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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쓰레기 대란'은 도심 아닌 '이곳'에서 벌어졌다 [우리의 환경은 평등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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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2-07 09:00:00 수정 : 2019-02-07 10:2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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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기물 느는데 재활용 시장 ‘동맥경화’… 곳곳에 쓰레기산/‘방치 폐기물’ 급증 이유는 / 전국 물량 82% 민간업체서 처리 / 깨끗한 폐플라스틱 선별비용 비싸 / 재활용품 판매수입의 4배 더 들어 / MB·朴정부 때 고형연료 제조 인기 / SRF 발전시설 7년 새 4배나 급증 / 文정부 “미세먼지 주범”… 제동 걸어 / 궁지몰린 업체, 브로커에 긴급 처분 / 야산 등 인적 뜸한 곳에 몰래 버려 / “정부가 앞장서 처리 단지 조성해야” 쓰레기가 감시의 빈틈을 파고드는 현상은 국가 간에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봄 수도권 공동주택에 ‘쓰레기 대란’이 벌어졌을 때만 해도 폐비닐 처리 비용을 낮추고 일회용품을 좀 줄이면 되는 듯했다.

그런데 진짜 대란은 서울 지역 아파트가 아닌 농촌 창고, 인적 뜸한 야산, 수도권 공장부지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경북 의성, 경기도 화성, 인천 송도 등 전국 곳곳에서 발견된 쓰레기 산은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년 동안 쌓여왔지만, 최근 들어서야 ‘사회문제’로 다뤄지기 시작했다. 쓰레기가 온 나라를 들썩이게 만들 수도 있다는 걸 경험하고 난 뒤에야 눈에 들어온 쓰레기 산은 우리나라 폐기물 문제가 한번 앓고 지나가는 감기가 아니라 말기에 이른 악성종양일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지난달 22일 한국자원순환에너지공제조합 관계자와 찾은 인천 부평구에도 4년째 쓰레기에 신음하고 있는 곳이 있다.

인천 부평구 가재울로에 방치된 폐기물. 커다란 건설폐기물 주변으로 ‘미니 쓰레기산’이 형성됐다.
◆무단투기 현장의 ‘깨진 유리창 법칙’

중소형 공장이 밀집한 부평구 가재울로. 방치된 집하장에는 2015년 폐업한 ‘새천년 환경’의 간판이 아직도 달려있었다.

4m 높이의 철제 패널이 폐기물을 가리고 있었지만, 쓰레기 무게를 못 이겨 벌어진 패널 틈새만 봐도 그 양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원래 건설폐기물을 모아뒀다가 재활용할 것과 매립·소각할 것을 분리하는 곳이었지만, 2013년 문을 연 업체가 2년 만에 망하면서 처분 안 된 쓰레기만 산더미처럼 쌓였다.

쓰레기 주변을 살펴보는 기자 일행이 구청 직원처럼 보였는지, 근처에 앉아있던 한 주민이 볼멘소리를 했다.

“거 둘러보지만 말고, 여기 폐쇄회로(CC)TV 좀 달아주고 그래요. 아무리 쓰레기 버리지 말라고 그래도 밤에 와서 버리는 걸 누가 말려. 여기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에요. 이 건물 돌아가면 사방에 쓰레기가 널려있다니까.”

그의 말을 듣고 집하장 주변을 둘러보니 쓰레기 더미가 쌓인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비닐, 폐목, 스티로폼, 파이프, 컵라면·반찬 용기…. 전문 수거업자가 작정하고 쏟아부은 듯한 쓰레기와 주변 공장 노동자들이 버린 쓰레기가 뒤섞여있었다.

깨진 유리창을 놔두면 그 주변은 무법지대가 된다는 ‘깨진 유리창의 법칙’을 증명하듯 집하장 쓰레기 산 주변에는 ‘쓰레기 언덕’이 생겨나는 중이었다.

부평구청은 문제를 알고 있지만 사유지여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구청 관계자는 “운영자는 폐기물 방치로 고발돼 2017년 구속된 상태지만 폐기물 자체는 사유지에 있기 때문에 손 쓸 방법이 없다”며 “업체도 문을 닫아 토지 소유주들이 폐기물을 치워야 하지만, 여러 명이 지분 형태로 부지를 나눠갖고 있다 보니 나서서 처리하는 이가 없다. 재개발이나 사업계획이 잡히기 전까지는 계속 이 상태를 이어갈 것 같다”고 했다.

◆이상만 좇다 막다른 길에 몰린 폐기물 정책

‘민간 영역이라 어쩔 수 없다’는 대답은 왜 폐기물 방치가 전국적인 현상이 됐는지를 단적으로 알려준다.

폐기물은 크게 사업장이나 가정의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생활계 폐기물’과 공장 가동처럼 산업활동으로 발생하는 ‘사업장배출시설계 폐기물’ 그리고 ‘건설폐기물’로 나뉜다.

이 가운데 지방자치단체에 처리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상 생활계 폐기물뿐인데, 여기서도 공동주택에서 분리수거로 내놓는 플라스틱, 비닐, 종이 등의 재활용품은 민간 업체 몫이다.

2017년 전체 폐기물 가운데 9.6%는 지자체, 81.7%는 민간 업체가 처리했다.

민간 영역이 제대로 굴러가려면 폐기물로 돈을 벌고, 잔재물은 제때 빠져나가야 한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몇년 전부터 이런 시장구조가 동맥경화에 걸렸다고 지적한다. 늘어나는 폐기물 양에 비해 재활용 시장의 성장세는 더디고, 잔재물의 퇴로는 점점 좁아졌다는 것이다.

