너가 특유의 친화력으로 교민회장까지 지낸 박 의원은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92년 14대 국회에 입성, 18·19·20대 등 4선 경력을 쌓았다.

'DJ 대통령 만들기'에 '올인'해 뜻을 이룬 박 의원은 문화관광부 장관과  대통령 비서실장, 당 원내대표와 대표 등을 거치면서 호남의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입지를 다졌다. 

여 의원은 30살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서울고법 판사를 거쳐 변호사로 전업했다. 사시출제위원과 인권위원회 조정위원 등을 지낸 뒤 2008년 18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19, 20대까지 내리 3선에 성공했다. 

박 의원은 정치인으로서 대통령을 뺀 나머지 모든 경험을 다 해 본 몇 안되는 인물이다.

여 의원은 엘리트 출신으로 나름대로 '꽃길'을 걸어 왔다.

박태훈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