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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3만불’에도 불행한 한국…당신은 행복하십니까? [행복사회로 가는 길]

, 행복사회로 가는 길

입력 : 2019-03-27 06:00:00 수정 : 2019-03-27 07: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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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1위’ 국가들의 비결은 〈끝〉/ ‘워라밸’의 지상 천국 핀란드·‘웰빙’이 국가 목표인 부탄 / 국제사회 놀라게 한 빈국 부탄 / 개헌 통해 ‘국민총행복지수’ 만들어 / 2010년 英 국민행복도 조사서 깜짝 1위 / 이듬해 유엔 ‘행복결의안’ 채택 주도해 / ‘富, 웰빙으로 전환 성공’ 핀란드 / 국민 80% “경찰·교육·의료시스템 신뢰” / 육아휴가 관대… “워킹맘에 최상 국가” / 안전망 촘촘… 이민자 행복조사도 1위 / ‘소득 3만弗’에도 불행한 한국 / 저임금노동자比 높고 女경력단절 극심 / 국민 행복도 156개국 중 54위에 불과 / 인생선택자유도는 144위 ‘세계 최악’

“우리의 비밀은 자연이다. 다른 사람들이 치료하러 갈 때, 우리는 고무장화를 신고 숲 속으로 향한다.”

 

유엔이 최근 발표한 일곱 번째 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 2019)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힌 핀란드가 밝힌 ‘행복의 비결’이다. 특히 세계적 부러움을 받고 있는 핀란드가 ‘행복 1위 국가’ 기념으로 내놓은 무료 관광 이벤트에는 자긍심이 한껏 묻어난다. 슬로건이 ‘렌트 어 핀’(Rent a Finn: 핀란드를 빌려라). 우리가 어떻게 행복과 평온을 누리는지 직접 체험하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행복은 정책이다’ 부탄이 준 충격

 

가장 행복한 나라 ‘원조’는 부탄이다. 히말라야산맥 동부에 위치한 아시아 저개발국가 부탄은 2010년 국제사회를 깜짝 놀라게 했다. 영국의 민간 싱크탱크인 신경제재단이 각국 삶의 만족도, 기대수명, 환경오염 등을 기준으로 한 행복도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이다. 부탄의 1인당 국민소득(GNI)는 2000달러 수준이다.

 

국제사회는 부탄의 행복 비결에 이목을 집중했다. 부탄은 2008년 개헌을 통해 헌법에 국민 행복을 증진하는 활동을 모든 정책의 최우선 가치로 삼을 것을 명시했다. 국민총행복지수 GNH(Gross National Happiness)를 만들어 국가 발전을 측정하는 지수로 삼고 5년마다 조사를 벌였다. △사회가 공정하게 발전하고 있는가 △문화를 보존하고 증진하는가 △생태계를 보전하는가 △좋은 정치를 할 수 있는 조건을 충족했는가를 4대 기준으로 삼고 9대 영역, 33가지 지표로 구체화해 GNH를 산출했다.

 

행정은 높게 측정된 지표를 홍보하는 것이 아니라, 낮게 측정된 지표를 정책에 반영하는 데 집중됐다. 부탄 행복을 연구해온 박진도 충남대 명예교수는 저서에서 부탄 관리의 말을 소개한다. “우리는 행복한 사람엔 관심이 없다. 우리의 역할은 아직 행복하지 않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행복은 정책이다.’ 국제사회가 부탄에서 얻은 교훈이었다. 행복은 개인이 추구해야 할 사적인 영역이 아니라, 국가의 정책과 제도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이를 발견한 세계 저명 학자들은 무릎을 쳤다. 전문가들은 “GDP(국내총생산)야말로 인간이 만든 가장 쓸모없는 발명품”라고까지 했다. 국제사회는 “우리는 부(富)를 웰빙(삶의 질)으로 전환하는 데 실패했다”고 반성했다. 유엔은 2011년 행복결의안을 채택했다. 부탄이 주도한 행복결의안은 회원국들이 행복 증진 정책을 제도화하도록 독려했고, 공공정책을 통해 행복을 증진하기 위한 연구가 확산했다. 호주는 커뮤니티웰빙지수를, 영국은 국가웰빙지표를 잇달아 만들었다.

 

◆행복 대명사 핀란드… 이민자도 행복 1위

 

부탄이 국가 행복의 개념을 바꿨다면, 핀란드는 행복국가 건설을 위한 구체적인 사회 시스템을 제시했다. 행복결의안 통과로 시작된 유엔 연례 조사에서 핀란드를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의 굳건한 강세를 확인한 국제사회는 노르딕 모델로 관심을 옮겼다.