폐플라스틱을 가장 친환경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은 물질재활용이다. 물질재활용은 폐플라스틱으로 또 다른 플라스틱 제품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지난해 통계청 통계개발원이 발간한 ‘폐플라스틱의 발생과 재활용 현황’을 보면, 깨끗한 폐플라스틱을 얻기 위한 수거선별 비용이 물질재활용 제품 판매 수입을 4배를 웃돈다. 아직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다.

폐플라스틱을 제품으로 부활시키기 어려우면 플라스틱을 태워 에너지로 회수할 수도 있다. 고형연료(SRF)로 만들어 발전소나 제지·시멘트 회사에서 연료로 떼는 방법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SRF는 신재생에너지로 여러 혜택을 받았다. SRF 제조업체는 원료(폐비닐, 폐플라스틱 등)를 들여올 때 폐기물 처리 명목으로 돈을 받고, SRF를 만들어 발전소에 팔 때도 돈을 받았다. 공장만 차리면 수입을 이중으로 챙길 수 있는 구조다. 2008년 51개에 불과했던 SRF 제조업체는 2014년 190개, 2015년 219개, 2017년엔 233개까지 늘어났다.

그런데 요 몇년 새 미세먼지가 최대 환경현안으로 떠오르면서 문재인정부는 SRF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수도권과 대도시, 소규모 시설에서는 SRF를 쓸 수 없도록 했다. 대구, 원주, 여주, 나주 등에 들어설 예정이었던 SRF 발전시설도 ‘미세먼지 주범’ 이미지에 발목 잡혀 진전이 없다.

장밋빛 미래를 예상하고 우후죽순 들어섰던 SRF 제조업체는 SRF를 팔 수 없는 상황에 처하자 일단 폐기물은 받되 연료는 만들지 않고 공장에 쌓아두기 시작했다.

궁지에 몰린 업체에 ‘시장 가격보다 2만∼3만원 싸게 쓰레기를 처리하겠다’며 브로커가 접근하기도 했다. 브로커에게 넘어간 쓰레기는 야산, 창고 같은 눈에 안 띄는 곳에 버려졌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이런 식으로 폐기물은 겉잡을 수 없이 늘어났고, 그렇게 터져나온 게 의성 쓰레기 산 같은 방치폐기물 문제”라며 “SRF는 대표적인 정책 실패 사례”라고 꼬집었다.

SRF와 마찬가지로 혐오시설로 낙인찍힌 소각시설도 2005년 2871개소에서 2010년 672곳으로, 2017년에는 395곳으로 급감했다.

폐기물은 쌓여가는데 마땅한 퇴로는 없고 설상가상 중국이 폐기물 수입을 중단하면서 SRF 사용시설과 제지회사, 소각장은 폐기물 업계의 ‘갑’이 됐다. 1∼2년 전만 해도 t당 12만∼13만원 하던 소각비용은 최근 25만∼30만원으로 치솟았다.

장기석 한국자원순환에너지공제조합 국장은 “요즘 소각장은 소각물량을 돌려보내기 바쁘다”며 “소각장이 갑질한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모든 경제원리는 수요·공급 아니겠느냐”고 했다.

◆통계상으론 완벽한 이상국가?

지난해 봄 발생한 폐기물 대란도 망가진 SRF 시장과 급상승한 소각비용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대란 이후 발표된 정부 대책을 보면 포장재 규제, 플라스틱 커피컵 매장 사용 금지처럼 생산·소비 단계의 내용이 대부분이고, 한계에 이른 재활용·소각 용량 문제를 어떻게 할지는 중장기 과제로 미뤘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불법·방치 폐기물 문제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자 그제야 전수조사 계획을 밝혔다. 정부는 정말 우리나라 폐기물의 80% 이상을 처리하는 민간 업체를 시장에만 맡겨도 된다고 생각했던 걸까. 환경부가 발표하는 폐기물 통계를 보면 우리는 쓰레기 수출입, 방치폐기물 문제가 없는 완벽한 나라에 살고 있다.

폐기물 발생량은 처리량과 정확히 일치하며, 사업장배출 플라스틱 재활용률은 2005년 28%에서 2010년 61%, 2017년 66%로 껑충껑충 뛰었다. 통계의 허점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폐기물 발생량은 추정하기 어려워 처리량을 발생량으로 가정하고 집계한다”며 “실제로 플라스틱 폐기물이 늘었는지 줄었는지는 모른다”고 전했다.

재활용으로 집계되는 물량 또한 재활용 업체로 유입된 양일 뿐 실제 어떤 형태로 얼마나 재활용됐는지는 알 수 없다. 폐비닐이 SRF 제조업체에 들어가 연료로 만들어지는지 사업장에 쌓이는지 알 방법이 없는 것이다.

정부는 폐기물의 수집, 운반, 최종 처리까지 전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리하겠다며 2002년부터 ‘올바로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전국 폐기물 발생·처리 현황 자료는 1∼2년이 흐른 뒤 발간된다. 폐기물 대란을 겪은 지난해 전국 자료는 올 연말에야 볼 수 있다. 환경부는 각 지자체의 폐기물 전수조사 결과를 취합해 이달 말 불법·방치 폐기물 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민간에 맡겨 온 재활용, 사업장배출 폐기물 문제에 정부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배재근 서울과기대 교수(환경공학)는 “정부는 그동안 ‘사업장 폐기물은 너희가 알아서 해’라는 입장이었지만, 폐기물 대란부터 쓰레기 산까지 모두 민간 처리 부문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며 “정부가 나서 처리 단지를 조성하든지 흙이나 돌 같은 불연물까지 소각량으로 계산해 가뜩이나 부족한 소각 물량을 잡아먹는 현행 제도를 고치든지 적극적으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천=글·사진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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