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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가습기 살균제’ 공포… 의심환자 나오자 사용중단 조치

입력 : 2019-11-09 10:30:00 수정 : 2019-11-09 10: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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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상형 전자담배 유해성 논란 / 니코틴 함유 수증기 흡입… 호흡기 영향 / 美 두달새 폐질환자 2051명… 사망자 39명 / 18세 소년 폐 나이, 70대로 진단 충격도 / 한국서도 지난 9월 사용자제 권고 시작 / 흡연자들 “연초보다 덜 해롭다더니” 불만 / 식약처, 유통 제품들 11월까지 성분 분석 / 유해성 확인되지 않을땐 규제 쉽지 않아 / 신종 담배 계속 나와… 관련법 마련 시급
“액상형 전자담배나 연초나 모두 해로운 것 아닌가요? 왜 액상형 전자담배만 중단한 건가요?” 정부가 지난달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 중단을 강력히 권고한 뒤 전자담배 제조·판매업체들과 흡연자들 사이에서 크게 제기되는 불만 중 하나다. 유해성이 입증되지도 않았는데도 정부가 과도한 조치를 내렸다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등에서 이미 폐손상으로 인한 사망자가 나오는 등 위험신호가 있는데 정부가 사용 중단 조치를 취한 것은 당연하다는 지적이 많다. 전문가들은 액상형 전자담배에 대한 분석이 더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편의점에서 액상형 전자담배 퇴출

액상형 전자담배의 위험성은 올해 초부터 미국에서 폐손상으로 인한 사망자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망고맛 전자담배를 1년간 사용해온 18세 미국 소년의 폐 나이가 70대 노인과 같다는 진단을 받은 사실이 공개되면서 충격을 줬다. 8일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외신 등에 따르면 지난 8월 처음 사망자가 보고된 뒤 지난 5일 기준으로 2051명의 폐질환자가 발생했다. 사망자는 39명에 이른다. 미 보건당국은 액상형 전자담배를 판매 중단시켰다.

한국에서도 의심사례가 발생했다. 30대 남성은 지난 9월28일 기침, 호흡곤란, 가슴 통증 등으로 병원을 찾았다. 이 남성은 하루 1갑 이하로 일반담배를 피우다 액상형 전자담배로 바꾼 뒤 2∼3개월 만에 증상이 나타났다. 의료진은 90일 이내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력이 있고, 호흡기 증상 및 엑스레이상 이상 소견이 발견됐다는 점, 암 등 다른 질환에 의한 폐손상이 아니라는 점 등으로 액상형 전자담배 의심사례로 판단했다. 현재 이 남성은 치료 후 퇴원한 상태다.

정부는 9월20일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자제를 권고했으나 의심환자까지 나타나자 10월23일 사용을 중단하라며 경고 강도를 높였다.

유통업체들은 정부 방침에 호응해 잇따라 판매 중지를 선언했다. GS25·CU·세븐일레븐·이마트24·미니스톱 등 국내 주요 편의점 대부분이 판매 중단 또는 신규 발주 공급 중단에 들어갔다. 신라·롯데·신세계면세점도 액상형 전자담배를 당분간 취급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금연정책·위해 제품 관리 투 트랙으로 가야”

담배업계와 흡연자들은 “왜 액상형 전자담배만이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전자담배가 연초보다 덜 해롭다고 해서 바꿨는데 정부 조치로 불안감만 커졌다고 지적한다. 또 미국에서 대마 유래 성분인 ‘THC’가 함유된 액상형 전자담배가 문제가 되고 있는데, 국내에는 들어오지 않기에 괜찮은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실제로 미국 보건당국 조사 결과 폐손상 환자 중 약 78%가 THC가 함유된 제품을 사용했다.

정부는 ‘제2의 가습기 살균제’를 방지하기 위해 선제적인 조치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니코틴 등이 함유된 액상을 가열해 수증기를 흡입하는 방식이다. 액상에 들어있는 각종 화학물질이 호흡기를 통해 폐 등 몸속 깊숙이 들어온다. 문제는 화학물질이 호흡기로 흡입했을 때 어떤 작용을 하는지 모른다. 알 수 없기에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액상형 전자담배에 함유된 화학물질은 45개로 신고돼 있다. THC 성분이 있는지 확인되지도 않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달까지 현재 국내 유통 중인 액상형 전자담배에 THC, 비타민E아세테이트 등 어떤 성분이 있는지 분석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인체 유해성 연구는 질병관리본부가 내년 상반기 내 결과를 발표하기로 했다. 미국에서 사망자가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서 유해성이 확인될 때까지 기다리려면 늦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과거 가습기 살균제도 호흡기를 통해 사람 몸속에 들어온 성분이 문제가 됐다. 2006년 원인 미상의 폐질환자가 잇따라 발생했지만 원인 규명에는 소홀했다. 이어 2011년 급성 호흡부전으로 임산부들이 병원에 몰리면서 역학조사를 시작,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원인임을 밝혀냈다. 그러나 동물 실험 등 독성 연구가 덜 됐다는 이유로 판매 금지는 2012년에야 이뤄졌다. 이러는 동안 1400여명이 사망했다.

THC만의 문제도 아니다. 미국 폐손상 환자의 10%는 니코틴만 함유된 액상형 전자담배였다. 일각에선 전자담배 액상에 반드시 들어가는 PG(프로필렌 글리콜), VG(식물성 글리세린)가 문제가 있다고 드러나면 사태는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회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에서 “대마 성분이 없는 액상형 전자담배에서도 환자가 나와 그것을 근거로 사용 중단을 강력 권고하게 됐다”고 밝혔다.

