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미쓰이(三井)생명보험이 내년 4월1일 회사 이름을 다이주(大樹)생명보험으로 변경한다고 11월29일 발표했다. 이와 관련해 제2차 세계대전부터 이어온 일본의 구(舊) 재벌계 대기업 그룹의 현황과 앞날이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일본의 대표적인 구 재벌계 대기업 그룹인 미쓰비시(三菱)의 경우 소속 미쓰비시중공업이 대법원의 강제징용 및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배상 명령을 받는 등 소위 전범(戰犯) 기업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구 재벌계 대기업 그룹은 그동안 강한 결속력을 보이며 일본 경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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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 상징 |
일본어로 ‘자이바쓰’로 불리는 재벌은 동족(同族에 의해 출자·지배되는 지주회사(持株會社·Holding Company)를 중심으로 다각적인 사업을 전개하는 기업군(群)을 말한다. 에도(江戶)시대 가업을 시작한 미쓰이, 스미토모(住友)나 이후 창업된 야스다(安田), 미쓰비시를 더해 전전(戰前) 4대 재벌이라고 부른다. 일본이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항복한 뒤 연합군총사령부(GHQ)는 재벌이 군국주의 경제의 기초가 됐다는 시각에서 4대 재벌 등을 대상으로 지주회사 해산과 주식소유 분산을 단행했다. 이른바 재벌해체로 불리는 작업이었다.
GHQ의 점령이 종료된 뒤 구 재벌계 기업은 재결성을 도모했다. 구 미쓰이 재벌의 경우 GHQ에 의해 해체됐던 핵심 기업인 미쓰이물산이 59년 재통합됐고 2년 후에는 18개사 사장이 모여 사장회(社長會)인 니모쿠카이(二木會)를 발족했다. 구 스미토모 재벌은 하이수이카이(白水會), 미쓰비시는 미쓰비시킨요카이(三菱金曜會)이라는 이름으로 사장회를 각각 결성했다. 현재 미쓰비시그룹의 미쓰비시킨요카이에 27개사, 미쓰이그룹의 니모쿠카이에 25개사, 스미토모그룹의 하이수카이에 19개사가 소속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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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이 상징 |
여기에 후지(富士), 산와(三和), 다이이치권업(第一勸業) 3개 은행도 유력 금융기업을 모아 유사한 사장회를 조직해 구 재벌계 3개 그룹과 함께 6대 기업집단으로 불렸다. 사장회는 구 재벌과는 차이가 있어서 기업끼리 수 퍼센트 정도의 주식을 서로 보유한 느슨한 형태라는 게 특징이다.
현재 미쓰비시, 미쓰이, 스미토모 3대 그룹에서는 월 1회 정도 사장들이 모여 국제정세나 경기(景氣), 각사의 사업에 대해 의견교환을 하거나 상표관리, 사회공헌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거래가 필요할 때는 같은 그룹 계열사를 최우선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룹 내의 경영위기에도 공동 대처했다. 2016년 미쓰비시 자동차의 연비조작 사건이 발생했을 때 미쓰비시킨요카이가, 2015년 도시바(東芝)의 부정회계 사건에서는 니모쿠카이가 각각 두 회사에 대한 경영지원과 구제책을 도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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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토모 상징 |
이런 상황에서 내년 봄 미쓰이생명보험의 다이주생명보험 개명은 일본 재계의 새로운 변화고 인식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미쓰이생명보험이 2015년 업계 최고인 니혼(日本)생명보험에 인수돼 자회사가 됨으로써 미쓰이라는 이름을 더는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다이주라는 사명(社名)은 1970년부터 니혼생명보험의 주력 상품 브랜드인 ‘다이주 시리지’에서 가져왔다. 니혼생명보험은 다이주라는 브랜드명이 고객 사이에서 인지도가 높다고 개명을 결정했다. 미쓰이생명보험은 1927년 다카사고(高砂)생명보험에서 이름을 바꾼 이래 90여년간 사용해온 사명을 변경하게 된 셈이다. 개명 이후에도 미쓰이 그룹 내에는 남아 있을 예정이다.
전통적인 사명이 바뀌는 것은 미쓰이생명보험 뿐만이 아니다. 전전 전범 기업으로 불리는 일본제철의 후신인 신일본제철과 구 재벌계 스미토모금속공업이 2012년 합병돼 발족한 신일철스미킨(新日鐵住金)은 내년 봄 다시 일본제철로 개명한다. 신일철스미킨(주금)은 10월30일 대법의 징용 피해자 배상 명령을 받은 기업이다.
일본에서는 구 재벌계 기업의 인기가 여전하다. 일본에서 10대 인기기업 중 5개사가 미쓰비시, 미쓰이, 스미토모 계열이라고 한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취직정보회사가 지난 3월 문과계 대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학생들의 ‘재벌지향’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와세다(早稻田)대와 게이오(慶應)대 학생의 경우 취직 선호 10개사 중 7개사가 구 재벌계 기업이었다.
도쿄=김청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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