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버라 크루거, 은유가 아니라 직언을 담는 예술
‘82년생 김지영’의 관객 수가 200만명을 훌쩍 넘었다. 동명의 소설을 기반으로 한 이 영화는 개봉 당시부터 화제를 모았다. 페미니즘 영화라는 낙인이 찍혀 평점 테러를 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점 테러를 한 사람들도 막상 보고 나면 생각이 많아지는 모양이다. 김지영으로 대표한 인물들이 결국 내 주변 여성 그리고 내 어머니의 모습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모두 알고 있었을 수도 있는 현실. 그것은 묵인했을 때와 드러냈을 때 전혀 다른 상황을 가져온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경험하게 되고 나서야 우리는 그 현실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한다. 소란스럽거나 괴롭다고 여길 수 있으나 더 나아지기 위해 겪어야 하는 과정이다. 그 고민이 한자리에 모여 나뉠 때 결국 해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궁금함에 이끌려 영화를 보고 나오며 떠오르는 작가가 있었다. 현대 미술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꼽히는 바버라 크루거(Barbara Kruger, 1945~)다. 바버라 크루거는 이미지 위에 텍스트를 병치하는 시각언어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최근 한 국내 미술관에서 아시아 최초로 개인전을 마련했다. 그가 떠오른 이유는 이 전시를 본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단 한 문장에 ‘82년생 김지영’이 2시간 동안 영상에 풀어낸 여성 인권, 삶 등을 담는다. ‘무제(너의 몸은 전쟁터다)·Untitled(Your body is a battleground)’와 같은 식이다. 1980년대 후반 낙태법 철회를 외치는 여성들의 분노를 표현한 작품이다. 아이를 임신하고 탄생시키고 때로는 낙태를 하는 여자의 몸은 전쟁터와 같다.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은 그 전쟁터를 더욱 피폐하게 만든다. 이보다 더 직설적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작가가 또 있을까.
# 디자이너가 독보적인 미술가가 되기까지
바버라 크루거는 1945년 미국 뉴저지주에서 태어났다.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성장해 시러큐스 대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1년 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며 집 가까운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때 뉴욕의 파슨스 디자인학교에 진학했다. 유명 사진가 다이앤 아버스와 마빈 이즈리얼로부터 수업을 들었다. 사진과 시각 매체의 효과적인 전시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졸업 후 ‘마드무아젤’이라는 잡지의 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했다. 능력을 인정받아 이듬해에 디자인 실장이 되었다. 이후 ‘하우스 앤드 가든’지와 사진 잡지 ‘애버처’ 등의 사진 편집을 담당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미술 전문지 ‘아트 포럼’에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미술과 멀지 않은 삶을 이어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몇 년 지나지 않아 1969년 첫 작업을 발표했다. 비즈, 시퀸, 깃털, 리본 등으로 만든 설치 작품이었다. 당시 남성 작가들은 미니멀리즘을 중심으로 직선적 형태를 주로 선보였다. 여성 작가들은 그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작품 형태를 찾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벽에 거는 작품을 제작한 것인데 크게 만족을 얻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1976년에는 작품 활동을 중단하고 캘리포니아로 떠났다.
캘리포니아의 한 대학에서 1년간 강의를 했다. 그리고 1977년 ‘그림/읽을거리’라는 제목의 책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재개했다. 이것은 당시 뉴욕에서 열린 ‘그림들’ 전시와 통하는 면이 있었다. 그림은 세상에 단 하나씩만 존재한다는 과거의 개념을 깨는 자리였다. 사진 등으로 차용해 그림이 유일무이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이후 몇 년에 걸쳐 이 집단적인 움직임이 전개하며 크루거도 새로운 작품 세계를 발견했다.
1981년경부터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업을 본격화했다. 앞서 언급한 ‘그림/읽을거리’가 모태가 됐다. 이 작업은 흑백 이미지와 붉은 프레임, 강렬한 텍스트의 결합이 채운 화면이다. 슈프림(Supreme)이라는 브랜드 로고가 이 작업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잡지나 사진 도감 등에서 찾은 이미지를 가공했다. 그 위에 간략하면서 집중력을 끄는 문장을 중첩해 선보였다.
이러한 작품은 실제 광고와 다를 바가 없다고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 비난하는 그것에 크루거 작품의 핵심이 있다. 푸투라 고딕이라는 눈에 가장 잘 띄는 글씨체로 쓴 메시지는 그 어떤 작품보다도 명징하게 내용을 전한다. 미술에 관한 배경지식 없는 사람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크루거는 미술관, 갤러리뿐 아니라 도심의 옥외 광고판, 잡지, 포스터, 공원, 기차역 플랫폼 등 생활 속에서 작품을 선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경계 없는 작업 활동과 대중과의 친밀한 소통은 크루거를 독보적인 위치에 자리매김하게 한 힘이다. 그는 2005년 제51회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 직언으로 각성시키는 불편한 현실
바버라 크루거는 상징적 서체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그 안에 강렬한 메시지는 사회의 면면을 다룬다. 그는 권력과 통제, 대중매체와 자본주의, 성 역할의 고정관념, 그리고 최근에는 진실의 왜곡에 대한 문장을 쓴다. 비판적 메시지를 담은 문장은 관람객이 여러 질문을 떠올리도록 유도한다.
‘무제(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Untitled(I shop therefore I am)’(1987)이 대표적이다. 크루거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작품은 오른손이 붉은 직사각형을 잡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직사각형 안에는 대비적인 흰색으로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문장이 쓰여있다.
이 모습을 보며 경험하는 낯설고도 익숙한 느낌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신용카드를 꺼내는 순간의 내 모습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이 작품은 데카르트가 코기토를 설명하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를 비튼 것이다. 이를 통해 존재와 소비를 연결 지어 소비사회의 잘못된 가치 기준을 비판한다.
‘무제(진실의 최근 버전)·Untitled(The latest version of the truth)’(2018)는 최근 작품이다. 지난해 제작한 이 작품은 오늘날 정치 사회적 풍조에 시기적절하다. 가공되는 진실 또는 상황에 의해 달라지는 진실의 속성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한다.
작품을 보고 있으면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의 주제가 떠오른다. ‘흥미로운 시대를 살아가기를(May You Live in Interesting Times)’다. 인터넷이 범람하며 시공간의 경계가 사라지고 가짜 뉴스라는 것이 등장하는 이상하지만 재미있는 시대를 다뤘다. 이런 시대에 어떻게 사고하고 어떠한 삶을 영위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였다고 평가받는다.
# 예술이 마련해주는 유의미한 경험
바버라 크루거는 지난 미국 대선 때 ‘뉴욕’지와 함께 표지 작업을 했다. 당시 미국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얼굴 위에 ‘실패자(Loser)’라는 글자를 박았다. 어느새 일흔이 넘었지만, 여전히 대담하게 메시지를 던지는 작가다.
크루거의 작품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제(너의 편안함은 나의 침묵)·Untitled(Your comfort is my silence)’다. 널리 알려진 작품은 아니지만 마주할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 나의 편안한 일상이 누군가의 희생에서 온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모두 알면서도 묵인하는 현실 말이다.
크루거 작품의 힘은 이렇게 강하다. 그의 작품은 우리의 무뎌진 비판의식을 흔들어 깨운다. 그리고 삶의 주체로서 능동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자극을 준다. 이것은 우리 속에 나 자신을 삶의 주체로 되돌려 놓는 유의미한 경험이다.
김한들 큐레이터, 국민대 미술관·박물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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