학계에서는 액상형 전자담배 위해성에 관한 연구결과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연구진이 ‘미국생리학회지’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액상형 전자담배를 6개월 이상 사용한 흡연자의 기관지 상피세포를 분석한 결과 358개의 변형된 유전자가 발견됐다. 일반담배 흡연자 53개보다 더 유전자 변형이 심했다. 유전자 변형은 폐암 등 질병 발생원인이다. 미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은 담배를 한 번도 피운 적이 없는 사람에게 니코틴이 없는 액상형 전자담배를 피우게 한 결과 혈류 변화가 나타났다는 보고서를 공개했다.

연초는 왜 판매하도록 두느냐는 지적에 대해 이성규 한국건강증진개발원 국가금연지원센터장은 “순서가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센터장은 “가격 인상, 경고그림, 금연구역 등 흡연율을 낮추는 정책과 국민 건강에 유해할 수 있는 화학물질 관리 정책 투 트랙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위험 제품 관리 강화해야

액상형 전자담배를 둘러싼 논란은 국민 건강에 위험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신종 담배는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과제를 던졌다. 제품안전기본법에는 유통되는 제품에 대한 안전성조사를 실시한 결과 해당 제품의 위해성이 확인된 경우 제품 수거, 유통 금지 등을 명령할 수 있게 했다. 바꿔말하면 유해성이 확인되지 않은 한국에서는 미국처럼 액상형 전자담배로 환자가 계속 발생하는 상황이더라도 판매 중단 등 강제력 있는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현재 정부의 사용 중단 권고는 권고일 뿐, 어겨도 처벌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미국 역시 액상형 전자담배와 폐손상의 연관성을 아직 밝혀내지 못한 것은 같다. 그래도 판매 금지할 수 있다는 점이 우리와 다르다. 정부는 국민건강증진법을 개정해 청소년 흡연 유발 등 공중보건에 악영향을 미치는 경우 제품회수, 판매금지 등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신종 담배가 계속 나오고 있는 만큼, 관리 담배 범위를 넓히고, 담배 성분을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한다는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허가받아 국내 유통 중인 액상형 전자담배는 36종인데, 담배지만 법상 담배로 분류되지 않는 담배 유사제품은 약 70개에 이른다. 법의 관리를 받지 않는 담배가 훨씬 더 많은 셈이다. 국회에 계류된 관련 법안이 조속히 처리돼야 하는 이유다.

이 센터장은 “천문학적인 액수를 쏟아부어 새로운 담배를 개발하는 세계적인 담배회사들을 정부나 학계가 따라잡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며 “다만 새로운 담배가 유통되기 전 차단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혜숙 경희의료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실제로 전자담배가 인체에 어떤 작용을 미칠지 좀 더 많은 연구와 긴 관찰기간이 필요하다”며 “금연정책에 궐련 담배뿐 아니라 전자담배 사용감소를 위한 정책도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美 주정부서 판매금지… 유통업체 동참 印은 생산·수입·보관도 전면금지 조치

 

세계 각국도 액상형 전자담배 위해성을 우려하며 행동에 나서고 있다.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한편, 판매 중단, 사용 자제 권고 등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8일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39명의 사망자가 나온 미국은 식품의약국(FDA)·질병통제예방센터(CDC)를 중심으로 액상형 전자담배의 어떤 성분이 폐 손상에 영향을 주는지, 폐 손상과 인과관계가 있는지 분석에 나섰다. 발생 환자수도 매주 업데이트하며 상황을 상세히 알리고 있다.

 

각 주정부는 일정 기간 판매금지 조치를 내렸다. 매사추세츠는 지난 9월 모든 액상형 전자담배를 4개월간 판매하지 말라고 했다. 워싱턴주와 로드아일랜드주 등은 담배향을 제외한 가향 액상형 전자담배를 연말까지 판매하지 못하게 했다.

 

액상형 전자담배 제조사 쥴 랩스는 민트향 전자담배를 판매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민트향 전자담배는 미국 내 매출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 있는 제품이다.

 

월마트, 크로커, 월그린 등 미국 유통업체들도 전자담배 판매 중단에 참여했다.

 

캐나다는 지난달 폐질환 사례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 자제를 권고했다. 또 전자담배를 사용하는 청소년은 즉시 사용을 중단할 수 있는 도움을 구해야 한다고 권했다. 캐나다에서는 지난달 17일 현재 중증 폐손상자 5명이 발생했다.

 

호주(9월13일)와 뉴질랜드(9월30일)는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을 자제할 것을 권고했다.

 

이들 나라 보건당국은 공통으로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 후 기침, 호흡곤란, 가슴통증이 있는 경우 즉시 의료진을 방문하라고 당부했다. 호주 보건당국은 의료진은 이유가 불확실한 호흡기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 여부를 반드시 확인하라고 했다. 이어 흡연자 또는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자는 효과가 입증된 방법으로 금연을 시도하라고 강조했다. 뉴질랜드 보건당국은 “아동, 청소년 및 비흡연자는 액상형 전자담배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며 “전자담배는 무해한 제품이 아니며, 중독성이 강한 니코틴을 포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은 가향 전자담배의 액상 판매를 금지했고, 인도는 아예 전자담배의 생산·수입·판매·보관을 전면 금지했다.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도 미국에서처럼 액상형 전자담배로 인한 국민 사망이 나오기 전에 전면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중국은 알리바바 등 온라인쇼핑몰에서 액상형 전자담배 쥴의 판매를 중단시킨 데 이어 전자담배를 규제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진경 기자 l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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