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살펴본 전문가들은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으로 가치가 높은 불화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다만 남아있는 관련 기록이 없어 언제 어떻게 절 밖으로 나가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지체 없이 부산 범어사로 찾아가 조사 내용을 알렸다.
“성보 망실에 대한 참회의 의미로 금액과 상관없이 반드시 되가져와야 합니다.”
주지 스님의 생각은 분명했다. 재단이 환수를 위한 실무를 맡았다. 출품 사실을 확인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재단 담당직원, 범어사 스님과 작품 조사를 위해 불화 전문가인 조계종 산하 불교문화재연구소 실장이 스위스로 갔고, 6월 3일 경매에서 경합 끝에 낙찰에 성공했다. 알고 보니 이 석 점은 1997년 뉴욕 경매에 나왔으나 당시에는 유찰되었다고 하니 고향으로 돌아올 운명이었던 모양이다.
‘인연생기’(因緣生起). 모든 인연은 이어지고, 정해져 있다는 불가의 가르침이다. 세상의 이치가 그렇다고 한다. 사찰에 소중히 보관되어 있어야 할 불교문화재들이 밖으로 나돌게 된 것은 불행이지만 잃어버린 문화재들이 돌아오는 걸 보면서 종종 인연생기를 떠올린다. 뜻하지 않게 절을 떠났으나 이어지고, 정해진 인연에 따라 귀향한 것이 아닐까. 물론 문화재를 찾아내 연구한 여러 사람의 노력, 문화재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 놓치지 않으려는 정성과 마음이 모여야 인연은 오롯이 완성된다. 범어사 칠성도 11폭을 이루던 다른 부분이 돌아온 과정은 인연생기의 가르침을 더욱 절감하게 한 사건이었다.
지난 4월 미국의 한 경매에 출품된 사실이 확인된 봉은사 시왕도를 관계 기관 직원들과 불화 전문가들이 살펴보고 있다. |
스위스에서 낙찰받은 칠성도는 한 달여 뒤인 7월 13일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다음날 범어사에 돌아갔고, 성대한 봉안식과 함께 사부대중의 환영을 받았다. 그런데 칠성도의 귀환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환수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9월 7일, 야근을 하다 사무실에 새로 배달된 국내 경매회사의 도록을 넘겨보던 중 두 점의 불화를 발견했다. 낯이 익은 것이었다. 아직 찾지 못한 범어사 칠성도의 다른 일부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밤늦은 시간이었지만 범어사에 이런 사실을 알렸다. 나머지 칠성도의 ‘환지본처’(還至本處·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간다는 의미의 불교용어)를 위한 준비가 다시 급박하게 진행됐다. 경매는 9월 15일에 진행됐고, 칠성도 두 점은 범어사 신도에게 낙찰되어 범어사에 기증되었다. 낙찰자는 앞서 스위스 경매에 나온 불화의 환수경비를 희사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극적인 과정을 거쳐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범어사 극락암 칠성도 5점은 2015년 11월 18일 부산시 유형문화재 167호로 지정되었다.
미국에서 환수해 지난 5월 공개한 봉은사 시왕도 |
정해진 인연이라면 하늘도 그것을 이루기 위해 돕는 것은 아닐까. 지난 8월 원래의 자리인 운문사 칠성각에 봉안된 칠성도의 환수가 그랬던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난 2월 미국 뉴욕의 한 경매소에 불화 한 점이 출품된 걸 확인했다. ‘약사여래’(The Medicine Buddha)라고 소개되어 있었으나 칠성여래를 잘못 보고 쓴 것이었다. 그림 속 칠성여래는 독특하게 왼손 위에 정병을 들고 있는데, 정병을 약사여래의 약합으로 착각한 것이다. 불화의 하단에는 불화의 조성 내력을 밝힌 화기가 적힌 것이 보였다.
“雲門寺新畵成 奉安…”(운문사신화성 봉안…)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사에 봉안되었던 불화였다. 또 “金魚比丘偉相”(금어비구위상)이라고 하여 그림을 그린 화승이 ‘위상’임을 알 수 있었다. 위상은 19세기 후반 경상도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수화승이었다.