 

핀란드인들이 내놓는 행복 이유는 특별하지 않다. 핀란드 관광당국은 이번 이벤트에서 보듯 자연을 내세웠다. 핀란드인들은 ‘시수(Sisu)’라는 핀란드 단어를 언급하며 핀란드인의 긍정 마인드를 제시하기도 한다. 시수는 ‘인생에 어떤 일이 생겨도 지키는 끈기와 인내, 기개,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을 뜻한다. 그러나 비결은 날씨나 정신만이 아니다. 이코노미스트는 “기온이 정기적으로 영하 20도 안팎을 맴돌고, 일부 지역은 일년 중 상당 기간 햇빛을 거의 받지 못하는 나라에서 기뻐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헬싱키 대성당

이코노미스트는 “핀란드의 행복 비결은 얼마나 지루한지 모른다”라며 “행복은 당신만의 여름 별장과 감자밭을 갖는 것이다”라는 핀란드 속담을 소개한다. 이어 “무상 교육, 관대한 육아휴가, 건강한 일과 삶의 균형을 통해 사람들은 아무리 평범한 일이라도 그들의 즐거움을 추구할 시간과 수단을 갖는다”고 밝혔다. 이코노미스트는 또 “국민 80% 이상이 국가의 경찰·교육·의료 시스템을 신뢰한다. 누진적인 세금과 부의 재분배로 부자와 빈자의 생활방식은 극적으로 다르지 않다. 남녀도 마찬가지다. 핀란드는 세계에서 엄마가 되기 가장 좋은 나라이자 일하는 여성이 되기 가장 좋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덴마크 행복연구소의 마이크 바이킹 대표는 “핀란드의 1인당 국민소득은 다른 이웃 노르딕 국가들에 비해서도 낮고 미국에 비해서는 훨씬 낮다. 핀란드는 부를 웰빙으로 전환시키는 데 유능했던 것”이라고 영국 일간 가디언에 설명했다.

 

부를 웰빙으로 전환시킨 것은 결국 사회안전망이었다. 세계행복보고서는 지난해 특별한 조사 항목을 추가했는데, 바로 각 나라에 사는 이민자들의 행복이었다. 핀란드는 이 지표에서도 1위였다. 국민 행복도 1위 국가가 이민자 행복에서도 1위를 했다는 사실은 어느 공동체건 누군가를 불행하게 둔 채 홀로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촘촘한 사회안전망은 행복의 물적 토대임을 입증했다.

 

최근 세계경제포럼은 핀란드의 비결을 좀더 자세히 짚었다. “‘개인의 자유와 연결된’ 사회안전망”과 “‘이점을 주는’ 일과 삶의 좋은 균형”이라고 요약했다.

 

◆선택의 자유 없는 한국

 

개인의 자유와 연결된 사회안전망은 마침 한국이 행복하지 못한 가장 큰 요인과도 직결된다. 세계행복보고서에서 156개국 중 종합 54위에 랭크된 한국이 세부 항목 중 가장 취약하게 나타난 지표는 ‘인생선택자유도’(144위)였다. 이 항목은 ‘당신은 당신의 인생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선택하는 자유 정도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이다. 다음세대 정책실험실(LAB2050)은 최근 펴낸 보고서에서 “일반인들 불안의 상당 부분은 대한민국 사회 특유의 경직성에서 나온다”며 “태어난 가정의 상황과 성별에 따라 생의 많은 것들이 결정되고, 대학 입시를 통해 또 커다란 부분이 정해지며, 첫 취업과 결혼 시점을 지나고 나면 되돌릴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선택의 자유’가 거의 없는 채로, 정해진 경로를 따라 살아가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 보고서는 한국이 풍요 속에서도 삶의 질이 낮은 이유에 대해 가장 많은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 노동 관련 지표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은 저임금 노동자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미국 다음으로 높고, 여성의 임금이 남성 임금의 60%를 조금 넘는 수준이며, 근로시간은 멕시코를 제외하면 OECD 국가 중 가장 길다”고 설명한다. 특히 “장시간 근로와 스트레스로 한국인은 자신의 건강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가령 “출산휴직 제도를 선진국 수준으로 만들어나가고 있음에도 여성의 경력단절은 다른 나라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심각한 현상으로, 육아휴직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난맥상이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불행은 원치 않는 삶, 선택하지 않은 삶을 사는 데서 오며, 이처럼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몇 가지 제도로 해결할 수 없게 얽혀있다는 얘기다.

시험이 없는 자유학기제를 시행해도 자녀를 학원으로 보내고, 직장인 남성에게 육아휴직을 제공해도 대학원으로 향하는 한국 사회에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행복을 원한다는 것에 동의한다는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세계행복보고서 작성을 책임지는 제프리 색스 컬럼비아대학 교수는 “세계는 부정적 감정이 증가하는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며 “이 사실은 앞으로 이야기돼야 할 근본적인 변화를 지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원재 LAB2050 대표는 “부탄 모델은 정신적 요인도 큰 반면에 핀란드 모델은 산업화에 성공하고 좋은 기업들이 있는 국가로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사회에 유연함을 부여해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한편 강력한 사회안전망을 주는 ‘자유안정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은 개인 중심으로 삶의 패턴을 꾸려나가는데, 우리 복지제도는 가구 중심, 취업자 중심으로 돼 있다”며 “핀란드가 취업자·미취업자·부분취업자 간 국가 케어의 격차를 작게 하고, 복지 대상을 개인에 맞추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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