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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거 많고 저렴, 벼룩시장만한 곳 없더라"…소일거리 찾아온 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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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2-16 13:00:00 수정 : 2019-02-14 20:3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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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세계] 중고시장 찾는 노인들 장사할 곳을 잃은 상인들이 모여 생긴 중고시장(일명 벼룩시장)이 20대부터 60대 이상 노년층이 모여 작은 행복을 찾는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저렴한 가격과 많은 볼거리에 고령자들이 많이 찾는 편이나 최근에는 유행을 중시하는 20대 젊은층도 눈에 띄게 늘었다.

벼룩시장은 지갑이 얇아도 쇼핑과 먹거리를 즐길 수 있고, 평일에도 열어 어르신들에게는 그 어떤 장소보다 자주 찾는 곳이 됐다. 
서울 동묘 앞에 약 600여 개의 좌판이 모여 시장을 이뤘다.

◆“운동 삼아 시장 한 바퀴…때론 기분 좋게 반주 한잔”

“딱히 갈 곳 없을 땐 벼룩시장에 온다”는 A씨(75)의 하루는 이른 아침 시작된다.

경기도 의정부시에 사는 A씨는 손주들의 유아원 등교를 돕고 간단히 아침을 챙긴 후 전철로 약 1시간쯤 걸리는 서울 동묘로 나온다.

연금 생활자인 그는 지난해 ‘실버택배’를 하며 용돈벌이를 했지만 지금은 건강상 이유로 그만뒀다. 시간적 여유가 생기자 평일이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또래 노인들이 모이는 탑골공원이나 시장을 들른다고. A씨는 “나이가 나이인 만큼 일 하는 데 체력적 한계를 느낀다”며 “따뜻한 날이면 시장을 찾는다”고 말했다.

A씨는 “노인들은 (지하철) 무임승차가 가능해 돈 없어도 시장 나들이가 가능하다”며 “나처럼 운동 삼아 시장 구경 오는 노인들이 많다”고 말했다. 평일인 지난 12일에도 동묘시장은 어르신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A씨가 시장을 즐겨 찾는 데는 무료한 시간을 달래는 재미도 있지만 저렴한 가격에 손주가 좋아하는 과자나 젤리 등을 많이 살 수 있어서다.

그는 “연금 생활하는 우리 같은 노인에겐 이보다 좋은 장소가 없는 거 같다”며 “손주 과자가 아니더라도 여기서 만난 이들과 반주(飯酒)를 곁들이다 보면 지루한 하루를 쉽게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어르신들이 시장을 찾는 이유…“볼 거 많고 저렴”

어르신들이 많은 시장 중 이곳을 손꼽는 이유는 저렴한 가격 때문이다.

시장을 돌아보면 단돈 1000원 하는 과자 등의 먹거리를 시작으로 옷과 제작 년도를 가늠하기 힘든 전자기기, 건강식품, 책, 음반 등 다양한 물건이 진열돼 있다. 이들 제품의 가격은 2000원∼1만원 안팎에 팔린다. 3000원에 끼니를 떼울 수 있는 중국 음식점과 최근 판매 중지 논란에 휩싸인 생태탕을 5000원에 파는 식당 등도 인기다. 시장에서 만난 B씨는 “비싼 서울 땅에서 돈 만원으로 먹고 물건도 살 수 있는 곳이 어디 흔하냐”며 “집에서 늦은 점심 챙겨 먹고 나오면 밥값도 안 들고, 다리 아플 때쯤 전철 타고 집에 가서 저녁 먹는다. 동네 마음 맞는 할머니들과 모여 함께 가기도 한다”고 했다.

◆20대 젊은 층도 온다고?

시장 초입부터 들려온 강렬한 트로트 멜로디와 다르게 이곳에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층도 많았다. 조금 과장하면 노인들과 20대 청년이 반반이었다.

시장 상인에 따르면 국내 한 예능프로그램에 소개된 후 유명 연예인들이 찾았다는 소문이 돌면서 젊은이들이 몰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난해 겨울 한국을 찾은 세계적인 디자이너 키코 코스타디노프가 ‘세계 최고의 거리’라고 호평한 것도 한몫했다.

젊은 세대의 발길이 부쩍 늘어난 시장은 과거 노년층만 찾아 ‘노인들의 홍대’라는 별명을 무색케 한다. 

이날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겸해서 왔다는 20대 남성 C씨는 “수고스럽지만 잘 고르면 저렴한 가격에 원하는 옷을 구매할 수 있다”며 웃었다.

◆“길거리흡연, 복제 CD 등 아쉬운 부분도“

시장은 젊은 층과 노인세대가 한곳에 모여 즐거움을 찾는 곳이 됐지만, 일부 아쉬운 모습도 보였다.

어르신들의 경우 거리를 걸으며 담배 피우거나, 외진 곳에 모여 술 마시는 모습이 보였다. 또 일부 상인은 복제 영화 CD를 좌판에 늘어놓고 팔았다. 가짜 상표 옷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보행 중 흡연하던 한 어르신은 “담배 연기를 사람 얼굴에 내뿜지 않으면 된 것 아니냐”며 “싫은 사람이 피해 가면 된다”고 말했다. 

동묘 벼룩시장은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상인들이 모여 상권이 형성됐다. 1983년 6월 장한평에 고미술품 집단 상가가 조성되면서 많은 점포가 그곳으로 옮겨가자 이 자리에 중고품 만물상들이 모여든 게 시초다.

현재 점포 수는 약 1000여 개로 추정된다.

다양한 연령대가 모인 시장은 누군가에겐 추억을 누군가에겐 실리라는 생활 속 작은 행복을 주고 있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만큼 불편은 감수할 부분이지만 작은 배려가 더해지면 더 나은 명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글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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