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협’이란 이름의 단체가 이달 9∼10일쯤 전국 대학교 100여곳에 게시한 ‘문재인 왕씨리즈 대자보’. 풍자 성격이 짙다. 페이스북 캡처 |
지난달 2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서울 방문 이화여대 환영위원회’가 학내에 붙인 대자보와 이에 대한 반박 대자보. 페이스북 캡처 |
19일 대학가에 따르면 올해 들어 학내 곳곳에서 주요 정치·사회 이슈들에 관한 대자보가 꾸준히 등장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올해 초부터 불이 붙은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 관련 자보들이다. 고려대와 명지대, 이화여대, 동덕여대, 성신여대 등 전국 각지의 대학에서 교수나 학생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는 폭로가 잇따랐다. 페미니즘이나 총여학생회 존폐를 두고 찬성·반대 진영이 각각 자보를 붙이는 경우도 많았다.
얼마 전에는 이른바 ‘사법농단’을 겨냥한 비판 자보가 몇몇 대학에 동시다발적으로 게시되기도 했다. 춘천교대의 한 재학생은 실명으로 쓴 자보를 통해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교사가 되고 싶어 ‘사법적폐’ 판사들의 탄핵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경기대와 원광대, 이화여대, 홍익대 등에도 비슷한 내용의 자보가 등장했다. 이 밖에도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나 소득주도성장 등을 비판하는 자보가 나붙은 대학도 일부 있었다.
대학가의 자보 열풍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 내용만큼이나 다양하다. 서울 소재 한 4년제 대학에 다니는 신모(20·여)씨는 “대학생이라고해서 정치·사회 문제에 아주 관심이 없는 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현상 같다”고 평가했다. 복학생 이모(25)씨는 “학교에서 문재인 왕씨리즈 자보를 봤는데, 내용도 재밌고 공감이 가는 점이 많았다”면서도 “자보 게시자와 생각이 다른 학우들에겐 그 내용이 조금 불쾌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중백 경희대 교수(사회학)는 “SNS 등 온라인 공간에서의 의사 표현은 확산성은 있지만 그만큼 쉽게 잊혀지는 측면도 있다”며 “대학생들이 이런 점에서 한계를 느끼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기 위해 자보를 택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 같다”고 봤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는 “대자보는 사회 개혁이나 진보적인 목소리의 상징으로 인식돼 왔는데, 이런 인식이 대학가에 아직 남아있는 점도 한 원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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