전문가들이 불화 내용을 조사한 결과 화면 뒤편에 그려진 5폭 병풍 배경의 구름 문양이 운문사 관음전에 봉안되어 있는 ‘관음보살도’의 구름 문양과 일치했다. 위상이 운문사 불화 조성에 참여한 사례는 현전하는 작품으로 1868년 관음전 관음보살도와 ‘원응국사진영’이 있다. 따라서 미국에서 발견된 이 칠성도 역시 1868년 불사 때 함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운문사 칠성도. 관계 기관의 원활한 협력, 전문가들의 신속한 조언, 원소장처의 분명한 환수 의지가 있어야 해외에 흩어진 우리 문화재를 되가져 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
경매 당일, 눈이 내렸다. 겨울이 다 지나고 봄기운이 활개를 칠 즈음에 내린 뜻밖의 폭설이었다. 새벽부터 내린 눈으로 지하철 일부까지 멈출 정도로 뉴욕 시내 교통은 마비됐다. 학교와 대부분의 직장은 임시휴업에 들어갈 정도였다. 우리 일행은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눈보라를 헤치고 발이 푹푹 빠지는 눈더미를 밟으며 경매사에 도착해 초조하게 경매를 기다렸다. 하늘이 도우려고 때 아닌 폭설을 내려준 것일까. 폭설로 경쟁자들이 오지 못했는지, 다소의 경합은 있었지만 칠성도는 운문사의 품에 다시 안길 수 있었다.
운문사 칠성도는 4월 11일 칠성도가 국내로 귀환한 후 5월 22일 공개식을 가졌고 8월 17일 성대한 봉안식을 열고 운문사 칠성각에 봉안됐다.
김동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조사활용2팀 차장 |
범어사, 운문사 칠성도의 사례처럼 외국 경매에 출품된 우리 문화재의 환수는 넉넉한 시간을 확보하기 힘들다. 경매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야 출품 사실을 알 수 있다. 짧은 시간 동안 해당 문화재의 내력을 확인해야 하고, 환수 의사와 방식을 확정해야 한다. 출처와 유출 과정을 알려주는 기록이 풍부한 것도 아니다. 이런 사정 때문에 관련 기관 간 정보 공유와 역할 분담, 전문가들의 협력이 원활해야 한다.
시왕도의 존재를 안 것은 재단이 조선의 마지막 공주인 덕온공주 동제인장을 매입하기 위해 뉴욕에 출장 갔을 때였다. 인장의 경매 전날인 4월 17일 저녁, 응찰 준비를 마치고 국외경매에 출품된 한국문화재 상황을 점검하던 중 수준급의 시왕도 한 폭이 출품된 것을 확인했다. 도난문화재 여부를 체크해 보았으나 특이사항은 없었다. 화기 부분은 잘려 있어 내력을 알기도 힘들었다. 경매일은 4월 24일로 일주일이 남은 시점이었다. 문화재청과 조계종 문화부에 알리고 검토를 요청했다. 종단 전문가의 확인은 신속했다.
화기가 없었는데, 출처를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동국대박물관에는 한 폭에 시왕 3존씩을 그린 시왕도 두 폭이 남아있는데 화기에 봉은사 시왕도임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국립중앙박물관에 1996년 미국 경매에서 매입한 시왕 2존이 그려져 있는 한 폭의 시왕도가 있다. 동국대박물관 소장 두 폭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한 폭은 그림의 크기도 비슷하고 양식도 거의 같은데, 경매에 출품된 한 점까지 놓고 비교해보면 이 네 폭이 원래 한 세트로 조성된 시왕도임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기록도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뿔뿔이 흩어진 불화의 원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종단 전문가의 지식과 안목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정보를 공유한 재단과 문화재청, 조계종, 봉은사는 협의에 들어갔다. 시간이 많이 부족했지만, 바로 한 달 전 운문사 칠성도를 매입할 때의 경험이 있어 빠르게 일을 진행할 수 있었다. 봉은사 역시 환지본처의 의지가 명확했다. 봉은사 스님들과 신도들의 정성과 기도에 힘입어 시왕도는 성공적으로 국내로 귀환하여 5월 16일 공개식과 고불식을 진행했다.
김동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조사활용2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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