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운동장 터에 들어선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올해 개관 5주년을 맞았다. 거대한 우주선으로 불시착한 듯한 DDP는 서울을 넘어 한국의 랜드마크, 세계적인 디자인 허브가 됐다.
세계일보는 DDP를 운영하는 서울디자인재단(대표 최경란)과 협업해 ‘서울의 디자인 이야기’를 12회에 걸쳐 연재한다. 건축과 디자인, 패션 등 DDP와 연관된 분야별 디자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짚어 본다.
◆50년 이상 성장한 기업은 디자인과 기술이 양대 혁신 요소
혁신과 창조의 아이콘인 애플사는 디자인 혁신을 통해 1997년 665달러에 불과했던 주가를 지난해 시가총액 1조달러로 올려 미국 기업 역사상 최고의 성장 신화를 기록했다. 애플은 연구·개발(R&D) 투자 규모가 미국 내에서도 낮은 수준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를 신기술 개발보다는 디자인에 집중 투자해 시장 주도형 혁신을 이루며 세계 최고의 혁신 기업이 됐다.
미 스탠퍼드대의 한 연구팀이 조사한 기업 제품의 성공 비결을 살펴보면 ‘기술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소비자를 위해 제품을 개념화하고 구체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해 디자인이 제품 성공에 더 중요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디자인은 단순한 기술에 기능, 스토리, 의미, 감성을 부여해 영혼과 생명력이 깃든 사물로 창조하는 것이다. 디자인은 혁신과 문제 해결의 중심이다.
특히 사물인터넷(IoT)이나 인공지능(AI) 등에 의해 사물들이 연결되고 융합되는 4차 산업혁명이 열리는 미래 사회는 기술과 인간이 함께 조화되며 살아가야 하는 신개념이 중시되는 창의 사회다. 미래학자 롤프 옌센은 미래 창의 사회를 상상과 이미지, 예술과 디자인이 중시되는 꿈의 사회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로 명명했다.
창의 사회에 들어서면서 디자인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디자인의 기능은 과거 산업 시대에 제품과 물질의 조형 변용적 가치 창조의 단순한 개념을 넘어, 이제 ‘보다 나은 아름다운 인간 삶과 사회 창조를 위한 비전과 전략의 제시’로 그 역할이 넓어지고 있다.
또 디자인의 영역은 과거의 제품·시각·환경·공예 등 물질적, 요소 중심의 영역 구분을 초월해 소프트웨어·콘텐츠·뉴미디어·사회시스템을 비롯한 비물질적, 시스템적 가치 등 하드하고 소프트한 가치와 함께 삶의 전 영역을 포괄해 확대·통합되고 있다.
디자이너의 역할 또한 과거의 조형가적 전문성에서 미래의 인간 생활과 사회시스템의 제 가치를 통찰하고 조화롭게 종합하는 ‘통합의 코디네이터와 혁신의 전략적 역할’이 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이제 21세기 창의 시대를 맞아 우리나라가 새로운 혁신과 가치 창조를 선도하려면 기술과 인간 가치를 융합하는 중심이자 문제 해결의 핵심으로 변모해 가는 디자인 역할의 중차대성을 확고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미래의 교육, 연구, 산업, 사회정책에 디자인을 필수 분야로 포함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의 파괴적 혁신 시대는 모두가 디자이너
미래의 4차 산업혁명의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 시대에는 3D 프린터, 빅데이터, 네트워크 등의 발달로 개개인 모두가 디자이너와 창의적 혁신가가 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훌륭한 디자이너와 혁신가가 되기 위해서는 디자이너의 독특한 문제 해결 방법인 디자인 사고(Design Thinking)에 익숙해야 한다. 디자인 사고는 통찰력(전체를 보는 혜안과 미래의 상상력), 융합(서로 다른 요소들을 묶는 관계 엮기), 시각화와 소통(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심미안) 등의 기술을 통해 이 세계에 새로운 가치와 혁신을 만드는 올바른 길을 안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디자인 사고의 교육은 초중고교, 대학, 기업 및 일반을 포함하는 모든 창의적 교육 철학의 중심을 이뤄야 한다.
