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눈에 띄는 건 초등학생들이다. 학교별로 같은 색 모자를 눌러 쓴 아이들이 우르르 단체로 깃발 든 선생님을 따라다닌다. 모자 색깔로 일행 여부가 바로 구분된다. 쉴 새 없이 재잘거리는 아이들 뒤로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신사 안은 어느새 인파로 북적인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다. 일본 현지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찾는, 찾고 싶어하는 곳이다. 각자 찾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근저에는 ‘평화’란 것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간직한 역사에서도, 품고 있는 풍광에서도 일본 도치기현의 닛코는 찾는 이에게 안녕과 평화를 선물한다.
일본 닛코 도쇼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무덤과 위패가 있는 신사다. 도쇼구를 둘러보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은 삼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
일본 도쿄를 찾는 이는 많지만 기차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닛코(日光)는 여행 일정에서 고려의 대상이 안 된다. 도쿄 시내만 둘러보는 데 며칠을 묵어도 모자라는데 외곽의 닛코는 다음에 방문한다면 ‘한 번 가볼까’ 싶은 지역이다. 그리고 잊힌다.
도교에서 닛코까지 운행하는 도부열차. |
지금의 도쿄가 있게 된 기틀을 마련한 이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이다. 그와 그의 후손들이 지배하던 시대는 전국시대처럼 하루아침에 목숨이 사라지는 혼란한 상황이 아닌 평화로움이 흐르던 시기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무덤. |
하지만 후대에 이곳이 평화를 상징하는 곳으로 인식되게 한 것만은 틀림없을 듯싶다. 도쇼구를 찾은 현지인들이 평화를 바라며 향을 올리는 모습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군국주의 부활 얘기가 나오는 일본 정치권의 행보와는 분명 다른 길이다.
단순히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무덤이라면 찾을 이유는 많지 않다. 그가 죽은 후 아들은 이장을 했고, 손자는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기 위해 무덤을 황금과 정교한 조각으로 치장했다. 손자는 전국에서 장인 1만5000명을 불러들여 금 56만냥을 투입해 1636년 지금의 모습을 완성했다. 손자의 신사도 도쇼구 옆에 있다. 이들 신사와 인근의 절집 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닛코 국립공원 입구에 있는 신교. |
도쇼구내 신큐사 외벽의 원숭이 목판화 산자루. |
도쇼구에 걸려있는 조선이 선물한 종. |
도쇼구에서는 통신사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데, 도쇼구에서 가장 화려한 문 요메이몬(陽名門) 앞에 작은 종이 걸려 있다. 높이가 110㎝, 둘레가 90㎝에 이르는 이 종은 1643년 인조가 제사에 사용하라고 보낸 조선 종이다. 도쇼구 가장 높은데 있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무덤 앞 향로, 화병, 촛대 등 삼구족도 조선통신사의 선물이다.
도쇼구 곳곳의 장식을 보면 일본 특유의 ‘디테일’이 살아있다. 현란한 금박을 입힌 요메이몬은 5000여개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마구간 신큐사 외벽의 원숭이 목판화 산자루(三猿)도 눈길을 끈다. 원숭이 세 마리가 각각 눈, 귀, 입을 막고 있는 모습이 양각돼 있다. ‘못 들은 척, 못 본 척하며 말도 함부로 하지 말라’는 일본의 처세술을 상징한다. 처세술의 달인으로 꼽히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무덤 길 초입에 있는 눈을 감고 있지만 귀는 쫑긋 세운 작은 고양이 ‘네무리네코’와 에도 시대 때 그린 상상의 코끼리 조각 등도 유명하다. 워낙 유명한 신사이기에 제사를 지낼 때 전국에서 술을 보내는데, 다양한 술독이 전시돼 있는 모습도 눈길을 끈다.
도쇼구 인근의 카페 ‘홍구’. |
일본 닛코 게곤 폭포는 울긋불긋한 단풍을 뚫고 100m 위에서 쏟아져 내린다. 일본에선 ‘닛코를 보기 전에 겟코(멋짐 또는 훌륭함)라는 말을 하지 말라’는 말이 전해진다. |
우리 역사도 아닌 일본의 역사, 전통 건물 등만 보려고 이곳을 찾기엔 선뜻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서양인들이야 일본의 처마와 장식을 보며 동양의 새로운 문화를 접하겠지만, 우리는 아니다. 한국의 전통 사찰, 한옥 등 이미 익숙한 모습이어서 도쇼구 등에서 색다른 매력을 느끼긴 쉽지 않다. 닛코의 또 다른 매력은 풍광에 있다. 일본엔 ‘닛코를 보기 전에 겟코(멋짐 또는 훌륭함)라는 말을 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생전 이 풍경에 매료돼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닛코로 이장을 원한 것일 수도 있다.
