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법이에요? 전혀 몰랐어요.”
지난 27일 서울 성북구의 한 프랜차이즈 치킨집에서 닭을 튀기던 50대 사장 김모씨는 ‘생맥주 배달이 불법인 걸 아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김씨는 “주변 치킨집에서도 다 생맥주 배달하고, 주류 도매 업체에서도 (생맥주) 많이 팔라고 프로모션도 해주고 있다”며 “불법이면 다 단속에 걸렸어야 하는 거 아닌가? 왜 그게 불법인지 모르겠다”고 의아해했다.
‘생맥주 배달’을 놓고 규제와 현장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 주세법 제15조에 따르면 생맥주를 페트병에 담아 배달하는 것은 ‘주류를 가공하거나 조작한 경우’에 해당해 엄연히 위법 소지가 있지만 음식점, 배달 중개 애플리케이션(이하 배달앱), 주류 업계 등은 아무렇지 않게 생맥주 배달을 하고 있다. 민원이 들어오지 않는 이상 정부기관도 적극적인 단속과 계도에 나서고 있지 않아 ‘사문화한 규제’라는 비판도 나온다.
◆치킨집들 공공연히 생맥주 배달... 배달앱 “제재 조심스러워”
배달앱으로 서울에 있는 치킨집들의 배달 메뉴를 살펴봤다. 1000cc 기준 종로구 5000~6000원, 강남구 7000~8000원 등 지역에 따라 가격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부분의 치킨집에서 생맥주를 배달 판매하고 있었다.
배달앱 업체들은 업주들에게 ‘생맥주 배달 중지’를 강제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업주들에게 지속적으로 위법 사항에 대해 고지해왔다는 한 배달앱 관계자는 “메뉴는 업주 분들이 직접 등록하신다. 우리는 주문 중계만 해드리는데 거기서 ‘이건 된다, 이건 안 된다’고 하기가 굉장히 조심스러운 구조다. 공정거래법상 음식점에 대한 과도한 경영 간섭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며 “현행법상 문제가 생기면 (음식점) 사장님들이 책임지셔야 한다.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사장님들에게 ‘이건 위법이니 조심하셔야 한다’고 공지하고 계도하는 수준에 그친다”고 설명했다. 실제 미성년자가 배달 대행 서비스를 통해 주류를 구매했더라도 이에 대한 책임은 배달 대행업체가 아닌 음식점주가 져야 한다.

◆치킨 1마리나 생맥주 1병이나 순익은 비슷... 업계 “규제 현실화해야”
생맥주 배달은 치킨집 매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 때문에 국내 한 대표 주류회사에선 ‘배달용 생맥주’에 특화한 냉각기계까지 내놓았다. 일반적으로 생맥주는 유리잔보다 페트병에 따를 때 거품이 더 많이 발생한다. 해당 냉각기계는 생맥주를 페트병에 따라도 거품이 덜 발생해 버리는 부분이 적어 업주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탄 제품이다. 업체 관계자는 “아무래도 업소 같은 데서 요청이 많아 개발한 것으로 안다”고 조심스레 밝혔다.
치킨집을 운영하는 김씨는 “어느 치킨집은 치킨 30마리에 생맥주 1병(1000cc)이 15개씩 나가기도 하고 어디는 치킨을 50마리를 팔아도 생맥주는 1병 팔기 힘든 집도 있다. (생맥주 판매량은) 주변 상권 따라 다르다”며 “그런데 힘들게 치킨 한 마리 튀겨 파는 거나 생맥주 1병 파는 거나 마진(순이익)은 비슷해서 되도록 생맥주 추가 주문을 받는 게 업주 입장에선 훨씬 낫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주류 도매업체로부터 생맥주 케그(Keg) 한 통(20L)을 4만4000원에 들여온다. 버리는 것 없이 생맥주를 알뜰하게 따라냈을 때 보통 이 한 통으로 생맥주 1000cc짜리 페트병 19병이 나온다 했다. 한 병당 6000원에 팔면 원가를 제하고 3000원 정도 손에 쥐게 된다. 1만6000원짜리 후라이드치킨 한 마리를 팔아 원재료비, 임대료, 배달대행비 등을 제했을 때 남는 순이익과 비슷한 금액이다.

치킨 프랜차이즈 업계 한 관계자는 “병맥주, 캔맥주 배달은 허용하면서 생맥주 배달을 규제하는 것에 대해 업주들 사이에서도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며 “아무래도 법이 현실과 맞지 않고 ‘치킨에는 맥주’(치맥)라는 공식이 소비자들에게 널리 퍼져있다 보니 정부에서도 반발을 우려해 단속을 잘 하지 않는 것 같다”고 추측했다.
정부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모호한 주류배달 규정을 재정비할 계획을 밝혔다. 지난 26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린 18차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주류배달 규정을 명확하게 정리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현행 규정만으로는 주류배달 허용 범위가 모호하여 혼란의 여지가 있다는 설명이다. 기획재정부는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음식에 부수하여’ 주류배달을 허용하는 규정 명확화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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