◆디자인 스타트업은 경제성장 위한 고부가 지식산업
디자인은 의미, 감성, 스토리, 사용성, 서비스 등 인간 내면의 다양한 가치를 기술과 결합해 종합적인 가치를 창조함으로써 부가가치가 높다. 영국 디자인 카운슬의 1997년 조사에 따르면 기술 연구 투자비 대비 디자인 투자비는 20분의 1이고 소요 시간 또한 4분의 1에 불과하다. 반대로 부가가치는 디자인이 4배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디자인 전문 기업은 지금까지의 단순한 용역보다는 부가가치가 높은 독자적인 디자인 기반 브랜드 비즈니스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디자인 기반 스타트업은 고부가 지식문화산업으로, 이 분야에 대한 투자가 우리나라의 미래 경제성장의 새로운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유튜브와 에어비엔비, 핀터레스트, 다이슨, 위워크, 뽀로로, 배달의민족 등 디자이너 출신의 인간 중심 창업과 성공 사례들은 이러한 추세와 가능성을 잘 보여 준다.
한편, 창의 시대의 도래와 함께 디자인은 단편적인 제품에서 복잡한 도시와 사회시스템의 해결로 그 기능이 확장되고 있다. 이미 런던, 베를린, 밀라노, 나오시마 등 각국의 많은 도시들이 예술과 디자인을 도시 혁신과 경제 재건에 접목해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일례로 베를린은 독일 통일 뒤 미술관 등 풍부한 예술 자원을 활용해 예술 도시를 선언하고 예술 친화적 정책을 전개해 예술 인구가 5%에서 10%로 증가했다. 예술 관련 국내총생산(GDP)은 베를린 전체의 20%로 성장했다.
일본 나오시마는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폐허가 돼 가는 섬 전체를 거대한 미술관으로 새롭게 디자인해 세계의 미술가와 관광객들이 1년 내내 찾는 예술의 성지로 탈바꿈했다.
각종 디지털 신기술과 미래 삶이 융합되는 세계인들이 체험해 볼 수 있는 미래 디자인 혁신 도시를 계획해 보면 어떨까? 미래에는 농촌, 해양, 스포츠, 예술 등 도시별로 다양한 삶의 모습을 체험할 수 있는 특화된 신개념의 도시 창조가 디자인의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DDP 중심으로 미래 디자인의 플랫폼 ‘동대문디자인밸리’로 재생
서울시는 디자인을 통해 창조적이고 행복한 도시로 발전하기 위해 2008년 디자인서울총괄본부, 2009년 서울디자인재단, 2014년에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단계적으로 설립했다.
서울디자인재단 설립 10주년을 맞은 서울시의 디자인 정책은 무엇보다 ‘디자인이 전체 도시 속의 시민, 사회, 환경의 문제를 조화롭게 해결하는 중심’으로서 디자인 역할의 중요성을 재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디자인 혁신을 통해 서울의 신산업 경제모델을 개발하고, 시민의 품격 높은 삶과 지속가능한 사회환경 가치를 창조하는 디자인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로드맵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와 서울의 중요한 자원인 K뷰티(K-Beauty: 한국의 미용산업)와 K팝(K-Pop), 예술, 그리고 산과 강 등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기반으로 뷰티와 건강, 자연 등을 통합 관광 프로그램으로 엮어 ‘미(美)의 체험 도시’ 서울로 재탄생하는 것은 어떨까.
나아가 세계적인 건축 명물 DDP를 중심으로 그 일대를 패션 산업화해 리빙 디자인과 관련된 모든 디자인을 보고, 배우고, 구매할 수 있는 ‘동대문디자인밸리’로 재생시켜 세계 각국의 디자이너와 사업가들이 꼭 와 봐야 하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 창조의 메카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21세기는 예술과 디자인이 중시되는 창의 시대다. 또 4차 산업혁명으로 디자인 분야는 첨단 기술을 인간과 사회환경 등 시대적 요구와 결합해 인간의 조화로운 삶의 미래를 창조해야 하는 새로운 디자인 시대를 맞고 있다. 이제 디자인의 기능은 단편적인 조형적 변용에서 삶의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는 역할로, 디자인의 영역은 제품에서 도시와 사회혁신 디자인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창의 디자인 시대에 모든 사람은 창조적 혁신가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체, 융합, 소통을 중시하는 디자인적 사고의 습득이 필수적이다. 우리나라가 창의 디자인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국가와 도시 차원의 디자인 중시 혁신 전략을 계획해 세계가 주목하는 창조 산업과 도시들이 서울을 비롯한 다양한 도시에서 출현하기를 기대해 본다.
이순종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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