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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별세… 생존자 23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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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1-28 23:50:43 수정 : 2019-01-28 23:4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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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로서 인권운동과 기부에 앞장서 온 김복동 할머니가 28일 별세했다. 향년 93세.

정의기억연대는 이날 “김복동 할머니가 이날 오후 10시 41분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별세했다”면서 “장례식은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시민장'으로 하고 발인은 2월 1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복동 할머니는 지난 2017년 대장암 판정을 받고 여러 차례 수술까지 받았지만 암이 전이되면서 쇠약해진 상태였다.

같은 날 위안부 피해자 이모 할머니도 향년 94세로 별세했다. 이로 인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 중 생존자는 23명으로 줄었다.
지난해 12월 김복동 할머니(왼쪽)가 공익사단법인 정 김재홍 이사장(서울디지털대학교 총장)으로부터 제1회 ‘바른 의인상’ 수상 소식을 전해듣고 있다. 법무법인 바른 제공
김복동 할머니는 국제사회에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공개적으로 처음 고발한 피해 당사자다. 딸만 여섯인 집에 넷째로 태어난 김 할머니는 만 14살에 위안소로 끌려갔다. 1940년 “군복 만드는 공장으로 가야 한다”, “딸을 내놓지 않으면 동네에서 살지 못하게 하겠다”는 말에 떠밀려 집을 떠났다. 이후 중국 광동, 홍콩,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와 자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지에서 극심한 고초를 겪었다.

1947년 귀국한 김 할머니는 침묵의 세월을 견뎌야 했다. 피해 사실을 처음 고백한 건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신고전화가 개통된 이듬해인 1992년이었다. 이어 1993년 유엔인권위원회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처음으로 파견나가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이후로도 미국과 일본, 유럽 등에서 증언과 여성‧시민단체와의 만남을 이어갔다.

김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큰 아픔을 안고 있으면서도 후학을 돕는 데도 앞장서왔다. 거의 전 재산을 후진교육을 위해 기부했고, 바른 역사관을 전파시켰다. 이런 공로로 지난해 12월 공익사단법인 정으로부터 제1회 ‘바른 의인상’을 받았다.

김 할머니는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사재 5000만원을 재일조선학교에 장학금으로 기부했다. 김 할머니는 당시 “내 전 재산을 탈탈 털어 후원할테니 우리 조선학교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이 나라가 통일되고 평화의 길이 탁 열릴 때까지 훌륭한 인재로 성장하기를 바란다”고 격려했다.

김 할머니는 또 2017년 태풍으로 피해 입은 오사카 조선학교를 방문하고 조속히 복구해 달라며 1000만원을 기부했다. 2014년엔 씨앗기금 5000만원을 내놓아 장학재단 ‘김복동의 희망’을 설립했다.

그는 또 2012년 ‘세계 여성의 날’(3월8일)을 맞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에서 함께 기거하는 길원옥 할머니와 함께 ‘나비기금’을 발족시켰다. 김 할머니는 “죽기 전에 일본 아베 총리의 진심 어린 사죄 사과를 받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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