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상 입추와 말복 그리고 처서가 지났지만 아직도 수은주는 30도를 훌쩍 넘어 "가을이 왔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예전에는 추석이 가까워지면 아침저녁으로 꽤 선선한 바람이 불면서 추석을 준비했지만 지금은 최악의 폭염이 있었던 지난 해의 악몽과 같은 여름이 트라우마처럼 국민들의 뇌리 속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듯 늦여름의 매미소리만 도심을 시끄럽게 달구고 있다.
2014년 이후 5년 만에 여름 추석을 맞는 농가들의 상황은 그렇게 녹록하지 못하다. 다행히 지난해와 같은 최악의 폭염은 아닐지라도 폭염의 기세가 대단하고, 아직 태풍이라는 변수가 남아 있어 최대 명절 추석 성수기를 앞두고 농가들의 마음이 편 할 리 없다.
예년처럼 10월에 추석이 들면 홍로 사과와 조생 신고 배를 출하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올해처럼 추석이 9월 초·중순에라도 들면 추석 과일인 중생종과일이 아직 완전한 숙기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농가들은 나무 입면부를 제거하고 과원 바닥면에 반사필름을 깔아 색택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고 되고, 일부농가에서는 생장촉진제를 사용하여 과일의 비대를 촉진하기도 한다.
이처럼 조기출하를 위해 다양한 방법과 수단을 통해서 과일의 숙기를 인위적으로 조절함으로써 나타나는 부작용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우리 과수농가에 돌아오게 된다.
과실비대촉진제 사용에 대한 소비자 인식조사에서 86.5%가 과실비대촉진제 사용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관련 정보를 취득한 소비자의 구입의향은 ‘구입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응답이 65%에 달한다는 조사결과도 보고된 바 있다. 이러한 조사 결과에 대해 농가들의 책임으로만 돌리기에는 한계가 있다.
명절에는 크고 색깔이 고운 대과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구매 성향이 큰 몫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신품종 과수를 개발하여 농가에 보급을 하려고 해도 시장에서 통하지 않는 신품종 과일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우리 국민 정서에는 조상에게 올리는 추석 차례상에는 대과가 우선하고, 추석의 정을 전하는 과일선물에도 크고 색깔이 고운 과일이 으뜸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 있다.
한반도의 기후 온난화도 속도가 빨라져, 사과와 배의 재배한계선이 상당히 북상하고 있으며, 동남아 국가에서나 볼 수 있었던 망고, 파파야, 구아바와 같은 아열대과일의 재배가 가능해져 머지않아 한반도 과수 재배지형도 상당히 바뀌지 않을까 생각된다.
정부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위기로 인식하고, 과수산업 선진화를 위해 다양한 신품종을 개발하고 보급에 나서고 있지만 고령화된 과수농가의 호응이 여기에 따라주지 못하고 있다.
추석용 대표 사과 품종인 홍로를 대체하기 위한 아리수를 2011년에 개발하였고, 생장촉진제 사용 억제를 위해 개발한 중생종 배 품종인 원황이나 신화, 창조 등 신품종이 이미 개발되어 있으나, 농가들의 인식 부족과 소비자의 무관심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2021년부터 배 생장촉진제 사용을 금지하겠다고 정부에서는 일찌감치 공표하였으나, 농가와 산지에서의 반응은 싸늘하다. 취지는 공감하지만 마땅한 대안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사용을 금지하는 것은 추석 성수기를 농가 스스로 포기하라는 말과 다름이 없기 때문에 농가입장에서도 쉽게 물러서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과수농가의 고령화로 갱신에서 수확까지 장기간이 소요되는 품종갱신이 과수농가 입장에서는 그리 쉽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1~2인 가구가 급증하고, 먹기 편하고 작은 크기의 과일을 선호하는 소비 트렌드에 대응하려면 우리 과수농가도 부사 사과와 신고 배만으로 승부하기엔 한계점에 와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품종의 다양성으로 홍수 출하를 방지하고 국산 신품종 보급 확대로 분산 출하를 유도하는 것이 농가소득을 높이는 길이며, 과실 비대촉진제 처리로 맛없는 미숙과를 조기 출하하는 관행을 근절하는 것만이 잃어버린 소비자의 신뢰를 되찾아 오는 길임을 우리 과수농가는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얼마 후면 우리 고유의 명절 추석이다.
추석 차례 상에도 아리수 사과와 신화·창조배가 올라가고, 고마운 분에게 전하는 선물로, 작지만 알찬 우리 과일로 선물하는 문화가 정착된다면 과수농가도 소비자도 활짝 웃는 우리 고유의 명절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지차수 선임기자 chas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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