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기술을 도입해 조립하던 한국이 독자적으로 잠수함을 건조, 수출하는 단계로 도약했다.
방위사업청은 12일 인도네시아에 1400t급 잠수함 3척을 수출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1조1600억 원(10억2000만 달러)에 달하는 이번 계약은 2011년 12월 인도네시아에 1차로 수출된 잠수함 3척에 이어 두 번째로 이뤄진 것이다.
잠수함 수출과정에서 제조사인 대우조선해양은 사업 수주를 위한 수출금융지원을 정부에 요청했으며, 방위사업청은 한국수출입은행과 인도네시아 국방부 및 재무부 등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이를 지원했다.
◆印尼의 선택은 양측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
1만7000여개의 섬으로 구성된 인도네시아는 지켜야 할 영해 면적이 다른 나라보다 훨씬 넓지만 경제적 여건 등으로 해군력 증강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하지만 주변국들이 앞다투어 잠수함 도입에 나서면서 인도네시아의 위기감이 높아졌다. 수면 아래에서 움직이는 잠수함은 공격적인 성격이 두드러진다. 또한 가격 대비 효과가 다른 해상무기체계보다 높아 해군력 증강을 노리는 동남아에서 각광받는 무기가 됐다.
1990년대부터 스웨덴제 중고 잠수함 4척을 운용하던 싱가포르는 독일 티센크루프에서 제작한 218급 잠수함 4척을 2024년까지 도입할 예정이다. 태국도 중국 국영 조선사인 중국선박중공업그룹(CSIC)이 제작한 위안(元)급 잠수함 1척을 2023년까지 인도받을 계획이다. 방글라데시도 중국에서 밍(明)급 잠수함 2척을 도입했으며, 파키스탄도 8척의 위안급 잠수함을 2028년까지 도입할 예정이다.
1981년 독일 하데베(HDW)에서 제작한 209급 잠수함 2척을 도입한 인도네시아는 기존 잠수함을 정비하면서 신형 잠수함 12척을 2020년대 중반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을 세웠다. 기존의 잠수함 전력으로는 주변국을 견제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의 이같은 사정을 간파한 대우조선해양은 적극적인 행보에 나섰다. 대우조선해양은 209급 잠수함의 국내 생산형인 장보고급 8척을 건조했지만, 2000년 손원일급 잠수함 건조에 현대중공업이 참여하면서 물량이 감소하자 잠수함 생산 기반 유지를 위해 수출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대우조선해양은 인도네시아의 209급 잠수함 성능개량을 진행했다. 수출 실적이 없는 상황에서 잠수함 관련 기술적 신뢰성을 인도네시아 해군에 확인시키기 위해서였다. 이에 따라 2004년 카크라, 2009년 낭갈라함에 대한 대규모 현대화 계약이 체결됐다. 대우조선해양은 선체를 절단하고 장비를 분해 및 정비하는 한편 전투 체계와 레이더, 소나 등을 신형으로 교체했다. 카크라는 2006년, 낭갈라는 2012년 1월 인도네시아 해군에 인도됐다.
209급 잠수함의 성공적인 현대화는 신형 잠수함 수출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2011년 12월 인도네시아는 대우조선해양과 장보고급을 기반으로 제작된 1400t급 잠수함 3척을 도입하는 계약을 맺었다. 11억 달러(1조2410억원) 규모의 계약 체결로 한국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잠수함을 수출하는 나라가 됐다. 인도네시아도 기존에 운용하던 209급 잠수함과 유사한 잠수함을 독일 HDW보다 저렴하게 도입, 승조원 운용과 군수지원 등에서 상당한 이익을 얻게 됐다.
나가파사급으로 명명된 잠수함은 중간 기항 없이 부산에서 LA까지 1만해리(1만9000㎞)를 수상으로 왕복 운항할 수 있다. 승조원 40명이 탑승하며 중어뢰 16개와 하푼 대함미사일을 탑재한다. 1번함 나가파사는 2016년 3월 진수식을 거친 후 2017년 8월 인도네시아 해군에 인도됐다. 2번함 아르다데달리는 2016년 10월 진수식을 거쳐 2018년 4월 인도됐으며, 3번함 4알루고로는 인도네시아 국영 조선소에서 조립되어 인도될 예정이다.
