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오는 12일(현지시간)로 예정된 가운데 영국 의회가 브렉시트 이행방식에 대한 합의도출에 또 실패했다. 좀처럼 중지를 모으지 못하는 영국 정치가 국내외적으로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영국 하원은 1일 네 가지 브렉시트 이행방식을 놓고 ‘의향투표’(indicative vote)를 실시했지만 어느 방안도 과반을 확보하지 못했다. 브렉시트가 결정된 이래 ‘어떻게’ 유럽연합(EU)을 떠날지를 놓고 벌인 의회투표는 이번이 다섯 번째였다.
의향투표는 하원의 과반 지지를 얻는 브렉시트 대안이 나올 때까지 제안된 여러 방안에 대해 찬반투표를 하는 것이다. 이날 상정된 방안 중 그나마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안은 ‘EU관세동맹 잔류안’(보수당 켄 클라크 의원 제출)이다. 찬성 273표, 반대 276표로 3표차 부결됐다. 이밖에 △의회를 통과한 어떤 브렉시트안도 국민투표로 확정토록 한 방안(노동당 피터 카일 의원 등 제출)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가입을 통해 EU와의 유럽경제지역(EEA) 협정에 참여하는 노르웨이 모델(보수당 닉 볼스 의원 등 제출) △의회에 주도권을 부여한 뒤 ‘노 딜’과 브렉시트 취소 중 하나를 택하도록 한 안도 부결됐다.
브렉시트 협상 EU측 수석대표인 미셸 바르니에는 2일 이와 관련해 “노 딜 브렉시트는 우리가 바라거나 의도하지 않은 시나리오이지만 나날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원은 3일 추가 토론을 하고 다시 표결키로 했다.
그동안 영국 의회는 테리사 메이 총리가 EU와 협상을 거쳐 승인투표에 부친 영·EU 합의안(1월15일), 합의 수정안(3월12일), 합의 수정안 중 일부 상정안(3월29일)을 모두 부결시켰다. 지난달 27일 8개 방안에 대한 의향투표에서도 결론을 내지 못했다. 지금껏 하원에 상정된 안을 모두 합치면 15개에 달한다.
영국 사회는 물론 EU에서는 영국의 ‘정치실패’에 대한 조롱이 분출하고 있다. 당초 브렉시트 예정일이었던 지난달 29일 영국 브리스톨미술관은 영국 예술가 뱅크시의 ‘선진의회(Developed Parliament)’를 내걸었다. 의원들을 침팬지로 묘사한 이 그림은 영국 의회민주주의 위기를 풍자한 2009년 작품이다. 미술관 관계자는 BBC에 “10년이 지났지만 요즘에 적절하다”고 했다. 뱅크시도 소셜미디어계정에 작품을 다시 올리면서 “(이런 정치를 해도) 훗날 책임지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프랑스 라디오 채널 NRJ는 소셜미디어 계정에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말할게’라는 영국과 ‘그래 네가 진짜 원하는 것을 말해봐’라는 EU의 대답이 우스꽝스럽게 반복되는 이미지를 올렸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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