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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어디 하소연도 못 해”…‘직장 내 괴롭힘’에 속앓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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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9-25 19:00:00 수정 : 2018-09-25 22: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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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심해지는 직장내 괴롭힘 / 직장인 73.4% “1년내 괴롭힘 당해” / 피해자들 “말해봐야 개선 안 돼” / 일본, ‘파워하라’ 대책마련 추진 / 스웨덴 1993년 직장 괴롭힘 규율 조례 / ‘괴롭힘 방지법’ 국회 법사위에 발목
#. 김모(29)씨는 지난해 회사를 그만뒀다. 생애 첫 직장이었다. 어디 내놔도 남부럽지 않은 곳이었다. “고생했다.” 입사 소식이 전해지자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돈을 떠나 ‘역대급’ 취업난을 뚫었다는 자부심도 컸다. 그러나 입사 후 겪게 된 인격모독으로 그의 직장생활은 비참하기만 했다.

“이XX 할 줄 아는 게 뭐야.” “그런 머리로 어떻게 입사했냐.”

그의 ‘맞선배’는 일단 욕으로 모든 대화를 시작했다. 반말은 기본이었고 작은 실수에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군기가 센 업계 분위기도 한몫했지만 선배는 그 정도가 유독 심했다. ‘실수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은 잦은 실수를 불렀고 김씨는 점점 더 위축됐다.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그러기를 수개월, 술기운을 빌려 선배에게 “힘들다”고 에둘러 말해봤다. 정말 마지막이란 심정에서였다.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기대감도 있었다. 그러나 돌아온 건 “그건 네 잘못이다”, “그런 정신으로 버틸 수 있겠느냐”란 타박뿐이었다. 그래서 사표를 썼다. 이런 말을 6개월 이상 더 들을 자신이 그에겐 없었기 때문이다.

폭행, 모욕 등 ‘직장내 괴롭힘’에 남몰래 속앓이하는 직장인들이 적지 않다. 직장인들의 3분의 2가 직장에서 괴롭힘을 겪은 것으로 조사됐을 정도다. 가까운 일본에서 최근 직장내 괴롭힘 방지 대책을 기업에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피해 직장인들 “말해봐야 나만 손해”

25일 한국노동연구원의 ‘직장내 괴롭힘 실태와 제도적 규율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과거 5년간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해 직접적 피해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전체의 66.3%에 달했다.

괴롭힘 유형으로는 협박·명예훼손·모욕 등 ‘정신적인 공격’(24.7%)이 가장 많았고, 업무 외적인 일과 과도한 업무를 지시하는 등의 ‘과대한 요구’(20.8%), 소외·무시 등 ‘인간관계에서의 분리’(16.1%), 잔심부름 등 ‘과소한 요구’(10.8%), ‘신체적인 공격’(2%) 등이 뒤를 이었다.

지난 2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우리 사회 직장내 괴롭힘 실태조사’(20∼64세 임금근로자 1506명 대상)에서도 최근 1년 동안 1번 이상 직장내 괴롭힘을 경험한 직장인은 73.4%나 됐다. 피해 빈도는 ‘월 1회 정도’(21.4%)와 ‘주 1회 정도’(13.2%)가 많았지만, ‘거의 매일’이라는 응답도 12%나 됐다.
직장인들은 괴롭힘을 당해도 속으로 삭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피해를 호소할 창구가 마땅치 않은 데다 ‘뒷감당’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인권위 조사에서 ‘특별히 대처한 적이 없다’(60.3%)란 응답은 문제 제기(26.4%)를 하거나 공식적인 조치를 요청(12.0%)한 경우보다 훨씬 많았다.

피해자들은 ‘대처해 봐야 개선될 것 같지 않다’(43.8%), ‘직장 내 관계가 어려워질 것 같아서’(29.3%), ‘고용상 불이익을 우려해서’(17.0%) 등을 대처하지 않는 이유로 꼽았다.
◆日, 기업에 ‘파워하라’ 방지 의무화 추진

사정이 비슷한 일본은 최근 기업에 직장내 괴롭힘 방지 대책을 의무화하는 방안 마련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일본 후생노동성은 자문기구인 노동정책심의회가 올 연말까지 직장내 괴롭힘 방지 대책 등을 담은 방안을 마련하면 내년도 국회에 법 개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상사에 의한 부하 괴롭힘을 의미하는 이른바 ‘파워하라’가 기업 생산성을 저하하는 등 문제가 심각해졌다는 판단에서다.

여기서 ‘파워하라’는 힘(Power)과 괴롭힘(Harassment)을 조합한 일본식 조어로, 상사가 직무상 지위를 활용해 부하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를 뜻한다. 지난해 일본 노동국에 접수된 직장 괴롭힘 관련 상담 건수는 총 7만2067건에 달한다.

이에 일본 정부는 기업에 ‘파워하라’ 방지 조치, 근로자 상담 창구 개설, 사실관계의 신속 조사·확인 등을 의무화하겠다는 방침이다. 또 가해자 인사 조처 의무화 방안과 ‘악질 기업’의 경우 회사명을 공표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주요 국가들에서는 1990년대부터 벌써 이런 조치들이 논의됐고 2000년대 들어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입법이 이어졌다.

스웨덴은 1993년 세계 최초로 직장내 괴롭힘을 규율하기 위한 조례를 제정했고, 영국은 다른 사람을 고의로 괴롭히는 스토킹 등 각종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공공질서법(1986년), 괴롭힘금지법(1997년) 등을 마련했다. 프랑스도 노동법전 등에 괴롭힘에 대한 법적 정의 및 규정을 담았다.
◆“‘괴롭힘’ 정의 모호해” 국회에 발목

우리나라에서도 ‘직장내 괴롭힘’ 가해자 처벌 근거 등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국회의 벽을 쉽사리 넘지 못하고 있다. ‘괴롭힘의 정의가 모호하다’는 반론에 가로막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넘겨진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따르면 기업은 괴롭힘 피해자의 근무장소 변경이나 유급휴가 명령을 비롯한 보호조치를 의무화해야 하고, 피해자나 신고자에게 해고와 같은 처우를 하면 형사처벌하도록 돼 있다. ‘직장내 괴롭힘’에 대해서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정서적 고통을 주거나 업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규정했다.

하지만 해당 법안은 지난 20일 열린 법사위에서 야당 의원들이 “체계, 자구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해 소위원회로 회부해 심사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의결이 무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고용노동부에서 “직장내 괴롭힘은 사회적으로 큰 문제인 데다 여야 이견 없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한 법안”이라며 조속한 처리를 호소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노동인권단체 관계자는 “직장내 괴롭힘에 따른 정신적 스트레스로 발생한 질병을 업무상재해에 포함하는 산재보상보험법 개정안 등도 처리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한 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만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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