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은 2015년 우리 정부와 체결한 ‘한일합의’로 위안부 문제는 최종 해결됐다고 지난달 22일 거듭 주장했으며, 강경화 외교부장관이 같은달 2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인권이사회(UNHRC) 총회에서 위안부 문제를 언급하자 “한국은 정권이 바뀌어도 ‘한일합의’를 책임감 있게 유지해야 한다”고 일본 정부가 항의했다.
신축중인 서울 종로구 수송동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한 이날도 많은 이들이 소녀상을 찾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아픔에 공감하면서, 일본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촉구했다. |
경기도 일산에서 온 이모(10)양은 역사수업을 듣고서 엄마와 함께 소녀상을 찾았다고 했다. 이 양은 “소녀상을 보고 어떤 느낌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소녀상의 얼굴이) 불쌍해 보였다”며 “전에 역사책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배웠다”고 쑥스럽게 답했다. 소녀상 옆 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던 이 양의 엄마는 “소녀상에 관해 따로 이야기해준 적은 없었다”고 딸을 대견하게 쳐다봤다.
엄마와 함께 `평화의 소녀상`을 찾은 이모(10)양. 가족 제공 |
독일에 사는 조모(45)씨는 현지인 남편과 우리나라에 왔다가 소녀상을 방문했다고 밝혔다. 그는 소녀상 근처에 놓인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동참운동’에 서명한 뒤, 소녀상 배지도 하나 샀다.
조씨는 “위안부 할머니 문제는 기본적으로 인권에 대한 사안”이라며 “(한일합의를 들먹이는) 일본 정부는 너무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더 늦기 전에 일본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우리 정부에 공식으로 사과해야 한다”며 “과거에 벌어졌던 일들을 인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역사를 전공하는 노모(22)씨는 3·1운동 100주년 행사 참석차 친구와 광화문광장을 찾았다가 소녀상에 들렀다.
박근혜 정권 퇴진시위 때도 광화문광장에 왔다면서 노씨는 “대통령이 바뀌면 정부 차원에서 진전된 움직임이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께서 세상을 떠나시는 중에도 일본 정부는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등 문제 해결 기미가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우리 같은 시민들이 목소리를 높여봤자 일본 정부는 듣는 척도 하지 않을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소녀상을 스마트폰에 담던 지긋한 노신사는 자신을 평안북도 출신 1932년생이라고 소개한 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 교사들의 괄시를 받았다고 입을 뗐다.
박모(87) 할아버지는 “신사참배를 강요한 일본인들 때문에 우리는 도쿄가 있는 쪽으로 절까지 했다”며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나라가 없었던 약소민족의 설움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박 할아버지의 소녀상 방문은 두 번째다. 이전에 소녀상 사진을 담았던 휴대전화가 고장 나는 바람에 사진이 없어졌다면서, 할아버지는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반드시 석고대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제강점기라는 슬픈 시대를 살았기에 박 할아버지의 안타까움은 더 깊을 수밖에 없다. 할아버지는 “우리 마을에서도 밤사이 누군가 우는 소리가 들려 나중에 알아봤더니 ‘어느 집 딸내미가 일본군 손에 끌려갔다’는 말을 부모님께 들은 적 있다”고 했다.
소녀상 찾는 이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일가족 셋은 소녀상 사진을 담은 뒤, 서명과 배지 구매로 아픔을 공감했다. 한복 차림의 두 남성은 소녀상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소녀상을 지나던 여성은 살며시 쪼그려 앉아 동상의 털양말을 조심스레 만졌으며, 중년 부부는 카메라에 소녀상을 담고는 묵념하듯 고개 숙인 뒤 자리를 떴다.
글·사진=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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