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3일 말레이시아 국빈 방문에서 현지어가 아닌 인도네시아 말로 인사를 건넨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말레이시아 행정수도 푸트라자야에서 마하티르 모하맛 총리와 회담한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말레이시아 국민에게 ‘슬라맛 소르’라고 인사했다. 청와대는 이 말이 말레이시아의 오후 인사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표현은 인도네시아 말이다. 말레이시아의 오후 인사는 ‘슬라맛 프탕’이다. 더구나 ‘슬라맛 소르’는 인도네시아어 ‘슬라맛 소레’의 영어식 발음이다. 문 대통령은 또 12일 낮 행사에서 밤 인사를 뜻하는 ‘슬라맛 말람’이라고 말했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가 영유권 분쟁과 불법 체류자 문제 등으로 갈등이 작지 않은 관계임을 고려하면 이번 결례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논란이 확산되자 청와대는 어제 “실무 과정에서 혼선이 발생했다”며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해명했다.
문제는 이 같은 외교 결례를 일회성 실수로 넘기기 어렵다는 데 있다. 유사한 실수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외교 시스템이 작동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청와대는 14일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문 대통령의 캄보디아 방문 사실을 전하며 캄보디아를 소개하는 코너에 대만의 종합문화시설인 국가양청원 사진을 올려놓았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청와대는 해당 사진을 삭제하고 사과했다. 지난해 11월 문 대통령의 체코 방문 때는 체코 국명을 ‘체코슬로바키아’로 잘못 게시한 바 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19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나눠지기 이전의 이름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아셈 정상회의 때는 시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 정상 기념사진 촬영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을 단순 해프닝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한국 외교의 역량이 어떤 수준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들로 받아들여야 한다. 청와대와 외교부, 현지 공관에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들이 포진하고 이들 간에 긴밀한 공조가 이뤄진다면 이런 실수가 일어날 수 없다. 전문성을 갖춘 외교관 기용을 기피하고 ‘낙하산 공관장’들을 무더기로 임명하니 외교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정상외교 의전은 국격이 걸린 일이다. 사소한 결례라도 회복 불가능한 국가적 손실이나 위험을 낳는 외교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외교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손볼 기회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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