이 압도적인 풍경의 근본은 난타이산과 주젠지 호수고, 호수에서 떨어지는 게곤 폭포는 화려함의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거기에 가을의 오색찬란함은 화룡점정이다.
닛코의 난타이산. |
유람선을 타고 주젠지 호수 풍경을 즐길 수 있다. |
주젠지 호수 주위로는 외국 대사관 별장들이 많다. |
일본 사이타마현 카와고에는 에도 시대의 모습을 간직한 곳으로 중요전통건물 보존지구로 지정돼있다. |
닛코=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여행 tip
○…도쿄에서 닛코까지는 기차로 2시간이면 도착한다. 도쿄 아사쿠사역에서 출발해 도부닛코역에 도착하는 도부철도를 이용하면 편하게 갈 수 있다. ‘닛코 전 지역패스’와 ‘닛코 세계유산 지역패스’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닛코 전 지역패스’는 도쿄까지 왕복 철도는 물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쇼구 등에 다니는 닛코 지역 내 도부버스 전 노선과 케이블카, 유람선 비용 등이 포함돼 있다. 각각 이용 시보다 40%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 ‘닛코 세계유산 지역패스’는 왕복 철도와 세계문화유산을 오가는 도부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닛코에서는 온천을 즐길 수 있고, 대표적인 음식이 유바(두부껍질)다. 절집이 많은 닛코에서 영양이 뛰어난 휴대용 식량으로 시작됐다. 두유를 가열하면 표면에 얇은 막이 생기는데 이 막을 재료로 유바를 만들었다. 겉모습만 보면 넓적한 면처럼 보이는데, 식감은 밀가루면보다 더 쫄깃쫄깃하다.
○…도쿄 이케부쿠로역에서 도부철도를 이용 시 30분이면 에도시대 정취가 남아있는 사이타마현 가와고에에 갈 수 있다. 도쿄는 과거 모습이 거의 사라졌지만, 가와고에에는 일본의 전통가옥 양식 중 하나인 구라즈쿠리식 가옥과 상가들로 이뤄진 에도 거리가 조성돼 있다. 가와고에는 중요전통건물 보존지구로 지정돼 있다. 가와고에에서는 기모노 체험과 장어, 고구마 요리 등을 즐길 수 있다.
○…도쿄에서 닛코까지는 기차로 2시간이면 도착한다. 도쿄 아사쿠사역에서 출발해 도부닛코역에 도착하는 도부철도를 이용하면 편하게 갈 수 있다. ‘닛코 전 지역패스’와 ‘닛코 세계유산 지역패스’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닛코 전 지역패스’는 도쿄까지 왕복 철도는 물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쇼구 등에 다니는 닛코 지역 내 도부버스 전 노선과 케이블카, 유람선 비용 등이 포함돼 있다. 각각 이용 시보다 40%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 ‘닛코 세계유산 지역패스’는 왕복 철도와 세계문화유산을 오가는 도부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닛코에서는 온천을 즐길 수 있고, 대표적인 음식이 유바(두부껍질)다. 절집이 많은 닛코에서 영양이 뛰어난 휴대용 식량으로 시작됐다. 두유를 가열하면 표면에 얇은 막이 생기는데 이 막을 재료로 유바를 만들었다. 겉모습만 보면 넓적한 면처럼 보이는데, 식감은 밀가루면보다 더 쫄깃쫄깃하다.
○…도쿄 이케부쿠로역에서 도부철도를 이용 시 30분이면 에도시대 정취가 남아있는 사이타마현 가와고에에 갈 수 있다. 도쿄는 과거 모습이 거의 사라졌지만, 가와고에에는 일본의 전통가옥 양식 중 하나인 구라즈쿠리식 가옥과 상가들로 이뤄진 에도 거리가 조성돼 있다. 가와고에는 중요전통건물 보존지구로 지정돼 있다. 가와고에에서는 기모노 체험과 장어, 고구마 요리 등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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