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두 정상과의 통화 내용을 공개한 후 배포한 문 대통령의 전화통화 사진은 지난 19일 하노이 담판을 앞두고 진행된 한·미 정상 간 통화 모습과 대조적이었다. 당시에는 환하게 웃는 얼굴이었다면, 이날은 다소 굳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통화에서 “가까운 시일 안에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만나 보다 심도 있는 협의를 계속해 나가자”고 한·미 정상회담 의지를 분명히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동의하면서 “외교 경로를 통해 협의해 나가자”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북·미가) 정상 차원에서 서로의 입장을 직접 확인하고 구체 사항을 협의한 만큼 후속 협의에서 좋은 성과를 기대한다”며 협상을 계속 이어갈 것을 당부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청와대 관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약 25분에 걸친 대화를 통해 제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에 따른 한·미 간 공조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제공 |
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도 다소 힘이 빠지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8개월 만에 다시 마주 앉기까지 고비마다 친서와 전화통화로 적극 중재에 나섰던 문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하노이에서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문 대통령도 북핵 문제를 위해 뛰고 있고 많은 도움을 줬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성과 없는 북·미 회담으로 문 대통령의 다음 외교 행보에도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당장 김 위원장의 답방 시기는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순연이 불가피해 보인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북·미 회담에서 성과를 거둔다면 3월 말 또는 4월 초에 김 위원장을 서울로 초청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오늘 북·미 정상의 판단으로 (김 위원장의) 답방 문제 등 이후 전개될 다양한 상황들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 한·미 정상회담 역시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번 회담 성과를 기초로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만나 정보를 공유하고 북한의 비핵화와 제재 완화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었다.
3·1절을 맞아 공개하기로 한 ‘신한반도 체제’ 구상도 탄력을 받기 어렵게 됐다. 신한반도 체제는 북한에 대한 제재가 풀릴 경우 예상되는 주변국들의 경제 개발 참여에 대비해 우리가 주도권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북·미 회담에서 경제 제재를 풀 단초를 마련하고, 향후 북한 경제 개방에 맞춰 새 구상을 공개할 예정이었다. 일정 부분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구상하고 있는 신한반도 체제는 내일 3·1절 기념사에 담길 예정인데, 그것을 실현해 나가기 위한 우리의 준비, 의지에 대해서는 변함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선을 그었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중재 역할에도 변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의 역할과 책임감이 더 깊어졌다고 생각한다“면서 “더 적극적으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은 북·미 두 정상도 여전히 바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문 대통령과 통화에서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대화해서 그 결과를 알려달라”고 말했다.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주문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문 대통령이 북한과 미국, 양쪽을 대표하는 협상가 ‘치프 네고시에이터(Chief Negotiator)’ 역할을 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김달중 기자 dal@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