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기준 히로시마 원자폭탄 생존 피해자는 2283명이고, 심층면접 대상자 중 20%는 장애를, 30%는 생활고를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자녀에게도 장애와 가난이 대물림되고 있었다.
25일 보건복지부는 ‘한국인원자폭탄피해자지원위원회’를 열고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2017년 7월 시행된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에 따른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 원폭 피해자 현황과 건강상태, 생활실태 등에 대해 조사한 것은 1945년 원폭 투하 이후 처음이다.
이에 따르면 대한적십자사에 등록된 원폭 피해 생존자는 2283명이다. 한국인원폭피해자원호협회 측은 원폭 투하 당시 한국인 피해자는 7만명이며, 이 중 4만명은 사망하고, 생존자 중 2만3000명은 한국으로 돌아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수치를 감안하면 귀국한 생존자 상당수가 이미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생존자 중 70대가 62.8%, 80대가 33.3%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여성이 1358명, 남성이 925명이다. 대부분인 95.6%가 당시 히로시마에서, 3.5%는 나가사키원폭 피해를 보았다고 답했으며, 나머지는 모른다고 응답했다.
고령에 원폭 피해가 겹치면서 건강상태는 좋지 않았다. 원폭 피해자들의 건강보험진료비 청구자료를 분석한 결과 피해자의 입원 이용률은 34.8%, 1인당 입원 건수는 3.8건이었다. 피해자들의 의료비 본인부담액은 2017년 기준으로 1인당 평균 124만원이다. 우리나라 70세 이상 연령의 평균 입원 이용률(31%)이나 의료비(110만원)를 웃도는 수준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피해자 1세 100명, 2세 105명을 대상으로 심층면접도 진행했다. 그 결과 1세대의 23%는 장애가 있었다. 51%는 자신의 건강상태에 대해 ‘나쁘다’고 평가하고 있었다. 5점 만점으로 평가한 주관적 신체건강 점수는 2.1점, 주관적 정신건강 점수는 2.2점이었다. 이들의 월평균 가구 수입은 138만9000원이었으며, 응답자의 36%는 기초생활수급자였다.
2세대도 8.6%가 장애를 안고 있었다. 주관적 신체건강점수는 1.7점, 정신건강 점수는 1.9점으로, 1세보다도 낮았다. 2세대의 월평균 가구 수입은 291만원, 기초생활수급자는 9.5%였다.
전체 인구 중 기초생활수급자 비율은 3.5%, 35∼74세 인구 중 장애비율은 5.9%인 것과 비교하면 많은 원폭 피해자와 그 자녀가 생활고와 건강 악화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1, 2세대 10명 중 1명꼴로 사회적 차별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하면서, 이 때문에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것을 꺼렸다고 했다. 또 피폭 영향이 유전될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결혼이나 출산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다 보니 삶의 만족도는 5점 만점에 1세대는 1.8점, 2세대 1.9점으로 점수가 낮았다.
김기남 복지부 질병정책과장은 “그동안 정책이 피해자 1세에 초점을 맞춰왔다면, 이번 조사 결과는 이제 피해자 2세 등에 대해서도 국가가 실태를 파악하고 지원을 검토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정부는 이에 따라 올해 중 피해자 2세의 건강상태 및 의료 이용 실태에 대한 후속 조사를 하는 한편, 앞으로도 정기적인 조사로 피폭의 건강 영향을 분석하기로 했다. 또 지원을 강화하기 위한 법 개정과 예산 확보를 추진할 방침이다.
이진경 기자 l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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