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회 자리에는 꼭 소주나 와인이 올라야 할까. 올해는 개성과 역사, 문화가 살아 있는 다양한 전통주의 세계를 접해보자. 크게 막걸리, 약주, 증류식 소주, 한국와인으로 나뉘는 전통주 중에서 모임의 분위기에 맞는 다양한 술을 찾을 수 있다. |
전통주 하면 흔히 ‘서민적, 탁배기, 엄숙, 고리타분’ 식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라 소구하기엔 한계가 있다. 그러나 명 부관장은 “전통주의 특징은 전통이 아니라 다양성에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전통주는 집에서 빚은 술로, 정해진 틀이 없다”며 “산업화 과정에서 맥주·소주의 레시피가 표준화된 반면 전통주에는 창의성과 크래프트(장인) 정신이 살아 있다”고 예찬했다. 최근에는 전통주 업계에서도 활발한 디자인·재료 실험을 통해 젊고 세련된 술들을 내놓고 있다.
전통주는 크게 막걸리, 약주, 전통 소주(증류주), 한국와인 네 종류로 나뉜다. 명 부관장은 “막걸리는 2주 만에 나오는 술로 요리로 치면 샐러드”라며 “막걸리 윗부분만 100일간 숙성하면 약주가 된다”고 설명했다. 전통 소주는 발효주를 증류한 술이다. 한국와인은 무형문화재와 식품명인이 빚거나 지역농산물로 개성을 살린 특산주라야 전통주로 분류된다. 발효 재료는 포도, 오미자, 사과, 복분자 등 다양하다.
접근성이 다소 떨어지는 건 전통주의 단점이다. 인터넷 주문이나 요즘 인기인 한식 주점을 통하면 좀더 쉽게 구할 수 있다.
술아 핸드메이드 막걸리 |
시중에 나온 전통주 브랜드는 약 2000개에 달한다. 막걸리만 해도 약 1000개, 한국와인은 400∼500개 정도다. 이 가운데 몇 가지를 명 부관장에게서 추천받았다. 기준은 태어난 지역의 풍토를 반영하고 이야기가 담겼으면서 감미료를 넣지 않고 쌀과 누룩으로 빚은 술이다. 가격대는 5000∼3만원 선이다.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술로는 ‘이화주’와 ‘감홍로’가 있다. 이화주는 요거트 같은 식감이다. 물을 넣지 않고 도너츠처럼 생긴 구멍떡을 끓는 물에 삶아 빚는다. 술이지만 딸기나 비스킷을 찍어 먹을 수 있다.
이화주 |
문화적 향취가 담긴 소주를 즐기고 싶다면 문배술이나 이강주, 안동소주가 좋다. 문배술은 지난 4월 남북정상회담 만찬에 올랐다. 이강주는 배와 생강, 계피가 들어간 증류식 소주로 감기 예방용으로 쓰였다. 명 부관장은 “증류식 소주를 탄산·얼음에 희석해 즐겨보라”며 “온더록스로 마시면 얼음에 희석돼 알코올 맛이 줄어들고 향은 잔 안에 감돌아 향을 감상하기 좋다”고 설명했다.
오랜만에 중년의 옛 친구들이 모였다면 우리 밀 막걸리로 추억을 곱씹을 수 있다. 충북 옥천 지역에서 나오는 ‘향수’는 우리 밀로 빚는 술로 시인 정지용의 고향에서 생산됐음을 기려 이런 이름을 붙였다. 명 부관장은 “1965년 양곡관리법 시행에 따라 수입밀로 막걸리를 빚어야 했는데, 이 규제가 1990년대 완전히 풀리면서 대부분 쌀 막걸리로 바뀌었다”며 “밀 막걸리를 맛봤던 세대라면 오랜만에 향수에 젖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초록 페트병 막걸리에 질린 이에게는 ‘술아 핸드메이드 막걸리’를 추천한다. 미니멀한 병 모양이 한눈에 봐도 예쁘다. 명 부관장은 “색소나 아스파탐을 넣지 않고 물·누룩으로 빚었으면서, 젊은 세대 취향에 맞게 디자인이 뛰어나다”고 평했다.
칵테일을 만들기 좋은 증류주로는 문경 사과로 만든 ‘문경바람’이 있다. ‘풍정사계’는 은근한 단맛과 가벼운 산미를 지녀 와인 대신 부담 없이 즐길 만한 약주다. 백설기로 빚은 술로 지난해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 때 만찬 식탁 한 곳을 차지했다.
◆막걸리는 유통기한 고려… 생약주를 찾아야
이 외에도 다른 전통주를 맛보고 싶을 때는 몇 가지 원칙을 지키면 실패 확률이 적어진다. 명 부관장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제품들은 지역 농산물 사용 등 나름의 기준을 통과했다”며 “한식주점에서도 지역의 가치를 담고 좋은 농산물을 쓴 술들을 만날 확률이 높다”고 귀띔했다.
막걸리의 경우 신선한 쌀로 만들었는지를 확인하면 된다. 유통기한도 찾아보자. 막 출하한 막걸리는 신맛이 덜하고, 유통기한이 임박한 술은 신맛이 도드라질 수 있다. 약주는 멸균 처리를 하지 않은 생약주를 찾으면 된다.
전통 소주는 희석식이 아닌 증류식을 골라야 한다. 명 부관장은 “희석식 소주는 잉여농산물로 만들어 원료가 그때그때 다르지만 증류식은 숙성 기간이 1년이 넘는 경우가 많고 농산물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와인은 요즘 발효 기술을 접목해 원료의 풍미를 살리면서 천편일률적 단맛이 아닌 각각의 특성을 살려 만들고 있다”며 “소규모 양조장에서 지역 농산물이나 직접 기른 과일로 빚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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