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토하자면, ‘지방 패싱’을 일삼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지방의 것이라면 일단 후순위로 두거나 종종 무시해버렸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노골적이진 않았다. 그러나 은연중에 분명 그랬다는 걸 깨달은 건 얼마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시작한 ‘오백나한전’을 취재하면서였다.
약간 보완하기는 했으나 이 전시회는 국립춘천박물관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춘천박물관은 강원도 영월의 창령사터에서 발굴된 나한상들을 모아 전시회를 열었는데, 큰 호응을 얻어 서울 전시회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중앙박물관 전시회가 시작될 무렵 춘천박물관에서 나한상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지역 작가 작품을 모아 전시회를 열었다길래 같이 기사에 담으면 좋겠다 싶어 춘천에 다녀왔다.
생각했던 것보다 이동시간이 길어지면서 ‘굳이 춘천까지 올 필요가 있었나’ 싶은 생각이 슬쩍 들었다. 솔직히 큰 기대를 한 것도 아니었다. 견문을 넓힐 수는 있지 않겠나 정도의 심산이었다.
약속시간보다 30분 정도 빨리 도착해 시간도 때울 겸 상설전시실을 둘러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6·25전쟁 당시 화재 때문에 일그러진 상태 그대로 관람객들과 만나고 있는 ‘선림원 종’이었다. 견문이 짧아서이겠으나 문화재 보존·관리의 중요성을 이처럼 강렬하고 명료하게 보여주는 전시품을 본 적이 없어 춘천박물관의 사려 깊음에 살짝 감동했다. 애초 보려고 했던 ‘창령사터 오백나한 현대미술과 만난 미소’ 전에선 강원지역 작가들의 나한상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찬란한 유산’이라고 흔히 말하는 문화재 상당수가 ‘지방 출신’이다. 경주나 부여 등을 중심으로 국가를 운영했던 고대 시대 유물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고려청자 생산지도 지방이었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조선의 사찰, 등재가 유력한 서원도 다 지방에 있다.
사실 우리 민족 모두의 역사이자 역량의 증거인 문화재의 출신지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긴 하다. 하지만 나의 ‘지방 패싱’이 ‘서울공화국’에 살면서 생긴 오래된 습관이 아닌가 싶고, 나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오랜 시간이 지나 후손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돌아볼 때 지방의 무엇을 떠올리게 될까, 라는 질문도 해본다.
그래서 중앙박물관의 오백나한전을 찾은 관람객들이 이 사랑스러운 유물들을 보며 강원도의 영월과 춘천을 떠올렸으면 좋겠다. 비슷한 맥락에서 얼마 전 시작된 국립민속박물관의 ‘메이드 인 인천’ ‘인류학자 오스굿의 시선, 강화 선두포’ 전시회도 관람을 권한다. 우리 대부분이 모르는 인천의 역사와 인천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지방에 여행을 가면 그곳 국립박물관을 방문하는 것도 유익한 경험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부여에서는 최고의 예술적 성취로 꼽히는 백제금동대향로를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고, 김해에서는 가야가 ‘철의 왕국’이라 불리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태안에 가면 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을 들러볼 만하다. 바다에 얽힌 우리의 옛날을 새겨 보는데 이만한 곳이 있을까 싶다.
강구열 문화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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