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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국방장관 "美 덕분에 30년전 베를린 장벽 붕괴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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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9-25 06:00:00 수정 : 2019-09-24 20:5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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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후 꼭 30년 / 독일 국방장관, 미국 정부에 감사 표시 / 1·2차 세계대전 때 적으로 싸운 美·獨 / 지금은 나토의 틀 안에서 최대 협력국

“미국의 지원과 도움이 없었다면 30년 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최근 미국을 방문한 안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 독일 국방부 장관이 냉전 시절 미국이 서독을 지원하고 궁극적으로 동·서독 통일에 기여한 점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했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 뒤 동·서베를린 시민이 나란히 장벽 위에 올라가 대결 종식을 자축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24일 미 국방부에 따르면 크람프-카렌바우어 장관은 23일(현지시간)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과 만나 회담을 가졌다.

 

독일과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은 물론 2차 대전(1939∼1945) 때에도 적국으로 서로 싸운 처지다. 미군은 2차 대전 후 소련군, 영국군, 프랑스군과 함께 독일을 분할 점령했다. 이후 미·영·프 점령 구역이 합쳐져 서독 정부가 세워지고, 소련 점령 구역은 동독 정부가 들어서면서 독일은 둘로 분단됐다.

 

1940년대 미국은 소련의 공격으로부터 서유럽을 방어하고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라는 집단 안보 체제를 만들었다. 한국에서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서독이 나토 회원국으로 가입함으로써 미국과 서독은 ‘동맹국’이 되었다. 1990년 동·서독 통일 후에도 독일은 나토 회원국이자 미국의 동맹으로 남아 있다.

 

양국 국방장관 회담에서 크람프-카렌바우어 장관은 바로 이 점을 언급하며 “독일과 미국 간에는 오랜 협력의 역사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의 지원과 도움이 없었다면 30년 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1989년 11월 동독 치하의 동베를린과 서독 치하의 서베를린 간의 경계 역할을 하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은 냉전 해체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미국 정부, 그리고 독일에 주둔하는 미군은 베를린 장벽 붕괴부터 이듬해 동·서독 통일까지 주도적 역할을 했다.

 

마침 올해가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인 점을 감안해 독일 국방장관이 미국 측에 감사의 뜻을 전달한 것이다.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왼쪽)이 23일(현지시간) 국방부 청사 펜타곤 앞에서 안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 독일 국방장관을 위한 미군의 의전 행사를 주재하고 있다. 미 국방부

이에 에스퍼 장관도 “미국과 독일은 안보와 국방 분야에서 오랜 협력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그는 “독일이 수십년 동안 미군의 주둔을 받아들이고 있는 점에 감사한다”고도 했다. 독일에는 약 3만8000여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데 이는 주한미군보다 훨씬 더 많다. 해외 주둔 미군으로는 5만2000여명에 달하는 주일미군에 이은 두 번째 규모다.

 

눈길을 끄는 점은 에스퍼 장관 역시 육군 장교 시절 주독미군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다는 점이다. 에스퍼 장관은 미 웨스트포인트 육사를 졸업하고 현역으로 오래 활약한 뒤 전역했다.

 

현재 독일은 나토의 각종 군사활동에서 미국 다음으로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특히 아프가니스탄에서 독일군은 탈레반에 맞서 싸우는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돕고 있다. 독일군은 또 이라크와 시리아에선 군대 양성과 훈련을 지원하고 있다. 에스퍼 장관은 이 점에 대해서도 독일 측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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