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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된 '혐오', 폭행 갈등으로 번지는데… 혐오 정의도 교육도 입법도 없었다

입력 : 2018-11-26 07:02:00 수정 : 2018-11-25 18:3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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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파시즘-혐오 방조한 정부①] 정의, 교육, 입법 모두 부재
“한남충(한국남자 비하표현)…재기해(자살을 뜻하는 비하발언)!”

지난해 3월 김모(25)씨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서 채팅 참가자 A씨를 향해 이 같은 혐오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이날 “가지가지 하네. 왜 살지? 재기해버리지” 등 A씨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고 앞선 2월에도 “애비충(아버지 비하표현) 진짜 극혐(극도로 혐오)이야”같은 발언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씨는 결국 모욕 혐의로 기소됐고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에서 혐오표현이나 행동은 차고 넘치고 있지만, 정부를 중심으로 제대로 된 대책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 아직껏 혐오에 대한 기본적인 정의와 기준도 마련하지 못한 데다가 관련 교육도, 관련 입법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어서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혐오를 방조하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조차 나올 지경이다.

◆혐오발언 개념∙정의조차 마련하지 못한 정부

혐오표현에 대한 국민 반발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워마드 등 혐오 발언을 사용하는 커뮤니티를 제재를 해달라는 청원도 빗발쳤다.

하지만 정부는 혐오에 대한 정의조차 내리지 못한 채 아직도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음란물, 사행성 정보, 비방목적의 명예훼손 정보 등을 ‘불법정보’로 보고 시정요구하고 있지만 불특정 대상을 향한 혐오발언은 삭제할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일베 사이트 폐쇄를 요청합니다’ 청원 답변에 나선 김형연 법무비서관은 “불법정보가 70%에 달하면 사이트를 폐쇄할 수 있다”고 답했지만 혐오발언이 불법으로 인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사이트에 별다른 위협이 되지 못했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2015년 우리나라에 혐오와 차별을 정의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기도 했다. 유엔은 “특정한 형태의 차별을 금지하기 위한 다수의 개별법이 시행 중임을 인지하고 있지만 포괄적인 차별금지법 부재에 대해서 우려를 표한다”며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을 제정해 모든 삶의 영역에서 인종, 성적지향 또는 성 정체성에 의한 차별을 포함하여 이유를 막론한 차별을 정의하고 금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혐오 다룰 전담기구도, 혐오표현에 대한 교육 체계도 없어

혐오와 차별을 전담하는 기관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현재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국가인원위원회법’상 “성별, 종교, 장애, 나이 등 이유로 고용 또는 재화의 공급이나 이용, 교육 등 평등권 침해의 차별적 행위를 금지한다”고 일부 분야의 평등권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혐오표현’을 제재할 명분이 없다는 한계가 지적된다. 일각에서는 혐오와 갈등을 총괄하고 컨트롤하는 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혐오를 예방할 시민교육 체계도 거의 없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현재 학교 현장에선 인권교육이 진행되고 있지만 단발성에 그치고 있고, 성교육과 달리 의무교육이 아니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과서 집필기준과 검정기준에도 ‘양성평등’ 관련 내용이 담겼지만 가족 구성원의 역할 정도 명시될 뿐 남녀갈등이나 평등을 다루기엔 무리가 있다. 혐오 표현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내용이나 이를 가르칠 체계가 마련돼 있지 않다는 평가다. 인권위에서도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한 ‘찾아가는 인권특강’이 진행하고 있지만 소규모에 불과한 상황이다.

◆혐오규제법 입법도 지지부진...일부 종교단체 반대

혐오언행을 규제할 법이 없는 것도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그래서 인권위 최영애 위원장은 지난 9월 혐오를 규제할 ‘차별금지법’ 제정을 목표로 인권위 내 ‘혐오·차별·배제 대응위원회’ 구성 계획을 밝혔다. 그는 “여성과 이주민, 난민, 성 소수자 등을 비하하는 표현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성별, 장애, 학력, 용모 등을 이유로 한 차별 행위는 평등의 가치를 외면한다”며 취임 후 자신의 첫 번째 책무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선언했다.

현재 국회 차원에서도 혐오표현을 규제할 법안을 내놓고 있지만 일부 단체의 반대로 난항을 겪는 중이다. 지난 2월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의원 시절 ‘혐오표현 규제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일부 종교단체의 반발에 부딪쳐 보름 만에 철회했다.

당시 법안에는 성별, 지역, 나이, 민족, 인종 등에 대한 혐오표현을 한 자에게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동성애 확산을 우려한 종교단체들은 “혐오표현이 아직 한국사회에서 합의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대의사를 내비쳤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는 19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기독교 단체들이 동성애와 이민자에 대해 반대할 때 혐오표현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어 차별금지법 제정이 힘들었다”며 “차별금지법은 무조건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혐오표현에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데 의미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온라인상 혐오 표현의 경우에도 지금은 처벌이나 방지할 근거가 없지만 차별금지법이 있다면 표현을 계도하거나 삭제할 근거가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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