◆잠수함 산업 진흥 효과…기술 개발 과제도
인도네시아 잠수함 수출은 국내 잠수함 산업 기반을 튼튼히 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평가다.
한국은 1980년대부터 독일 HDW로부터 209급 잠수함 9척, 214급 9척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핵심 부품 제조 및 설계 기술을 확보했다.
잠수함은 자동차처럼 수십만개의 부품과 장비가 결합된 첨단 무기다.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보다 잠수함을 만드는게 더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첨단 장비들을 통합해 수중작전을 안전하게 수행하는 잠수함을 만들려면 소재, 전자장비, 무장, 선체 결합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독자적인 기술을 갖춘 기업과 연구인력으로 구성된 ‘잠수함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재래식 잠수함 시장의 베스트셀러인 독일제 209급 잠수함이 개발될 수 있었던 것은 설계(IKL), 제작(HDW), 전기계통(지멘스), 디젤엔진과 발전기(MTU), 배터리(바르타, 하겐), 잠망경(자이스), 소나(아틀라스) 등 잠수함을 구성하는 각 분야의 전문기업들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다.
문제는 국내에서 건조하는 잠수함의 숫자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야 ‘잠수함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규모의 경제를 갖추지 못하면 이익을 내기 힘들기 때문에 기업들이 참여하지 않는다.
현재 한국에서 만든 잠수함은 해군에 납품된 18척과 3척이 건조중인 도산안창호급(3000t급) 정도다. 여기에 수출용 잠수함이 추가되면 일감이 늘어나는 효과가 생겨 ‘잠수함 생태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 수 있다. 경쟁이 치열한 조선 산업계에서 첨단 조선 기술의 집약체인 잠수함을 수출했다는 점을 앞세운 ‘한국 조선 프리미엄’ 효과도 기대된다.
반면 일각에서는 향후 수출 전망을 낙관할 수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도네시아는 비(非)동맹 중립외교를 표방하는 국가다. 1955년 당시 미국 또는 소련 진영에 속하지 않았던 개발도상국 모임인 ‘반둥회의’를 주도했던 인도네시아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외교안보정책을 추구한다. 그 결과 인도네시아 군의 무기도입도 다변화되어 있다. 공군의 경우 한국(KT-1, T-50), 미국(F-15, F-5, C-130), 러시아(SU-30), 영국(호크)에서 도입한 무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인도네시아가 한국에서 잠수함 6척을 도입했지만, 나머지 6척도 한국에서 구매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비동맹 중립외교 차원에서 러시아, 프랑스, 중국 등의 잠수함을 도입할 가능성이 적지 않은 이유다. 프랑스제 잠수함을 운용중인 파키스탄이 중국제 잠수함을 구매하고, 미국과 군사적으로 가까웠던 태국이 중국제 잠수함을 도입한 것도 ‘줄타기 외교’의 일환이라는 평가다.
비동맹 중립외교를 극복하고 3차 수출을 추진하려면 인도네시아에 납품된 나가파사급보다 더 우수하고 저렴한 수출용 잠수함을 개발하거나 기존 나가파사급의 성능개량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성능과 비용 측면에서 경쟁력을 갖추면 인도네시아 정부의 정무적 판단을 바꾸는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나가파사급의 원천 기술인 209급 잠수함은 1960년대에 개발된 것이다. 수십년간 사용된만큼 신뢰성이 입증됐으나 중국, 프랑스, 러시아, 스웨덴 등 잠수함 수출국들이 최신 잠수함을 방산시장에 내놓는 상황에서 한국도 기존보다 더 우수하면서 비용은 저렴한 잠수함을 선보여야 한다. 업체 차원의 기술 투자와 함께 정부의 지원이 절실히 요구되는 대목이다.
구체적으로는 조선, 방위산업체가 기술을 개발하면 정부는 연구비 지원과 품질보증 등을 통한 수출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동남아를 비롯한 개발도상국들이 해군력 증강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시장 선점을 위한 정부와 업계의 체계적인 대응이 필요한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