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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일회, '지금 이 만남은 생애 단 한 번의 인연' [책 속의 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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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9-03 16:33:10 수정 : 2019-09-03 16:4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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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의 '일기일회'

일기일회(一期一會). 이 말은 ‘지금 이 순간이 생애 단 한 번의 시간이며, 지금 이 만남이 생애 단 한 번의 인연’이라는 뜻입니다. 이 구절을 책 이름으로 삼은 사람이 있습니다. 법정스님이 그분입니다. ‘일기일회’는 법정스님의 법문집입니다

 

법정스님은 청년 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했습니다. 승려이자 수필가였습니다. 2010년 3월 11일 입적하기까지 많은 수필집을 남깁니다. 쓰는 책마다 날개 돋친 듯 팔렸습니다. 입적하기 전 유언을 남깁니다. “말 빚을 남기고 싶지 않다. 내가 쓴 책을 모두 없애라”고. 유언이 알려지면서 서점마다 그의 책은 동이 났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책을 별로 읽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말도 어느 나라와 비교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표현일 뿐이지만 그때만은 달랐습니다.

 

사람들은 왜 법정스님의 책을 간직하고자 했을까요.

 

“다시는 살 수도, 볼 수 없을 책”이라는 생각에 아쉬움이 컸을 것입니다. 생로병사로 고해(苦海). 그곳의 사람들은 마음의 위안을 얻고자 합니다. 다른 이유도 있지요. 그때는 세계금융위기가 터진 직후입니다. 너도나도 어렵사리 하루하루를 넘기던 시절입니다. 금융위기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우리 경제도 신음했습니다. 미국 리먼 브라더스 파산으로 시작된 금융위기의 파문은 세계경제에 또 하나의 폭탄 역할을 한 유럽 재정위기로 발전하고 있던 때입니다. 어려운 시절일수록 위안은 더 절실해지는 법이 아닐까요. 법정스님의 글은 그런 시절에 잔잔한 위안이 되었습니다.

‘일기일회’에는 마음의 양식으로 삼을 많은 말씀이 담겨 있습니다.

 

▶ “삶에서 가장 신비한 일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생애 단 한 번뿐인 인연이기 때문이다.”

 

▶ “언제 어디서 자기 생의 마지막 날을 맞이할지 알 수 없다는 자각을 잃지 않아야 한다. 언제 어디서 살든 한순간을 놓치지 말라. 그 순간이 생과 사의 갈림길이다.” 

 

▶ “수행자의 삶은 칼날 위에 서 있는 것과 같다.”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삶의 자세가 물씬 녹아납니다. 법정스님은 매 순간 그렇게 사셨을까요. 반드시 그렇지는 않았을 겁니다. 나태해질 때도, 피곤해 잠자리에 누워 게으름을 피울 때도,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시간을 허비할 때도 많았겠지요. 하지만 마음 밑바탕에 ‘일기일회’라는 네 자를 깊이 새기고 있었을 테니,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물처럼 흐르는 시간 속의 삶에 충실하고자 했을 테지요. 바로 그것이 위대한 실천이 아닐까요.

 

▶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어나기 때문에 봄을 이루는 것입니다.”

 

▶ “한 송이 꽃이 피기까지 그 배후에는 인고의 세월이 받쳐 주고 있습니다. … 꺾이지 않고 꿋꿋하게 버텨 온 나무와 풀들만이 시절인연을 만나 참고 견뎌 온 그 세월을 꽃으로 혹은 잎으로 펼쳐 내는 것입니다.”

 

▶ “중은 믿을 것이 못됩니다. 자기 집도 떠나온 이들을 어떻게 믿습니까. …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의지하고 진리에 의지하라.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진리를 등불로 삼으라.’ 그 밖의 것은 다 허상입니다.”

 

▶“봄날은 갑니다. 덧없이 갑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미처 다하지 못한 이야기는 새로 돋아나는 꽃과 잎들이 전하는 거룩한 침묵을 통해서 들으시기 바랍니다.”

 

▶ “동산 선사가 답했습니다. ‘추울 때는 그대 자신이 추위가 되고, 더울 때는 그대 자신이 더위가 되라.’ … 추위니 더위니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분별입니다. 삼복더위 속에서도 일에 열중하면 더위를 모릅니다. … 추위와 더위는 상대적인 비교에 따른, 분별에서 오는 고통입니다. 나고 죽는 일, 괴롭고 즐거운 일, 얻고 잃는 일, 사랑하고 미워하는 일, 또는 가난과 부 등도 모두 상대적인 비교에서 오는 현상입니다.”

 

▶ “삶 그 자체가 되면 불행과 행복의 분별이 사라집니다. 삶 자체가 되어 살아가는 일, 그것이 불행과 행복을 피하는 길입니다. 번뇌 밖에 따로 깨달음이 있는 것 아닙니다. 일상의 삶을 떠나서 따로 열반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 “동산선사의 말은, 이 세상 밖 어딘가에 천국이 있다고 우리는 흔히 믿고 있지만 바로 현실 세계에서 천국을 이룰 수 있지, 현실을 떠나서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르침입니다.”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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