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국방부에 따르면 오는 4월이면 전국 대부분의 부대에서 병사들이 일과 시간 이후와 주말에 휴대전화를 쓸 수 있다. 3개월간의 시범 운영을 거친 뒤 이르면 7월부터 일과 후 휴대전화 사용이 전면 허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주말 위주로 실시했던 병사들의 외출도 지난 1일부터 평일 일과 후에도 월 2회 허용되고 있다.
육군 청성부대 소속 장병들이 지난달 31일 부대 생활관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하며 일과 후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육군 제공 |
육군 청성부대 소속 병사가 지난달 31일 부대 내 생활관에서 마스크팩을 얼굴에 씌운 채 휴대전화를 사용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육군 제공 |
군대 휴가 복귀를 위해 위병소를 통과할 때는 항상 서늘한 뒷바람이 불었다. 부대의 도움을 받아 차를 타고 위병소를 통과하니 군복무 시절 받았던 느낌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전역한 지 15년이 지났지만 야릇한 긴장감은 남아 있는 모양이다.
위병소를 통과하자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너른 공간에 깔끔한 4층 건물 한 동이 나왔다. 멀리 사격장이 보이지 않았다면 학교로 착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대대본부와 중대별 단층 막사, 여러 동의 반원통형 창고가 이곳저곳 설치돼 있던 기자의 기억 속 부대 풍경은 어느새 사라졌다.
설 연휴를 앞둔 지난달 31일 강원 철원군 소재 육군 청성부대를 찾았다. 이 부대는 지난달 21일부터 장병들의 일과 후 휴대전화 사용을 시범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휴대전화 사용 열흘째를 맞은 장병들의 병영생활을 들여다봤다.
◆침상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게임, SNS, 인터넷 강의도…
일과 후 세탁기에 돌린 빨래를 건조기에 넣고 있던 최연종 일병의 휴대전화가 부르르 떨린다.(※장병들의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각색했습니다.) 최 일병의 표정이 밝아지는 걸 보니 여자친구의 전화다. 한참 동안 이어진 통화 후 최 일병은 다시 휴대전화로 여자친구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내용을 보려 하자 슬쩍 화면을 돌린다. 이 부대는 1층에 있는 지휘통제실 등 군 업무 공간 외에는 모든 곳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장병들이 개인 휴대전화를 쓰면서 인적이 뜸해진 곳은 휴게실 한편에 있는 공중전화 박스다. 열흘 전만 하더라도 사람이 몰릴 때면 줄을 서야 했던 곳이 이날은 텅텅 비어 있었다.
“야야 왼쪽, 왼쪽에 (적이) 있어.” 왁자지껄한 생활관으로 들어가니 이준형 병장이 다른 장병 2명과 휴대전화로 함께 게임을 하고 있다. 여러 명이 함께 정해진 전장에서 전략과 기술을 활용해 최후의 생존자를 가리는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이라는 게임이다.
친구가 새로 올린 인스타그램 사진에 댓글을 달고 있던 윤현식 일병은 “보안상의 이유로 휴대전화 카메라에 보안스티커가 부착돼 있다”며 휴대전화를 들어 보인다. 그는 “직접 내가 찍은 사진을 올릴 수는 없지만 SNS를 통해 친구들의 근황도 볼 수 있고, 메신저나 전화로 곧바로 연락할 수 있어 매우 만족한다”고 말했다.
‘학구파’ 혹은 ‘자기개발파’들은 주로 1층 도서관에 자리를 잡는다.
디자인을 전공한 김찬우 상병은 휴대전화로 패션 관련 동영상이나 잡지, 사진 등을 주로 찾아본다. 그는 “꾸준히 살펴봐야 트렌드를 따라갈 수 있어 전역 후 복학할 때도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전자공학을 전공한 강준영 상병은 휴대전화로 공학수학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다. 한 번씩 복습을 해놓지 않으면 까먹을 수 있어서라고 한다. 한재희·김종수·박대중 일병은 일본어와 토익 등의 교재와 함께 휴대전화로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어학 공부 삼매경이다. 김 일병은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전역 후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신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 1일부터는 장병들의 일과 후 평일 외출도 허용됐다. 장병들은 자기 계발·병원진료·면회 등의 목적으로 오후 5시30분부터 9시30분까지 4시간 동안 월 2회 이내에서 외출을 쓸 수 있다. 평일 외출 시행으로 주말에 몰렸던 외출 인원이 분산된다는 점, 주말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개인용무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병사들은 고무적인 분위기다.
부대 관계자는 “과거 군 생활이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사회와의 고립감과 단절감이었다”면서 “평일 외출이나 휴대전화를 통해 병사들이 확실히 밝아지고, 여러 정보를 접하면서 자기 계발에 대한 욕구도 커지리라 기대된다”고 말했다.
휴대전화 사용과 평일 외출 외에도 청성부대는 병영문화의 많은 부분이 달라져 있었다.
“준형아.” 박대중 일병이 이준형 병장을 부르는 호칭이다. 이 부대의 경우 ‘○○○ 병장님’과 같은 병사 계급 간 호칭, 경어도 없는 전원동기제를 최근까지 적용(현재는 6개월 동기제)했었다. 갓 자대배치를 받은 이등병도 제대가 얼마 남지 않은 병장과 동기가 되는 것이다. 과거 군 생활을 한 예비역으로서는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는 얘기다.
박 일병은 “처음 이 부대에 왔을 때는 말을 놓는 것이 어색했는데 먼저 왔던 친구들이 ‘그냥 해’라고 하고, 편하게 대해줘서 지금은 자연스러워졌다”고 말했다.
육군 청성부대 소속 장병들이 지난달 31일 PX에서 구매할 물건들을 살펴보고 있다. PX에 다양한 물품들이 진열돼있다. 육군제공 |
육군 청성부대 소속 장병들이 지난 1일 부대 내 풋살장에서 풋살 경기를 하고 있다. 육군제공 |
김찬우 상병은 “훈련 상황은 자칫 다칠 수도 있는 위험한 부분도 있기 때문에 선임병이 지시를 할 수 있고, 후임병은 지시에 따르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며 “자신보다 훈련 상황의 경험이 많은 ‘숙련도’를 서로 존중하고, 이에 대한 인식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안 될 것 같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훈련 상황이 되면 위험할 수도 있는 걸 감지하다 보니 따르게 된다”고 덧붙였다.
식단도 점차 개선되고 있다. 올해부터는 깐쇼새우, 계란프라이, 계란말이, 갑오징어 등이 새로 식단에 오른다. 야간 근무나 훈련 등으로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장병들에게는 스파게티와 샌드위치 등의 브런치도 제공된다. PX의 물품도 웬만한 부대 밖의 마트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1개 회사의 10개 제품만 제공됐던 라면은 지난해부터 4개 회사의 50개 제품으로 늘었다. 병사의 봉급도 올랐다. 지난해 기준 병장의 봉급은 40만원, 이등병도 30만원 정도다. 풍족하진 않지만 군대에서 쓰기엔 충분한 액수다. 이 부대 병사의 대부분은 매달 10만원 이상을 넣는 적금을 들었다.
박병철 대대장(중령)은 “휴대전화 사용 등에 대한 일부 우려의 시선이 있지만 병사들을 통제의 대상으로만 삼던 종전 관점에서 접근하면 요즘 세대 병사들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서 “자율성을 부여하면 책임도 그만큼 따라온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이해를 시키려고 하고, 병사들도 이러한 부분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철원=이정우 기자 woolee@segye.com
철원=이정우 기자 woo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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