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미래의 웰빙’이라는 주제로 열린 6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세계포럼이 ‘인천 선언’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27일부터 OECD와 한국 통계청 공동 주최로 인천 송도컨벤시아에 개최된 이번 포럼에는 각국 장·차관급 인사와 국제기구 대표 등 100여개국에서 3000명이 참석해 미래 웰빙(참살이)의 원동력을 두고 논의했다.
특히 폐막식에서 발표된 ‘국민 삶의 질 증진을 위한 인천 선언’에는 범정부 차원에서 국민 삶의 질을 높여 지속가능한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확립하겠다는 각국 정부와 OECD의 의지가 담겼다.
행사 기간 중 참석자들은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디지털과 기술이 웰빙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집중 토론했다. 이런 가운데 디지털 경제 기술, 스마트 응용 프로그램 및 기타 혁신 기술이 인류의 생활 향상과 보건, 공공 거버넌스(지배구조)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포럼 기간 발표에 나선 마틴 카에바츠(Marten Kaevats) 에스토니아 정부 디지털 고문은 자국의 다양한 디지털 기술 활용을 소개하는 한편 인구 130만명의 북유럽 소국이 어떻게 세계은행(WB) 평가 디지털 국가 1위, 세계경제포럼 선정 기업가정신 1위, OECD 평가 조세 경쟁력 1위에 올랐는지도 설명했다. 그런 기술 중 하나로 원격의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원격의료는 통신기기를 통해 이뤄지는 의료정보의 전달 및 일체의 의료행위를 가리키는데, 에스토니아는 ‘X-로드’ 시스템을 통해 핀란드와 개인 의료정보 공유도 하고 있다. X-로드는 민·관의 각 참여 주체가 개인정보를 분산 저장하되 필요한 정보를 당사자 동의를 통해 공유하는 시스템으로, 개인정보 보호와 고도 기술 전수가 필수인 원격의료에 맞춤형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원격의료의 상황은 갈 길이 멀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3일 “의료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대면진료가 불가능하거나 매우 곤란한 경우에 국한해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 도입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최근 청와대와 정부, 여당 또한 실무자 논의를 거쳐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일부 허용토록 의견을 모았지만, 정책의 방향성 논란이 따르고 있다. 정작 원격진료가 필요한 일반 환자는 검토 대상에 있지 않은 탓이다. 현행 의료법(34조)은 환자 안전에 대한 논란으로 ‘의사-의사간’ 원격의료만 허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규제 위주의 제도뿐만 아니라 방향성도 잘못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문제를 두고 현재 치열하게 논쟁 중이다. 보건의료단체들에서는 ‘의료 영리화’로 갈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공공병원 비율이 6%에도 미치지 못하는 한국의 현실에 비춰볼 때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허용은 민간병원의 배만 불리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이에 반해 이 같은 반발은 국제 흐름에 배치될 뿐 아니라, 원격의료의 원래 의미를 잘못 해석한 데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빗발친다. 원격의료는 급속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은 의료업계의 프로세스 혁신과 정밀의료의 발달에 기반해 효율 제고, 비용 감소, 생활 편의성 향상 등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게 반론의 핵심이다. 원격의료와 같은 뛰어난 정보통신기술(ICT)이 접목되게 되면, 산업 자체의 효율성을 높여 저비용 구조로도 현재와 같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각지대에 있는 빈곤층을 대상으로 공공성도 확대될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원격의료 허용 여부를 둘러싸고 우리 보건·의료업계와 정책당국, 정치권의 대응은 아쉽기만 하다. ‘의료 영리화’라는 화두를 중심으로 한 정치 쟁점으로 번지면서 의료업계는 관련 상황이 부정적으로 급변할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지만, 실제는 이와는 반대 모습을 띤다는 게 중론이다. 예를 들어 현행 요양기관의 등급제도와 보험수가 체계 아래 원격의료가 허용되면 1차 의료기관인 동네의원의 활성화를 촉진할 수 있고, 관련 법안 개정 시 1차 의료기관의 역할을 강화할 수 있는 강제적 수단도 가능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또한 세계적인 IT 강국인 한국은 수준 높은 데이터 교환과 보안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원격의료의 확대는 환자 데이터의 자유로운 이동을 통해 경험과 지식의학이 아닌 정밀의학으로 의료 수준을 높이는 계기도 될 수 있다.
원격의료로 환자를 진료하는 미국 의사의 모습. |
현재 전 세계 수많은 IT 기업들이 세계시장을 이끌 차세대 주요 산업으로 웨어러블(입는) 헬스 기기와 바이오 산업을 꼽고, 이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한국은 규제와 잘못된 정책방향으로 우수한 의료 및 ICT 기술을 가지고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유엔 주도로 193개 회원국 전체가 2030년까지 해마다 5조달러(한화 약 5610조원)를 투입하는 SDGs(지속가능개발목표)의 핵심 목표 중 하나도 ‘정보기술을 통한 보건과 건강한 웰빙의 확대’다. 자칫 이 같은 국제사회 주요 아젠다와 산업시장 둘 다 놓치게 되지 않을까 걱정되는 시점이다.
김정훈 UN지원SDGs협회 사무대표 unsdgs@gmail.com
*UN지원SDGs협회는 유엔 지속가능개발목표 지원 기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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